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인도의 낮은 곳 찾아 '희망'을 전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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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인도의 낮은 곳 찾아 '희망'을 전도했어요"
  • 취재기자 김다빈
  • 승인 2014.09.03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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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을 꿈꾸는 24세 여대생의 '특별한 학창생활' 이야기
▲ 2010년 여대생 서유지 씨가 부산대학교 앞에서 희망을 꿈꾸며 미소 짓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김다빈)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촟불도 꺼져가는 어두운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중략)

시인 정호승은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중학교 때 이 시를 읽고 감명을 받은 끝에 정말 남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자고 한 소녀가 결심했다. 그 소녀는 이제 대학생이 되어 오늘도 아침 7시에 일어나 토익학원을 간다. 그녀는 토익학원이 끝나면 바로 언론 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늦은 저녁까지 신문읽기, 글쓰기, 한국어능력 시험 준비, 취업스터디를 한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은 그녀는 EBS에서 대학생 취재단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여 지금 EBS 다큐멘터리 취재도 함께 하고 있다. 그녀는 바쁜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늦은 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하루가 참 길지만 나는 꿈이 있어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는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대생 서유지(24) 씨다. 유지 씨가 말하는 자신의 꿈은 중학교 때 이후로 남을 위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유지 씨는 다큐멘터리 PD를 꿈꾼다.

세상에 자신만을 위한 꿈을 가진 사람들은 참 많다. 사람들은 좋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끝나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이 원하는 조건을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유지 씨는 자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망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2010년, 대학생이 된 20세의 유지 씨는 희망을 전하겠다는 꿈을 안고 방학을 이용해 필리핀 선교를 떠났다. 그녀가 먼 길을 떠난 이유는 ‘희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희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보고 체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유지 씨는 다니는 교회에서 필리핀 선교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거기에 합류하게 됐다. 필리핀으로 떠난 것은 그녀에게 도전이었고, 다른 세상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필리핀에 도착한 그녀가 본 것은 쓰레기 더미에 사는 사람들과 희망이 없는 그들의 지독한 가난이었다. 유지 씨는 그렇게 빈부격차가 큰 속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그녀의 꿈을 더욱 확고히 했다.

유지 씨의 선교팀이 간 곳은 필리핀의 엥겔레스라는 마을이었다. 선교팀은 그곳의 대학에서 필리핀 문화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그곳에서 필리핀의 전통음식을 먹었고, 필리핀인들을 붙잡고 무작정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녀는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대화해야 하는 두려움을 지닌 상태로 엥겔레스의 첫 사역지인 교도소로 향했다. 그녀가 간 교도소는 작은 죄부터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한 죄를 지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무서운 공간이었다. 유지 씨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 그곳에 갔기 때문에 죄수들을 경멸하거나 두려운 눈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죄수들은 차차 웃어주고 배려해주는 따뜻함을 보일 정도로 변해갔다. 그녀는 다양한 사연들로 죄를 지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면 희망을 전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유지 씨의 선교팀은 교도소 사역을 끝낸 날 밤에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집주인 로사에게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유지 씨는 아침을 토스트와 커피, 또는 밥이랑 반찬 하나 정도로 간단하게 먹는 필리핀 문화를 경험했다. 둘째 날, 선교팀은 엥겔레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들이 준비한 국악 공연으로 우리나라 문화를 전했다.

그녀의 선교팀은 세 번째 날에 배를 타고 엥겔레스에서 조금 떨어진 섬으로 갔다. 그들이 도착한 섬은 그늘이 없어 몹시 더운 곳이었다. 그들은 현지에 사는 한국인 말에 따라 탈수의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소금을 섭취하며 생활했다. 그녀는 그곳의 교회에서 장애를 가진 한 아이를 만났다. 그녀는 그 아이의 병이 낫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다.

그렇게 유지 씨의 선교팀은 일주일 간의 선교 임무를 끝내고 필리핀에서 제일 큰 백화점인 SM몰에 갔다. 유지 씨는 엥겔레스 지역의 시장과 달리 엄청나게 큰 주차장에 가득한 차들에 놀랐다. 그곳에서 유지 씨는 필리핀의 빈부격차를 실감했다. 그렇게 필리핀 선교 일정이 끝났다.

▲ 서유지 씨가 필리핀 선교 여행 중에 학교를 방문해 현지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있다(사진 제공: 서유지 씨)

2011년, 유지 씨는 역시 방학을 이용해 필리핀보다 더 가난해서 희망이 더욱 필요한 인도로 선교 여행를 떠났다. 그녀는 방학 전 학교에 다니며 4개월 동안 인도에 대한 정보, 언어, 책을 준비했다. 유지 씨가 도착한 곳은 인도 콜카타에 있는 작은 교회였다. 그녀는 차를 타고 그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보았던 인도의 거리와 사람들을 통해 인도에서 그녀가 할 일은 가난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전하는 것임을 마음으로 되새겼다.

유지 씨가 도착한 교회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4개월 동안 연습한 인도 언어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녀는 수백 명의 아이가 예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열심히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인도의 고아원에 찾아가 희망을 전하고, 준비한 국악공연으로 우리나라 문화도 선보였다. 그녀는 “내가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밝고 순수하게만 보였던 인도 보육원 아이들이 돈을 달라고 했던 모습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의 순수함도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어 사라지게 하는 가난이 씁쓸했다”고 말했다.

▲ 서유지 씨가 인도 여행 중에 만난 현지인과 우산을 함께 나눠 쓰고 있다.(사진제공: 서유지 씨)

그녀가 방문한 콜카타에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녀의 엄마나 할머니 연배의 어른들도 많았다. 유지 씨는 그들로부터 그녀의 엄마가 떠오를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얼굴과 언어, 문화가 모두 달랐지만, 그들은 유지 씨를 자신의 딸을 대하듯 예뻐했다. 유지 씨는 가난한 인도 땅에서 희망과 사랑을 전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성장했다.

그녀는 필리핀과 인도 여행에서 직접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지독한 가난을 느꼈다. 유지 씨는 돈이 없어 공부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런 사람들에게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결심한 그녀는 희망을 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영상을 선택했다. 우리 주변에도 먹고 사는 데 급급해 진정한 가치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유지 씨는 영상이 그런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쉽고 유익한 가치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PD가 되면 <느낌표>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유지 씨는 넓은 세상에 희망을 전하고 돌아와 원래 전공했던 조경학과에서 신문방송학과로 전과했다. 유지 씨는 신문방송학과 수업을 들으며 방송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만든 인터넷 신문인 <한국취업신문>에서 정식 기자로 6개월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취업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기사들을 주로 썼다.

2013년, 유지 씨는 학교 방송국에서 VJ를 하며 영상과 처음 만났다. 그녀가 처음 만든 다큐멘터리는 고(故) 강처녀 여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 씨는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서 곰탕을 운영하여 홀로 4평 남짓한 곰탕집을 20평이 넘는 대형 식당으로 키워냈고, 1996년부터 소유하고 있던 50여억 원 상당의 건물과 토지를 부산대에 기증해 화제가 된 분이었다. 유지 씨는 강 씨의 희망을 나누는 따뜻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부산대 학생들에게 전했다.

유지 씨는 자신의 꿈,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현재 24세인 유지 씨는 학교 공부를 모두 마치고, 언론 고시 준비와 EBS 다큐멘터리 취재팀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유지 씨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 길이 누군가의 인생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이므로 힘들지 않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유지 씨는 내일도 아침 7시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꿈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나를 위한 꿈이 아닌 너를 위한 꿈을 꾸는 사람, 서유지. 그녀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언젠가는 세상에 큰 희망을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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