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보단 못하지만 우리도 매서운 야구해요"
상태바
“롯데보단 못하지만 우리도 매서운 야구해요"
  • 취재기자 신민근
  • 승인 2013.05.2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첫 여성 야구단 '빈 야구단' 훈련장 참관기
▲ 빈 여자 야구단 팀원 일동(사진: 빈 야구단 제공)

가족 단위 나들이 인파로 가득한 5월 어느날 부산 삼락공원.  그 한 켠에 조성된 미니 야구장에서 유니폼을 제대로 갖춰 입은 일단의 야구단이 2인 1조로 짝을 이뤄 투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다리를 크게 든 다음 온몸을 던져 야구 글러브를 향해 공을 내려꽂는 품새가 여느 프로 야구 선수들 못지 않았다. 퍽! 퍽! 멀리서도 우렁차게 들리는 소리로 보면 구위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롯데 야구단 2진 연습장인가? 근데 자세히 보니 선수들 모자 뒤로 긴머리 묶음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닦으며 공을 뿌리는 이들은 부산의 첫 여성 야구단인 ‘빈 여성 야구단’이다. 빈 야구단은 한자로 빛날 빈(彬) 자를 써서 만든 이름으로, 풀이하면 ‘빛나는 야구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빈 여자 야구단의 왕진희 감독(사진: 신민근 취재기자)

빈 야구단은 2004년 4월 창단되어 지금까지 9년의 역사를 지녔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창단된 여성 야구단이며, 현재 21명의 회원들이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9년에 열린 계룡 시장기배 전국 여성 야구대회에서 8강에 올랐고, 2011년에는 부산과 대구의 여성 야구팀들이 벌이는 리그인 영남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력이 있다.

“자, 자, 파이팅, 화이팅!!”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 틈 사이로 연신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중년 여성이 있다. 헌칠한 키에 유난히 뽀얀 피부를 지닌, 빈 여성 야구단의 감독인 왕진희(42) 씨다. 현재 직장인인 그녀는 빈 야구단의 창립 당시 최초 멤버는 아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과 팀에 대한 애정은 역대 감독들과 비교하여 뒤지지 않는다. “감독 자리요? 하하! 전 야구 규칙도 잘 모릅니다. 뭐, 별거 있나요, 그냥 선수들하고 함께 호흡하면서 열심히 하는 거죠.”

왕 감독은 감독 겸 선수로 뛰고 있다. 빈 여성 야구단 뿐 아니라 다른 여성 야구팀들도 감독이 선수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팀이 선수들의 회비를 걷어 운영하는 동호회 형식으로 운영되어, 전문적인 코칭 스텝을 따로 마련한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선수들이 많이 없어서, 감독, 선수 따로 구별해서 운영할 형편이 못 돼요”라고 말했다.

“감독직은 하고 싶은 사람이 신청을 하면, 투표로 정하거나, 추천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사실 선수나 감독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오히려 팀을 잘 챙겨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하나 더 안고 경기에 참여해야 되기 때문에 서로 잘 안 하려고 하죠.” 그녀는 감독을 맡으면서 가장 힘든 점은 선수들을 고르게 기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똑같은 회비를 내고 참여하는데 잘 한다고 그 선수만 계속 기용하면 선수들 간에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지고 있는 게임에서, 혹은 박빙의 게임에서 잘하는 선수를 빼자니 그것은 패배로 직결되고...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죠. 이 문제는 아마도 프로 야구 감독도 해결하기 어려울 겁니다.”

