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프리즘으로 현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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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프리즘으로 현재를 보다
  • 부산광역시 남구 김윤주
  • 승인 2014.10.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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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헤쳐가는 소년들..영화 <메이즈 러너>를 보고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어두운 철제 엘리베이터 속에 실려 어디론가 보내지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한참을 덜컹거리며 올라가다, 드디어 빛이 보이며 엘리베이터는 멈춰 서고, 한 무리의 소년들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며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버둥 치는 그 소년에게 기다리고 있던 소년들은 “우리도 그랬어. 며칠 지나면 이름 정도는 기억하게 될 거야”라고 태연하게 말하며 막 도착한 소년을 자신들의 거주지를 안내하면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고 있는 작은 숲은 거대한 철제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것의 정체는 ‘미로’다. 그 미로 속에는 ‘그리드’라는 괴물이 존재하며, 그것에게 공격당하는 소년은 삭제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이상한 행동을 하다 죽게 된다. 그 거대한 미로는 매일 구조가 바뀌고, 일정한 시간마다 입구가 열리고 닫힌다. 그 변화하는 미로의 구조를 살피기 위해 날마다 미로 속을 처절하게 달리는 소년들이 바로 ‘메이즈 러너’다.

마침내 본인의 이름을 기억해낸 토마스는 이곳의 소년들이 모두 자신처럼 기억이 삭제된 채로 매달 누군가에 의해 그 엘리베이터를 통해 보내져왔다는 사실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소년들은 3년째 거대한 미로 앞에 도전하고 희생되며 나름의 규칙과 역할이 있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로 속을 정찰하러 갔던 공동체 대장인 알비가 괴물에 공격당해 닫혀가는 문 앞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상황이 됐고, 그 모든 상황을 함께 지켜보던 소년들은 아무도 선뜻 그를 위해 뛰어들지 못한다. 그때, 토마스가 미로 속으로 뛰어들고, 문은 닫힌다. 미로 밖의 소년들은 그들의 생존을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튿날 아침 그들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많은 희생과 혼란을 겪으며 정립된 규칙들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그들 사회에서 토마스라는 소년의 등장으로 새로운 혼란이 생겨난 것이 마음이 들지 않았던 공동체 고참 갤리를 비롯한 몇몇은 “토마스에게 벌을 주자”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몇몇은 최초로 미로 속에서 살아 돌아온 토마스를 보며 ‘탈출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소년들은 탈출을 포기한 채 기존의 규칙을 지키며 지금의 안정에 만족하려는 무리와, 목숨을 걸고 미로에 도전해 탈출을 꿈꾸는 무리로 나뉜다. 사실 미로의 끝이 탈출구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끝이 또 다른 미로의 시작일 수도 있고, 영원히 탈출할 수 없게 만들어진 구조인지도 모른다. 탈출을 꿈꾸는 소년들을 무사히 미로를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미로의 끝에는 또 어떤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이 SF 영화를 보고 생각난 것은 인생은 끝없이 문을 열어가는 과정이라고 영화 속의 누군가가 했던 말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수능시험만 치고 나면 낭만적인 대학생활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다. 주변의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그렇게 믿으며 다른 욕망들은 접어둔 채 마치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처럼 대입시험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수능이라는 문을 열고 마주한 대학생활은 그저 취업이라는 또 다른 목적을 위해 달려가는 시간들이었고, 졸업을 앞둔 지금 나는 취업이라는 또 다른 문 앞에 서있다.

그렇다면 나는 갤리처럼 이미 자리 잡은 사회적 구조에 순응하며 선뜻 또 다른 미로 속에 들어갈 용기가 없는 걸까? 그리고 나는 과연 토마스처럼 미로를 나가기 위해 희생을 감내할 수 있을까? 하지만 둘 다 마찬가지인 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년들을 이곳에 보낸 이들은 그들에게 왜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결말이 오기 전까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감금과 미로라는 특수한 가상 상황을 설정했지만, 그와 같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련의 구조를 극복해나가는 소년들의 모습은 어쩌면 취업을 앞두고 고민하는 내 또래 청춘들과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 미로게임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몰입하며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엔딩에서 소년들에게 시련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영화의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2편 속 소년들의 또 다른 고군분투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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