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한계를 알고 싶어 250km 사막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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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계를 알고 싶어 250km 사막을 달렸다"
  • 취재기자 배혜진
  • 승인 2014.04.0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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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 한국 여성의 '죽음의 사하라 레이스' 도전기
▲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출전한 양유진 양의 모습(사진 출처: www.4desert.com)

지난 2월 중순, 26세 작은 체구의 한국 여자가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을 달리고 있었다. 가도가도 황량한 모래 뿐. 얼마나 달렸을까. 아니 얼마나 걸었을까. 이미 체력은 완전 바닥났다. 단지 붕대를 칭칭 감은 두 다리가 지친 몸을 이끌 뿐이다. 레이스 첫째날 이미 발톱 몇 개는 빠져버렸다. 발바닥엔 온통 물집이 생겼다. 그런 상태에서도 달리고, 또 달렸다.

7일간의 지옥의 레이스가 끝나고 드디어 결승점을 통과했다. 온 몸에 감각이 가물가물했다. 아마 누가 내 몸을 세게 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행사 관계자들의 축하인사와 격려를 아스라히 귓전에 흘려버린채 그는 그대로 모래바닥에 누워버렸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지만 사막의 하늘인 탓인듯 뿌연 잿빛이었다. 다 끝났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뤄냈다는 섬취감으로 그의 두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양유진(경희대 체육학과 4년) 씨는 지난달 2월 16일부터 22일까지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원래는 이집트 사하라 사막 레이스이지만, 이집트의 정정불안 때문에 올해는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에서 개최되었다. 결승점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배경이 된 페트라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유진 양이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도전한 이유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 무언가에 미치도록 노력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제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었고, 사하라 레이스에 대해 찾아 볼수록 정말 도전할 만한 뜨거운 경험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 사하라 사막(사진 출처: www.4desert.com)

사하라 사막 마라톤은 어드벤처 레이스 회사인 레이싱 더 플래닛(Racing The Planet)에서 개최하는 4대 사막 레이스 가운데 하나로, 전세계 각지에서 2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매년 도전한다.

유진 양은 올해가 지나기 전에 남은 3개의 사막과 남극 레이스를 완주해 ‘대한민국 최연소 여자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진 양은 지난해 도서 <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유영만, 유지성 저)> 북 홍보 이벤트에 당첨되기 위해 사하라 마라톤에 대한 간절함과 열정을 담아 동영상을 제작했다. 결국 그녀는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사하라 마라톤 참가비와 항공료 등 약 6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출전이 확정되고 나서는 국내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N사에서 1년간 스포츠 물품을 지원받는 스폰서 계약을 얻어냈다.

유진 양은 레이스 출발 당시 출발선에 선 그녀의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고, 10kg의 가방이 어깨를 눌러 ‘걸을 수는 있을까?’를 걱정했다.

“3일차까진 계속 뛰었고, 4일차 때는 다리를 다쳐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어요. 그런데 5일차 땐 86km를 1박 2일 동안 쉬지 않고 걷는 레이스였어요. 진통제를 먹고 5시간이 지나면, 아예 제 다리가 아닌 것 같았죠.”

유진 양은 정오엔 따가울 정도로 뜨겁게 데워진 모래 위를 뛰었고, 해질녘 즈음엔 차마 눈에 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1박 2일을 쉬지 않고 걷는 구간에서는 몇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기도 했다.

유진 양에게 레이스 도중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묻자, 그녀는 "사막에서 뜨는 해를 보았을 때"라고 대답했다.

“밤새 텐트 안에서 얼굴에 비를 맞고 잔 날이 있었어요. 다음날 새벽엔 축축해진 모래에 발이 10cm 이상 푹푹 빠져서 걸을 수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저 멀리서 뜨겁게 타오르는 듯 해가 이글이글 떠오르더라구요. 그 순간 제 영혼을 다 가져가 버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왠지 모르게, 다시 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어요.”

유진 양은 끝까지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입상권을 노렸던 친한 동생이 더이상 약이 듣지 않을 정도로 다쳐 실격처리를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언닌 꼭 완주해!"라고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유진 양은 동생과의 약속 덕분에 턱 끝까지 숨이 차 쓰러질 것만 같았던 순간들도 넘길 수 있었다.

사하라 레이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유진 양은 국내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잡지 촬영과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각종 포럼에 초청되어 강연하기도 했다. 몇 주 전부터는 올 해 6월에 있을 중국 고비사막 레이스에 출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유진 양은 “다신 돌아오지 않을 20대를 후회없이, 낭만적으로, 하지만 책임감 있게 살 수 있어서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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