선수들의 훈련은 일반 야구팀과는 다르다. 야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운동은 훈련에 앞서 전체적으로 스트레칭, 체력 훈련 등을 한 후에 각자의 포지션에 맞는 개별 훈련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빈 야구단의 훈련 모습은 좀 달랐다. 좀 전까지 내야수를 보던 선수가 외야로 이동하고, 2루수를 보던 선수가 유격수로 이동하는 등 포지션을 바꾸어 가며 연습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2루수, 누구는 유격수, 이렇게 딱 정해진 포지션이 없어요. 선수들에게 모든 포지션을 다 경험해 보게 하려는 뜻도 있지만, 이렇게 운영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선수가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처음 들어 왔을 때는 포스터를 만들어 동전 야구 연습장에 하나씩 붙여가면서 선수를 모집했어요. 요즘 들어서는 인터넷을 활용해서 모집하고 있지만, 아직도 선수 희망자가 부족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선수가 서너 개의 포지션을 모두 소화해야하는 독특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외야수 하다가 내야수도 하고, 투수도 하고, 타자도 해요. 힘들 법도 한데, 대부분 선수들이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주부와 직장인들이어서, 밝게 웃으면서 참여해 줘서 고맙죠.” 왕 감독은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다고 했다.

왕 감독은 단순히 사람이 부족해서 힘든 점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점은 야구 도시 부산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미흡한 야구 인프라 문제라고 했다. “구도(球都) 부산요? 우리 사회인 야구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가 제대로 사용할 만한 운동장 하나 없는데, 어떻게 야구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녀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빈 여성 야구단은 특별히 정해진 연습 장소 없이 매번 장소를 바꾸어 가며 연습한다. 이런 상황은 부산의 다른 2개 여성 야구단도 마찬가지다. 이번처럼 운이 좋은 날에는 삼락 공원과 같은 야구장을 빌려서 할 수 있지만, 예약이 선착순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남성 야구단에 밀려 선약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성인 구장은 남성들에게 밀려 사용하기 힘들어요. 때문에 우리는 유소년들이 사용하는 리틀 야구장을 사용합니다. 매번 홈플레이트와 마운드의 거리를 여성 야구 규격에 맞게 다시 측정하여 경기를 치러요.” 이렇게 왕 감독은 푸념한다.

왕 감독은 예전에는 초등학교에 임대료를 지불하고 운동장을 빌려 연습했으나 재정적인 부담이 커서 계속하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운동장을 사용하기로 한 날에 회원들의 사정으로 인하여 훈련이 취소되어 운동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사용료는 지불해야만 합니다. 때문에 적은 재정으로 운동장 사용료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시에서 삼락공원과 같은 야구인들을 위한 구장을 좀 더 만들어 주면 편할 텐데. 야구팀들에게 부산은 야구 도시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따르면, 여자 야구는 계룡시장기, 익산시장기, KBO총재배, 연맹회장기, CMS기까지 5개의 전국 규모 대회가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전국에 29개 팀, 600여 명의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왕 감독은 여자 야구 리그는 대부분의 팀들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서 거기에 몰려 있고, 수도권 아마 팀들은 프로야구팀의 지원들 받아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수도권은 야구 인프라가 참 잘 구축되어 있어요. 때문에 여성 야구에 대한 관심이나 참여도 지방 야구단보다는 높은 편이죠. 소프트볼 출신 선수들도 많고, 또한 대부분의 리그도 수도권 지역에서 많이 열립니다. 핑계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장시간 이동해야 하는 지방 팀들은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죠. 지방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연습밖에 없는데, 이렇게 운동장 하나 빌리기 어려운 상황이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빈 야구단은 지난해에 모든 전국 대회에 참여하였지만, 수도권 강팀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입상하는데 실패했다. 또한 같은 지난해 부산, 대구 지역의 6개 팀이 치르는 대회인 슈퍼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최하위에 머물렀다. 과거의 명성에 비해 요즘 성적은 바닥이어서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왕 감독과 빈 야구단 선수들은 큰 포부를 가지고 열심히 훈련 중이다. 왕 감독은 “지금은 익산에서 열리는 전국 대회에 참여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목표에요. 부끄럽게도, 그동안 팀 성적이 많이 떨어져 우리 팀이 리그 최하위에 머물고 있는데, 앞으로 훈련을 열심히 해서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도록 해야죠.” 그녀는 당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우리 야구단을 시작으로 부산에도 여성 야구단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부산 최초의 여성 야구단으로써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팀들이 생겨나서 부산의 여성 야구가 활성화되고, 그 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선의의 경쟁을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부산시에서도 야구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야구인들을 위한 인프라를 많이 구축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