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스펙"...한국 남자들, '화장'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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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도 스펙"...한국 남자들, '화장'에 빠졌다
  • 취재기자 장가희
  • 승인 2014.07.2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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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크림 등 기초화장품은 물론 아이섀도우, 아이라이너 애용도

런던의 시장 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 화장품 시장은 매출액 기준으로 지난해 세계 1위에 이어 올해는 2위를 차지했다. 올 매출액은 6억 3,500만 달러였다. 한국 남성들은 2013년 스킨캐어에 1인당 25.30달러(약 2만 5000원)를 지출했다. 이는 2위를 차지한 덴마크보다 3배 이상 많은 액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 5월 28일자 보도를 통해서 한국 남성들은 남성 연예인이 등장하는 화장품 광고로 인해 남성용 화장품을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화장은 여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의 남성들이 화장에 빠졌다. 화장하는 남자들을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키는 것에서 유래해서 ‘그루밍(grooming) 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열린 마음, 즐김, 사치의 삶(Life of Open-mind,
Entertainment and Luxury)을 뜻하는 로엘(LOEL) 족으로 부르기도 한다. 왜 한국 남자들의 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일까?

대학생 박민형(25, 경남 거제시) 씨는 군 복무 중 피부가 급격하게 나빠져 제대 후부터 스킨캐어에 신경을 쓰게 됐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피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제대 후 피부 트러블이 자주 생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전역 이후부터 지금까지 스킨캐어에 열을 올리는 남자가 됐다. 대학생 강태구(23, 대구시 동구) 씨도 “대개 남자들은 군 복무 이후 피부를 가꾸기 시작한다”며 박 씨의 의견에 동조했다.

대학생 문정환(23, 부산시 진구) 씨는 취직과 그 후의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 문 씨는 스킨, 로션, 에센스, 수분크림, 팩 등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보습제 미스트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얼굴에 뿌린다. 그는 4년 째 BB크림도 쓰고 있다. BB크림은 상처 치료용 연고인 ‘블레미시 밤(Blemish Balm)’의 약자로 남자들이 얼굴 잡티를 가려주고 피부 톤을 정리해준다고 해서 사용하는 화장용품의 일종이다. 지금까지 문 씨가 미에 투자한 금액은 50만 원을 웃돈다. 그는 “(외모가) 여자를 만날 때도 중요하지만, 특히 요즘은 외모도 스펙의 한 부분이어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재호(22, 경남 김해시 장유면) 씨는 군복무 후부터 열심히 CC크림을 얼굴에 바르고 있다. CC크림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complete correction, 또는 color change의 약자로 BB크림과 유사하게 피부 톤을 보정해주는 화장품이다. 이 씨는 남자들도 피부를 관리하는 게 당연하고 화장도 자기관리 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는 “남자들은 화장을 통해서 좀 더 단정하게 남에게 보이려고 한다. 남자들이 화장을 꺼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연극배우 신모(27, 부산시 사하구) 씨는 여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화장하고 있다. 신 씨의 가방에는 항상 화장품 케이스인 파우치가 들어있다. 그의 파우치에는 BB크림은 물론, 아이섀도우, 아이라이너, 그리고 선 팩트까지 들어 있어 여자들의 파우치와 별 다를 게 없다. 그는 직업이 배우라 애초부터 화장품이 낯설지 않았다. 어느덧 무대에 오를 때만 분장하던 그가 일상생활에서도 화장을 하게 됐다. 그도 처음에는 BB크림만 발랐다. 하지만 BB크림을 바르다 보니 피부 말고도 다른 부족한 점들이 보였고, 그러다 아이라인도 그리게 됐다. 아이섀도우도 쓰다 보니, 그의 화장은 여성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됐다. 2년 전 그는 코 성형도 받았다.

회사원 김모(58, 인천시 연수구) 씨는 중년을 넘긴 나이인데도 BB크림을 바른다. 그는 우연히 딸의 화장품을 썼는데 얼굴이 말끔해 보여서 그 뒤로 계속 발랐다. 그러다 급격하게 화장품이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된 딸의 ‘취조’에, 김 씨는 그가 썼던 딸의 화장품이 BB크림인 줄 알게 됐다. 김 씨는 그후 자신의 BB크림을 사서 로션처럼 사용하고 있다. 김 씨는 “나이 먹은 나도 얼굴이 달라지는데, 젊은 애들은 약간만 화장해도 얼마다 더 멋있어지겠냐”고 말했다.

세태가 이렇게 변하자, 화장하는 남자를 보는 시선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여대생 김보미(22, 부산시 동구) 씨는 “더 멋있어 보이기 위함이라면 남자 친구가 화장을 해도 상관없다”며 오히려 “왜 그게 문제가 되냐?”고 반문했다. 교사인 이모(48, 부산시 해운대구) 씨도 아들이 BB크림을 쓰는 것을 알고 있지만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도 아들이 여자처럼 진한 화장만 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기 관리의 한 부분일 뿐 굳이 터치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여대생 조은지(2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남자들이 BB크림 정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하다. 그녀는 쌍꺼풀 수술을 한 사람들이 흔해지면서 쌍꺼풀 수술을 성형수술로 생각지 않는 것처럼 BB크림도 화장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 씨의 남자 친구의 친구들 10명 중 5명이 기본으로 BB크림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내 남자 친구가 나와 함께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하는 것은 싫다. 그러나 피부톤 보정을 위해 BB크림을 쓰는 것은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여대생 정지미(22, 부산시 동구) 씨는 ”남자가 화장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남자가 화장하면 아마 외국에서는 게이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임태기(48, 부산시 사하구) 씨가 쓰는 화장품은 스킨과 로션이 전부다. 그는 남자들의 화장에 대해 기겁했다. 임 씨는 “왜 남자들이 여자의 물건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실제로 화장하는 남자들이 그렇게 많냐”고 반문했다. 회사원 윤재연(51,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남성과 화장은 같이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라며 “세상이 미쳤다”고 말했다.

부산경상대학 패션뷰티계열 김미령 교수는 남성 화장품이 화장품 업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를 정도로 남성들의 외모 가꾸기나 이미지 관리가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문화로 유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외모가 하나의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화장품 업계의 마케팅이 남성 화장 풍조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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