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시원한 바람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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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시원한 바람 같은 것”
  • 취재기자 김영우
  • 승인 2013.08.2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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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문학상 수상 <밤의 눈> 작가 조갑상 교수의 소설 이야기
▲ 조갑상 교수(사진: 김영우 취재기자)

출판사 '산지니'가 펴낸 소설 <밤의 눈>은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중에 일어난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 사건’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국민보도연맹(보련)이란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이 좌익 지식인들을 별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여기서 보도(保導)란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전세가 기울자, 이들 중 전향하지 않았거나 회유되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에 협조할 것을 의심한 이승만 정권은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했다. 이것이 바로  ‘국민보도연맹사건’이다.

당시 살해된 사람은 국민보도연맹 가입자를 포함해 최소 2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에는 실제로 좌익 성향을 버린 사람도 있었고, 좌익 활동을 했다고 의심하기 힘든 민간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쾌하게 규명되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 중 하나로 남아있다.

보련 학살 사건에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연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이것을 소재로 소설을 썼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렇지 않다. 보련 사건을 소설화한 장편 소설은 <밤의 눈>이 처음이다.

<밤의 눈>의 작가는 경성대학교 국문과 교수이면서 현역 작가인 조갑상 교수다. 조 교수는 <밤의 눈>으로 이번에 2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조갑상 교수는 어쩌다 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을까?  조 교수는 한국전쟁의 민간인 희생 문제, 특히 보련 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누군가는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히 문학의 소재를 정하는 것은 작가 개인의 관심에 크게 좌우된다고 하지만, 조 교수는 개인의 관심을 떠나서 “우리나라 작가들이 분단 현실을 놓칠 순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소재를 정하더라도 소설을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을 다시 복원시키는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조 교수가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직 아물지 못한 유족들의 다친 마음이었다. 조 교수는 자료 조사 과정에서 많은 유족들을 면담했다. 그는 “보련 피해 유족들이 내 소설을 통해 과거를 환기함으로써 그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는지가 가장 큰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이 소설이 한국 전쟁 때를 다룬 과거 이야기지만, 유족들 측면에서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보련 유족들은 4•19민주혁명 후 유족회를 결성하고 활동하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탄압을 당하는 등 유족들 역시 보련 사망 당사자 못지않은 시련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 교수가 쓴 소설 자체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실제 모델이 있다고 봐야한다. 소설은 다른 문학 장르와 비교했을 때 시보다는 현실과의 관계가 밀접한 장르라고 한다. 어떤 사실을 빌려서 허구로 바꾸는 장르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설 맨 앞장에 “다 진짜는 아니지만, 다 거짓말도 아니다”라는 이슬람 어느 이야기꾼과 청중과의 대화가 인용돼 있다. 조 교수는 “그래서 현실을 다루지만, 그 현실은 어디까지나 소설로 바뀐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독자들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밤의 눈>으로 올해로 28회를 맞는 만해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조 교수는 “이 만해문학상은 역사도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소설이라는 작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문학 전체를 수상 대상으로 하는 상을 탔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말하며 “이 상이 수도권과 지방을 따지는 건 아니지만, 지방에서 작가 하는 사람 중에서는 두 번째 받은 거라고 하던데, 그런 면에서 더 좋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만해문학상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韓龍雲:1879∼1944)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여 민족 문학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주)창비가 1973년에 제정한 문학상이다. 등단한 지 10년이 넘은 작가를 대상으로 문학적 업적을 살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고 있다.

조갑상 교수는 1949년 10월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에 전국에서 단 한 군데밖에 없었던 소설가 양성 학과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은 다른 특별한 계기나 동기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저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대한 취미가 있었기에 소설가가 됐다고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조 교수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백일장에 지속적으로 나갔다. 그게 자연스럽게 대학 전공까지 소설 창작을 배우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개인의 취향하고 다르게 문학에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입시나 취업 때문에 요즘 학생들이 실용서나 에세이 종류를 많이 읽고 문학의 본류라고 하는 시나 소설은 덜 읽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당장은 문학이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나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해주는 자극을 주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시원한 바람 같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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