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전체기사 뉴스 기획 황령산칼럼 오피니언 카드뉴스 동영상 콘텐츠 DB 아미동 비석마을과 영도다리에서 6.25 피란민의 애환을 만나다 아미동 비석마을과 영도다리에서 6.25 피란민의 애환을 만나다 북한군 불법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피란민은 집을 잃은 채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부산까지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피란길은 혼란스러웠다. 가족의 손을 놓치면 그대로 이산가족이 됐다. 그래서 피란민들은 “만약 헤어지게 되면 부산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천리타향 부산에 내려왔으나 몸 누일 곳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갔다.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피란수도였던 부산에서 비석문화마을과 영도다리, 점바치 골목을 통해 당시 상황을 만나볼 수 있다.갈 곳 없는 피란민 문화 | 취재기자 오현희 | 2021-11-08 18:30 처음처음1끝끝
아미동 비석마을과 영도다리에서 6.25 피란민의 애환을 만나다 아미동 비석마을과 영도다리에서 6.25 피란민의 애환을 만나다 북한군 불법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피란민은 집을 잃은 채 계속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부산까지 밀려올 수밖에 없었다. 피란길은 혼란스러웠다. 가족의 손을 놓치면 그대로 이산가족이 됐다. 그래서 피란민들은 “만약 헤어지게 되면 부산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천리타향 부산에 내려왔으나 몸 누일 곳이 있을 턱이 없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갔다.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피란수도였던 부산에서 비석문화마을과 영도다리, 점바치 골목을 통해 당시 상황을 만나볼 수 있다.갈 곳 없는 피란민 문화 | 취재기자 오현희 | 2021-11-08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