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까지 "립스틱 짙게 바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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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까지 "립스틱 짙게 바르고.."
  • 취재기자 조소영
  • 승인 2014.01.2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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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세대 점차 하향화... 초등생 겨냥 화장품 마케팅도 등장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부산시 화명동의 주부 김은실(43) 씨에게 고민이 하나 생겼다.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딸이 친구들과 놀러 갈 때면 자신 몰래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무슨 돈으로 화장품을 사서 여리고 여린 얼굴을 붉게 화장하고 다니는지 기겁을 할 일이었다.

성인 여성의 전유물인 화장이 고등학생, 중학생을 넘어 초등학생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화장은 주로 방과 후에 이뤄진다. 화장 방법도 다양하다. 피부색을 보정하는 비비크림과 입술에 색을 더하는 틴트부터 마스카라, 컨실러, 블러셔 등 다 갖춘 화장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부산시 북구 명진초등학교 6학년 김현지(12) 양은 “학교 갈 때는 선생님한테 걸리니까 화장을 잘 하지 않아요. 대신 학원 갈 때나 친구들을 만나서 놀 때 하죠”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화장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예뻐 보이기 때문이다. 부산시 연제구 동명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진경(12) 양은 “마스카라를 바르면 눈썹이 올라가서 신비스럽고 인형 같아 보여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화장품을 구입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화장품 가게에 가서 원하는 화장품을 사기만 하면 된다. 박 양은 “화장품을 사는데 가게 알바 언니들이 막지 않아요. 이게 더 좋다고 추천도 해줘요”라고 말했다.

초등학생까지 화장이 번지게 된 데는 초등학생들도 고객으로 보는 판매업자들이 있다. 실제로 김해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여민주(23) 씨는 “초등학생 손님들이 정말 많이 와요. 그렇지만 가게에서 초등학생에게 화장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진 않아요. 오히려 사장님은 매출에 신경 쓰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비싼 제품을 권하라고 점원들에게 지시해요”라고 말했다.

어떤 화장품 매장은 초등학생들에게 꿈의 공간처럼 보이게 인테리어 치장을 하거나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에뛰드하우스의 한 매장에 들어서면 종업원들이 “어서 오세요, 공주님”이라고 한다. 가게 내부도 온통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어 아이들에게 진짜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또 네이처 리퍼블릭은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모델로 발탁해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특히 어린 고객들이 일정 금액 이상을 구입하면 연예인 브로마이드와 미니 등신대(세울 수 있게 만든 사람 크기의 사진)를 준다는 마케팅을 펼쳐 초등학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시 북구 용수초등학교 최예진(12) 양은 “원래 화장을 안 하는데 좋아하는 연예인 브로마이드를 갖고 싶어서 화장품을 샀어요. 사고 보니 아까워서 화장품도 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네이처 리퍼블릭 관계자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에 대해 “회사 내 규정에 딱히 고객을 선별해서 판매하라는 게 없어서 고객으로 오신 모든 분들께 구분 없이 화장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체를 분홍색으로 꾸며놓은 화장품 가게 모습이다(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성장기 청소년들 피부에 화장품이 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청소년들에게 화장품 판매를 금지하는 법은 없다. 2013년 12월 6일부터 시행된 화장품법 시행규칙 제19조 3항 별표에는 영유아용 화장품에 대해서만 규정돼 있다. 여기에는 만 3세 이하 영유아용 샴푸, 린스, 로션, 목욕용품 등에 대해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결국, 현재로는 화장품 회사들이 초등학생을 비롯한 청소년용 화장품을 제조하거나 이들에게 화장품을 파는 것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 다이소 쇼핑센터는 초등학생에게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게시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조소영).

한편 종합쇼핑센터 다이소는 색조 화장품을 초등학생들에게 판매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다이소 화장품이 인체에 무해하지만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어린이들의 연약한 피부에는 위험할 수 있어 회사 방침으로 그렇게 정했다는 것이다. 부산 북구의 다이소 매장에서 근무 중인 박모 씨는 “요즘 아이들은 발육이 좋아서 초등학생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 티가 나요. 애매한 경우에는 나이나 학년을 상세히 물어보죠”라고 말했다.

자체적으로 화장을 규제하는 초등학교도 있다. 부산 북구 덕성초등학교는 교칙으로 학생들의 화장을 금하고 있다. 이 학교 진언주(39) 교사는 “4학년 아이들 중에도 화장하는 아이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어요. 아이들 건강을 생각해서 교칙으로 화장을 금했어요”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사상구 주감초등학교 어린이 자치회는 어린이 화장에 관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토론 결과, 초등학생이 화장하는 것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고 거부감이 든다는 자체 의견이 많았다. 이 학교 신혜련(48) 교사는 “어린 나이에 화장해서 피부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또, 대부분 그 나이에 화장을 시작한 아이들이 학습 의욕도 낮고 학습 도달도가 높지 않은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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