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여배우의 손을 공개적으로 잡는 ‘행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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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여배우의 손을 공개적으로 잡는 ‘행운아’
  • 취재기자 이현경
  • 승인 2013.10.28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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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핸드프린팅 전담 조각가 김학제 씨에게 듣는다

이 남자는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여주인공 줄리에트 비노쉬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것도 아주 부드럽게 꼬옥. 그에게 섬섬옥수같은 손을 내맏겼던 여배우 리스트에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여주인공 이자벨 위페르도 있다. 한결같이 전 세계 남자들이 흠모에 마지않은 세기의 연인들이다. 국내 여배우들의 대모 김지미와 최은희의 손도 그의 손에 잠시 머물렀다. 그의 손길은 세계적인 남자 거장들의 손에까지 미쳤다. 뤽 베송, 장이모, 올리버 스톤, 기타노 다케시, 신상옥, 김기덕, 임권택과 같은 남자 거장들도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이 행운아의 이름은 김학제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다. 그가 세계적 배우와 감독들의 손을 잡는 행운을 누리게 된 비밀은 바로 그가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전담 조각가이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발상지인 남포동 BIFF 광장에는 그에게 손이 잡혀 손자국을 남긴 세계적 거장과 배우들의 핸드프린팅이 거리를 수놓고 있다. 핸드프린팅을 하기 위해서는 선정된 배우나 감독들이 준비된 석고에 손을 꾹 눌러 모양틀을 만들고, 여기에 조각가가 주물을 부어 동판을 제작해야 한다. 크기는 작지만, 핸드프린팅도 그래서 엄연한 조각 작품이다. 조각가가 핸드프린팅을 담당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핸드프린팅하는 조각가가 왜 유명인들의 손을 잡아야 할까? 그냥 배우 본인이 설명을 듣고 석고판에 손바닥을 꾹 누르면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명한 손바닥 자국을 고스란히 석고판에 남겨야 온전한 동판 핸드프린팅이 나오는데, 조각가가 손수 유명인의 손을 잡고 누르는 압력을 적절히 도와줘야 작품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학제 씨는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 행사 때 항상 그 해의 게스트와 나란히 단상에 오른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석고판에 손자국을 남기는 과정을 주관한다. 이것이 세계적 배우와 거장들의 손을 잡는 예기치 않은 행운을 그가 잡은 이유다.

▲ 2011년 제16회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핸드 프린팅을 도와주고 있는 조각가 김학제 씨. 사진 맨 왼쪽에서 하얀 장갑을 낀 이가 김학제 씨다(사진 출처: 부산 국제영화제 홈페이지).

원래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는 핸드프린팅이 아니고 싸인 만이 동판에 새겨지는 싸인프린팅으로 시작되었다. 다음 해인 1997년 제2회 때부터는 이것이 정식 핸드프린팅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18회까지 모두 59명의 세계적 영화계 저명인사들의 소중한 핸드프린팅을 만들어 냈다.

김학제 씨가 1회부터 지금까지 18년 간 부산 국제영화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된 것은 1996년 1회 때 부산시가 주최한 부산국제영화제 탄생 기념 영화제 상징 조각상 공모전에서 당선된 것이 계기가 됐다.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상징조각상 당선자인 김 씨에게 내친 김에 핸드프린팅 조각도 전담해 줄 것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공모전 입상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1등을 하게 돼서 기뻤고, 이 일을 계기로 영화제 핸드프린팅 일을 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생각할수록 내 인생에서 정말 뿌듯하고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쁜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학제 씨의 영화제 상징조각상 당선작은 지금도 당당히 남포동 BIFF 광장을 지키고 있다.

▲ 김학제 씨가 제작한 부산국제영화제 기념 BIFF 상징 조형물(사진 출처: 김학제 씨 제공)

사람들은 거장들의 손을 만지는 그를 행운아라 부르지만, 김학제 씨는 그게 행운만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김 씨는 핸드프린팅 행사 때마다 게스트 옆에서 직접 게스트 손을 잡고 압력의 강도를 조절해 줘야 한다. 그럴 때마다 김 씨는 “조각가인 내가 무대에 서서 카메라 세례를 받는 것도 떨리는데, 거기서 거장들의 손을 내가 힘을 줘서 눌러야 할 때면 긴장감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몸이 떨린다”고 말했다. 주변의 시샘과는 달리 세계적 명사들의 손을 만진다는 것이 항상 부담스러웠던 그는 하나의 묘책을 생각해냈다. 그것이 바로 ‘하얀 장갑’이었다. 그는 초창기에는 맨손으로 영화인들의 손을 만졌지만,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최근 몇 년 전부터는 깨끗하고 하얀 장갑을 일부러 준비해서 스타들의 손을 잡고 핸드프린팅 동작을 돕고 있다.

▲ 독일 영화 감독 빔 밴더스의 핸드프린팅(사진: 김학제 씨 제공)

18년 동안 수많은 영화계 거장들이 핸드프린팅 행사를 가졌지만.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다큐멘터리 감독이며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장이기도 했던 독일의 빔 밴더스 감독의 핸드 프린팅 행사를 갖던 날이 유독 그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날은 기온이 매우 낮았고 습도가 높은 날이어서, 날씨에 민감한 석고가 잘 굳지 않는 일이 생겼다. 빔 밴더스 감독은 무대 위에서 20분이 넘는 시간을 추위에 떨며 석고가 핸드프린팅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딱딱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오래 서 있었던 빔 밴더스 감독은 “내가 무릎을 꿇고 석고가 굳기를 기다려야겠다”고 말하며 실제 무릎을 꿇어 긴장됐던 행사장을 한순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렸다. 김 씨는 “세계적인 거장의 센스 때문에 나도 그 순간을 쉽게 넘길 수 있었다. 그후,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학제 씨는 자신의 예술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핸드프린팅을 절대 놓고 싶지 않을 만큼 핸드프린팅에 애착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핸드프린팅 작품은 그 안에서 세계적인 영화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감정을 보는 사람 모두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핸드프린팅을 영화 예술가와 조각가가 함께 만든 예술 작품이라고 정의한다. 김 씨에게 핸드프린팅은 조각 이상의 예술 작품인 것이다. 김 씨는 “핸드프린팅이라는 작품을 만들 때는 내가 영화 예술의 한 부분이 되는 느낌이 든다. 세계적인 거장들을 만나고 그들의 핸드프린팅을 내가 만든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고 가슴 벅찬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학제 씨는 1957년생으로 홍익대학교 조각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9년 서울현대조각공모전 특선, 1990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1991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각각 수상한 국내 정상의 조각가다. 1992년부터 동아대학교 조각과 교수로 제자들을 양성했던 그는 2010년 동아대학교 교수직을 사직하고 지금은 서울의 작업실에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1년 중 대부분을 서울의 작업실에서 보내는 그에게 부산국제영화제 핸드프린팅을 위한 가을 부산 나들이는 영화계 거목들과 함께 하는 창작 여행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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