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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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칼럼니스트 김수성
  • 승인 2014.03.17 09: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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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나온다.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이 공산주의자가 쓴 불온서적이라는 것이다. 검사는 배석한 전문가에게 묻는다. 맞단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부림사건’의 핵심인물들이 용공세력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강우석 변호사는 저자인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가 영국의 외교관이었다며 영국 정부에서 보내온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며 반박한다. 그는 피고인들이 양서를 읽기 위한 단순한 독서모임이었다고 변론한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책은 ‘불온서적’임에 분명하다.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민중이 역사를 제대로 알면 독재를 할 수가 없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와 평등을 향해 도도히 흘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거스르려면 폭압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권은 당근을 주면서도 은근슬쩍 무시무시한 채찍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 몸뚱이는 네 것이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최근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문득 <변호인>의 이 장면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그 사건은 서울시청 공무원 간첩사건이다.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북한이탈주민 유우성 씨가 북한에 들어가 탈북자 정보를 북한당국에 넘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판을 하는 과정에 유 씨의 여동생이 국정원에서 회유와 협박 등으로 거짓 진술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 씨는 1심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간첩협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항소심에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국정원에서 검찰을 통해 증거로 제시한 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의 서류가 위조된 것이란다. 검찰에서는 이 서류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외교부를 통해 사실조회 요청을 했는데, 진본이 맞다는 확인서를 수신했기 때문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진위 확인서도 위조된 것이라고 한다.

이 위조서류와 관련된 조선족이 검찰의 조사를 받던 중 서울의 한 호텔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그는 돈을 받고 국정원에 정보를 제공해온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은 유 씨의 간첩사건이 아니라, 국정원의 서류 위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일파만파로 커져나갔다. 유 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 직원의 주도로 증빙서류를 중국 공안국 등에서 발행한 서류인 것처럼 위조하여 법정에 제출한 것이다. 급기야 국정원에서 이에 대해 사과하고 나섰다. 그리고 국정원 직원 개인이 주도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서 국정원에 협조했던 조선족은 구속되었고, 그는 국정원 직원이 서류 조작에 관여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도 국정원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국정원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그런데 위조된 서류인지도 모르고 검찰에 증거로 제시했다는 말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국정원은 검찰도 속이고, 법정도 속이고, 국민도 속이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가 중국과의 외교문제도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국가기관인 국정원에서 서류를 위조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처음에는 피의자의 여동생을 회유하고 협박했고, 다음으로 위조 서류를 제출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국정원이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낄 것이다.

책장 구석에 쌓아놓은 책 중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찾아 끄집어냈다. 그 책은 누렇다 못해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발행일을 보니 부림사건이 일어났던 1981년(3판)이다. 책을 뒤지다보니 줄친 부분이 눈에 띈다.

“정적인 세계에서 역사는 무의미하다. 역사는 그 본질에 있어서 변화이고 운동이며, 또한 -낡은 언어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진보이다.”

문득, 당시 금서(禁書)였던 구티에레즈(Gutierrez)의 <해방신학>이 기억난다. 대청동에 있던 ‘양서조합’에서 은밀히 구입해 허겁지겁 읽었던 책이다. 다른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앞부분에 나왔던 의미는 또렷이 기억한다. ‘싫든 좋든 우리의 삶은 정치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치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억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번 간첩사건은 박근혜 정부가 어떤 정권인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김수성은 국제신문 기자였으며, 경성대 대학원 언론홍보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경성대에서 외래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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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원 2019-02-15 03:24:02
박근혜대통령스마트폰핸드폰도박사건물건그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