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얻은 두 아들과 함께 벅찬 행복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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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얻은 두 아들과 함께 벅찬 행복 나누기
  • 취재기자 조나리
  • 승인 2014.06.1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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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만 경성대 교목, "입양은 하나님의 사랑을 잇는 것"
▲김충만 경성대 교목(사진: 김충만 교목 제공)

어버이날만 이렇게 편지를 써서 죄송해요. 매일 사랑해요라는 말도 못 하는 불효자가 어버이날 때 엄마, 아빠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매일 저를 위해 일하시는 아빠. 죄송하고 감사해요. 매일 밥을 준비해주시는 엄마도 사랑해요. 저는 엄마, 아빠를 영원히 존경하고 사랑해요. 차남 김영준 올림.”

부산 경성대학교 김충만 교목(校牧)의 교목실 책장 위에는 카네이션 카드 석 장이 올려져 있다. 제법 어른스러운 글자로 쓰여진 카드부터 삐뚤삐뚤한 글자에 크레파스로 엄마, 아빠의 얼굴을 그려놓은 카드까지, 이들은 이번 어버이날에 김 목사가 세 아들에게 받은 것이다.

이 아들 부잣집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김 목사의 둘째, 셋째 아이는 가슴으로 낳은 입양아다플룻, 기타, 드럼 등 음악에 뛰어난 소질이 있는 열 다섯 살 예준, 활발한 성격과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열 두 살 영준, 애교가 넘치는 일곱 살 막내까지. 이들은 외모와 성격 모두 제각각이라 김충만 목사에게 더 특별하고 사랑스럽다.

입양에 대한 마음, 결혼, 출산, 입양

김충만 목사가 입양을 결심한 건 결혼하기도 전이었다. 김 목사는 10여년 동안 사회복지시설에서 담임 교역자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양에 대한 마음을 갖게 됐다. 자녀를 입양한다는 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결혼할 배우자의 동의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김 목사는 결혼 전 지금의 아내에게 입양 계획을 알렸다. 당시 22세였던 아내는 그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들은 이듬해인 1992년 결혼하여 입양 가정의 꿈을 더욱 구체적으로 키워갔다.

김 목사와 아내는 첫 아이를 먼저 낳고, 그 후 자녀를 입양하는 유자녀 입양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세 번의 유산을 경험하며 육체적, 정신적 아픔을 겪었다. 이 힘든 과정을 통해 김 목사는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느꼈다. 그는 사람의 생명이 인간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인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체득하고, 입양에 대한 마음을 더욱 키워 나갔다. “한 명의 자녀를 주시면 두 명을 더 사랑으로 키우겠습니다라는 그의 간절한 기도 속에, 그의 아내는 결혼 7년 반 만에 첫 아이인 예준을 직접 츨산하여 얻었다.

3년 뒤인 2002, 김충만 목사는 생후 2주였던 영준이를, 그 뒤로 5년 뒤인 2007년에는 막내 여준이를 입양해 지금의 다섯 식구가 됐다. 첫 아이가 남자 아이라 친구 같은 동생을 맺어주기 위해 아들을 입양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아들 부잣집이지만 언제나 사랑과 행복이 넘쳐난다. 김 목사는 입양을 결정한 부모들이 자연스레 다른 가족들과 얼굴이 닮지 않았다고 하면 어쩌지?’, ‘내 아이처럼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죠. 하지만 입양하고 그 걱정이 얼마나 부질 없었는지 느낄 거예요라며 입양의 즐거움을 전했다.

 

▲김충만 목사와 세 아이들, 그리고 부인(왼쪽부터)이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사진: 김충만 교목 제공).

 세 아들의 아빠, “아들을 위해서 뭘 못하랴!”

이제 그의 아이들은 벌써 중3, 초등학교 6학년, 1학년이 됐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둥이의 애교에 오늘도 김 목사의 가정에는 웃음이 넘친다. 올해 초 막내 여준이가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김 목사에게 아빠, 할아버지 같아!”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50이 훌쩍 넘어 희끗희끗 올라오던 흰 머리에도 자연스러운 게 좋다며, 염색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쳤던 아빠의 마음이 막둥이의 한 마디에 흔들렸다아들을 위해서 뭘 못하랴김 교목은 가족의 응원 속에 검은 머리로 염색했다.

이 외에도 김충만 목사는 아이들을 위해 오랫동안 해온 것이 있다. 그것은 1년에 서너 차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편지지만 육아일기 겸 시작한 일이 15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첫 생일 때, 이를 뽑았을 때 등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기록한 편지를 통해 아이들이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김 목사는 "청소년기, 유학, 결혼 등 아이들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지날 때, 이 편지를 전해 줄 생각입니다. 아이들의 20년 인생을 아버지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 아이들도 아버지가 될 거니까요. 유산이 얼마고 이런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적 가치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받은 사랑을 흘려 보내는 입양이 늘어나길

김충만 목사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를 시작으로 입양의 명문 가문을 이루는 것이다. 입양은 김 목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는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많은 기독교인들이 먼저 입양의 기쁨을 맛보길 기대하고 있다. 김 목사는 “비유컨대, 하나님과 기독교인들도 혈통적 관계가 아닙니다. 친자(親子)인 예수님을 통해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죠. 이를 '양자(養子)신학'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입양된 기독교인들이 그 받은 사랑을 입양을 통해 흘려 보내야 합니다라고 전했다.

김 목사는 강의와 채플을 통해 만나는 대학생들도 입양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서울의 교회에서 목사를 하다가 작년에 부산 경성대학교 교목으로 오게 되면서,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교목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다가 제가 결혼 전에 입양에 대한 마음을 품은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같은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저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입양했고, 입양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느끼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로서 이러한 선한 영향력이 자연스레 학생들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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