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백사장 계단은 ‘헌팅의 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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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백사장 계단은 ‘헌팅의 메카’
  • 취재기자 최서영
  • 승인 2013.07.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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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기대한 젊은 남녀 줄줄이.. 성공률 100%도

늦은 밤이지만 피서객들로 북적이는 해운대 백사장. 그 백사장과  아스팔트 산책길이 만나는 곳에 설치된 시멘트 계단에 젊은 여자 세 명이 담소를 즐기며 앉아 있다. 바로 뒤에서 이들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남자 세 명이 슬며시 다가오더니 말을 건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돌리곤 다시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수다를 떤다. 남자들은 몇 번 더 말을 걸어보다 반응이 시원치 않자 인상을 쓰며 발길을 돌린다. 이런 수작들을 옆에서 보고 있던 또 다른 남자 3명. "이번엔 우리 차례"라는 듯 그들도 슬그머니 다가간다. 새로 나타난 남자들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여자들. 이번에는 마음에 든 듯 웃음을 머금고 응대를 한다. 앉거니 서거니 하며 몇 분 동안 얘기를 나누던 남녀들은 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피서철 전국적으로 이름이 높은 ‘해운대 헌팅’의 한 장면이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선 이런 헌팅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이렇게 헌팅하기 좋은 명소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07년쯤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카페에 해운대에서 헌팅에 성공한 후기들이 많이 올라오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여름철 해운대 해수욕장은 전국적인 ‘헌팅의 메카’로 불리게 됐다. 검색사이트에서 ‘해운대 헌팅’을 입력하면 놀랄 정도로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의 헌팅은 해운대 백사장 전체를 휘감은 계단에서 이뤄진다. 해운대 해변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백사장을 거닐거나 백사장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게 통상적이다. 파도가 바로 앞에서 철썩이는 백사장을 놔두고 굳이 바다에서 떠러진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게 포인트다. 해운대 백사장이 아닌 계단에 앉아 있는 행위가 바로 헌팅을 기다린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 아쿠아리움 근처에 있는 계단이 가장 유명한 헌팅 포인트다. 이곳 백사장 계단에 여자들이 앉아 있으면, 남자 무리가 짝수가 맞는 여자 무리를 골라 다가가서 술자리 합석을 권하는 것이 해운대 헌팅의 매너다. 서로가 마음에 들면, 곧바로 술을 먹으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일부는 백사장으로 내려가 돗자리를 깔고 술자리를 벌이기도 하고 일부는 근처 술집으로 가기도 한다.

경남 진주시 신안동에 사는 남자 대학생 진모(25) 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해운대는 헌팅이 100전 100승이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나도 성공했다. 이러다 보니 헌팅하러 해운대에 간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중구에 사는 남자 대학생 김모(27) 씨도 매년 여름만 되면 헌팅을 위해 해운대로 놀러 온다. 그는 “아닌 여자들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봤을 때, 계단에 여럿이 앉아있는 여자들은 다 헌팅이 목적이었다”며 “덕분에 여태까지 계단에서 (헌팅에)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친구  두 명과 계단에 앉아 있던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여자 대학생 최모(23) 씨는 헌팅 때문에 계단에 앉아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 온 적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라면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해운대 계단은 하나의 룰 같은 것이다. 계단에 앉아있으면 먼저 헌팅을 안 해도 알아서 헌팅이 들어오니까 편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헌팅 계단’의 암묵적인 룰을 모르는 사람들은 계단에 앉았다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여대생 이예지(22) 씨는 밤에 산책하러 해수욕장에 나왔다가 잠시 백사장 계단에 앉았는데 헌팅 제안을 10분 동안 일곱 차례나 받았다. 이 씨는 “바다를 보려고 앉았는데, 자꾸 남자들이 와서 술 한 잔 먹자고 말을 걸어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계단에서 원래 헌팅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바닷가에 헌팅하러 오는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닌데 계단에 앉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헌팅을 바라는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불쾌하다”고 전했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백사장은 돗자리를 깔고 술자리를 벌이는 남녀들로 가득했다. 백사장을 돌아다니며 돗자리를 판매하는 상인까지 보인다. 게임도 하면서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 일어나 술자리를 정리하곤 백사장을 떠났다.

대구 동구에 사는 남자 대학생 이모(24) 씨는 “솔직히 말하면 가볍게 만나서 술 먹고 노는게 좋아서 헌팅을 하는 것”이라며 “헌팅해서 만난 여자들이랑은 하루도 안가서 연락이 끊어지는데, 오히려 그게 부담이 없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 해운대 백사장에서 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다가가 헌팅을 제안하고 있는 모습. (사진:최서영 취재기자)

문제는 이런 헌팅이 하룻밤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험한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헌팅을 단순히 술자리를 재밌게 즐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성관계를 염두에 두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헌팅 때문에 해운대에 왔다는 서울 서초구 거주 남자 회사원 박모(28) 씨는 “솔직히 비싼 차비까지 들여서 왔고, 술값도 내가 내는 건데, 술 한 잔 같이 먹고 헤어지는 건 짜증난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랑 같이 술만 먹으려고 술값내고 시간 들이는 건 아니라고 본다. 까놓고 말해서, 다 어떻게 해보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부산 수영구에 사는 여대생 정모(22) 씨는 실제로 헌팅으로 술자리에 합석하게 된 친구가 술을 과도하게 마셔 정신을 잃었는데, 같이 술을 마셨던 남자에게 큰 일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친구가 정신을 차려 다시 눈을 떠보니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 한 명이 자기를 부축하면서 모텔로 데려가고 있길래 재빨리 도망쳤다더라. 그 때 친구가 부끄럽기도 하고, 남자들 신원을 몰라 신고를 못 했다고 했는데, 이 일을 통해 헌팅은 웬만하면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헌팅 같은 만남에선 신원을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으니 알아서 몸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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