대학생들, 스펙용 사교육비 벌려 등골이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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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 스펙용 사교육비 벌려 등골이 휜다
  • 취재기자 이민재
  • 승인 2014.11.2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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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낭만은 그림의 떡..."아프니까 청춘? 아프면 환자일 뿐이죠"

올해 서강대 경제학부에 입학해 상경한 김모(21) 씨는 오후 6시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학교 인근의 편의점으로 급히 뛰어가 허겁지겁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알바 일하는 홍대입구 일본식 선술집에 7시까지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제대로 된 저녁식사는 언감생심. 친구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술잔을 기울이며 웃음을 터뜨릴 때, 김 씨는 알바하는 술집에서 취객들의 시비에 애써 웃는 얼굴을 만든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김 씨는 지친 몸을 이끌고 좁은 원룸으로 들어설 수 있다. 김 씨는 방의 불을 켜지도 않고 그대로 잠자리에 쓰러져 눕는다. 아침에 급히 나가느라 미처 개지도 못한 이불은 차갑게 식어 있지만, 이불 속의 그는 이내 코를 골며 잠들고 만다. 그리고 새벽 알람에 깨자마자 그는 학교 강의 시작 전에 학원으로 다시 뛰어야 한다. 김 씨는 “매일 새벽, 방금 잠든 것 같은데 알람소리에 깨 학원에 갈 때면, 무슨 인생이 이런가, 학교며 학원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학원, 학교, 술집, 그리고 숙소를 다람쥐 쳇바퀴 처럼 돌고 있는 그에게 여자 친구나 취미 생활은 그림의 떡이다. 그럴 정신적 여유도, 물리적 시간도 없다. 지금 그가 소원하는 게 있다면 단 두 가지. 자신이 일하는 술집에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 그리고 단 하루라도 마음 놓고 푹 쉬어보는 것이다.

김 씨가 매일 저녁 7시부터 자정이 지나도록 술 취한 손님들에게 시달리며 테이블을 닦고 음식을 나르는 것은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다.

김 씨가  꿈꿔온 대학생활은 결코 이렇지 않았다. 남들과 같이 이런저런 동아리 활동도 하고, 멋진 여자친구를 사귀어 데이트도 즐기고, 때로는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 경험도 쌓고... 그런데 막상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후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그 비용까지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씨는 “학비며 생활비만으로도 이미 적잖은 돈을 부모님께서 부쳐주고 계셔서, 학원비 부담까지 안겨드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잣집 자제가 아닌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캠퍼스 낭만은 실종됐다. 대신 공인 외국어 점수, 그리고 기업에서 요구하는 제2외국어나 자격증 같은 스펙에 대한 부담만이 가슴을 누른다. 김 씨는 “더 이상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해주는 시대가 아니다. 대학생들은 낭만대신 스펙을 찾아 학원에서 학원으로 전전한다”고 말했다.

올해 졸업 예정인 부경대 재학생 김성진(27) 씨는 지난 학기 중에 공인 영어점수나 컴퓨터 자격증에 쓴 사교육비만 100만원은 족히 넘는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스펙에 토익은 기본이고, 토익 스피킹, 오픽(영어 점수의 일종) 등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성진 씨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공인 영어점수를 얻으려면 학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대학 학비만 해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닌데, 학원비까지 더해지니 죽을 맛이다”라고 덧붙였다.

서면의 한 어학원 강사에 따르면, 방학 중에는 많은 수강 대학생들이 학원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한다. 이 강사는 대학 학기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수강생이 줄어든다며 “학기가 시작되면 학과 공부와 동시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도 많다. 요즘 대학생들은 고3 못지 않게 너무 바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이승우(28) 씨는 “토익이나 토익 스피킹 등의 공인 영어점수는 유효기간이 2년이라,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이를 갱신해야 하므로 사교육비 부담은 배가된다”며 “정부는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대학생 사교육비를 지원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2013년 취업포털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대학생 4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취업을 위한 사교육 실태 조사 결과, 취업을 위한 사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조사 대상자의 57.3%를 차지했다. 또한, 한 해 동안 대학생들이 취업 사교육비로 지출한 금액은 평균 207만원이며 이는 5년 전인 2008년 동일 조사에 비해 37만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부산의 경우, 주중 5일 동안 수업을 진행하는 토익토플학원의 한 달 학원비는 강사의 유명도에 따라 싸게는 11만원에서부터 40만원에 가격대가 형성돼있다. 싼 학원비 11만원의 경우, 현행 최저임금 5210원을 기준으로 21시간의 노동을 해서 버는 금액에 해당하고, 학원비 40만원의 경우는 약 76시간의 노동을 해서 버는 금액과 동일하다.

이승우 씨는 기업이나 사회가 취업준비생들에게 요구하는 요구치는 나날이 높아져가고, 그 요구치에 도달하는 데 드는 부담은 모두 대학생들이 온전히 떠안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기성세대는 우리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데,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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