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실버통역단, 불친절한 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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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실버통역단, 불친절한 처우
  • 김경민
  • 승인 2013.01.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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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국(84) 할아버지가 서면역에서 실버통역단 일을 한 지 올해로 벌써 5년째다. 5년 전 암 선고를 받은 할아버지는 병원 측의 수술 권유를 뿌리치고 실버통역단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여생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던 이유에서다.

그런데 봉사 일을 하면서 건강이 점점 좋아졌다. 얼굴도 밝아졌다. 그동안 병원에서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타국 할아버지는 “전보다 확실히 몸 상태가 좋아요. 아마도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해서가 아닐까요”라고 활짝 웃어 보였다.

이타국 할아버지를 포함한 6명의 어르신들은 서면 지하철역에서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각각 2인 1조로 3시간씩 봉사한다. 하루 이용객만 평균 100명이 넘는다. 이용객의 대다수는 일본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어르신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터득했다. 몇몇 어르신들은 일본 태생이라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한다. 간단한 영어 회화도 가능하다.

일본인 관광객 마타(27) 씨는 “실버통역단 덕분에 서면 근처의 맛집과 쇼핑센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며 “일본어를 워낙 잘하셔서 처음에는 일본인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며 고마움과 놀라움을 함께 표현했다.

부산도시철도 측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서면역에서 근무하는 직원 김상준 씨는 “어르신들의 서비스 마인드가 매우 높다. 특히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산에서 어르신들의 안내 역할은 큰 도움이 된다”며 “역 주변 외국인 안내 업무를 덜어 주시는 어르신들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의 목적으로 시작된 실버통역단은 매년 2월 해당 구역의 복지관에서 지원자를 받는다. 실버통역단은 1호선 자갈치, 남포, 중앙, 부산, 서면, 노포 5개 역과 2호선 센텀시티, 해운대, 광안, 동백 4개역을 합쳐 총 9개의 지하철역에서 활동 중이다. 부산도시철도는 안내데스크와 휴게실 공간만 제공할 뿐, 실질적인 실버통역단의 운영, 관리는 복지관에서 한다. 계약이 되면 총 1년간 활동을 한다. 어르신들은 매달 20만원을 받으며 7개월 동안 근무하고, 그 후 5개월간은 무료봉사로 전환된다. 1년이 지난 뒤 어르신들이 원하면 계속 근무가 가능하지만 20만원의 급여는 더 이상 지급되지 않으며 무료봉사로만 활동이 가능하다. 이타국 할아버지도 4년이 넘게 무료봉사를 해오고 있는 셈이다.

실버통역단 어르신들은 본인들의 일에 매우 큰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어르신들의 처우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어르신은 “돈 때문에 봉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한달 20만원으로는 생활비가 턱 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50만원 정도 돼야 먹고 살만하지 않겠냐”며 “7개월의 수당 근무도 더 연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버통역단에게 월 20만원을 제외한 별도의 교통비나 식비는 제공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노인의(여성 1인 기준) 최소 생활비가 월 96만원이고 적정 수준은 141만원이라고 한다. 노인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버통역단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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