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굳건한 안보태세
상태바
스위스의 굳건한 안보태세
  • 경성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우병동 교수
  • 승인 2013.01.16 1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알프스 산 기슭에 있는 스위스의 호반도시 루체른에는 비통한 얼굴로 죽어가는 '빈사의 사자상'이 바위 벽에 조각돼 있다. 이 사자상에는 스위스를 오늘날 세계 일류국가로 만드는 데 초석이 되고 자신들은 장렬하게 죽어간 스위스인 조상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원래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얼마 안 되는 토지조차 척박해 유럽에서 가장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오랜 기간 스위스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가난한 생활을 해왔고, 주변에는 힘센 나라들로 둘러싸여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는 악조건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용감한 정신과 강인한 체력을 가진 뛰어난 민족으로 주위 국가들의 전쟁에 용병으로 참가해 강한 전투력을 보여주는 이름난 전사들이었다. 결국 그들 중 700여명의 젊은이는 19세기 프랑스 혁명 와중에 루이 16세와 왕가를 돕는 용병으로 나선다.

혁명이 막바지에 달해 시민들이 왕궁을 포위하고 왕의 항복을 요구하는 가운데 상황이 절망적인 것을 깨달은 왕이 스위스 용병들은 이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하고 시민들도 무고한 용병들을 해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왕가를 호위하는 일을 맡은 이상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싸움을 계속하다 전원이 장렬히 전사하는 최후를 맞았다. 자신들의 나라도 아니고 지켜야 할 왕도 아니었지만 돈을 받고 계약을 맺은 이상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신의를 지킨 이들의 자세는 그 후 스위스 사람들의 평판을 크게 드높였고 오늘날도 바티칸 교황청이 수비대를 스위스인만으로 구성한다는 명예를 낳았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까지 버려가면서 벌어들인 돈은 헛되지 않았다. 조상들의 피맺힌 희생정신을 기리고 잊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오늘에 되살려 놓고 있는 것이다. 훗날 꺾어진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방패를 껴안고 스위스 문장이 새겨진 방패 앞에서 비통한 얼굴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용감한 사자의 모습을 바위 벽에 새기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면서 나라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스위스인들의 자세는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함부로 자신들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한다.

비밀 엄수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들의 경영방식은 세계의 금융중심국가로 인정받게 만들었고,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철강과 정밀기기 기술은 스위스를 발전시키는 견인차 구실을 했다. 오늘날 스위스가 영세중립국가로 탄탄하게 자리 잡은 것은 이러한 신용력과 기술력 외에 유비무환을 강조하는 그들의 정신력에 있다. 실제로 별다른 위협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상생활에까지 안보자세를 적용하고 있다. 지하도나 터널을 지나다 보면 군데군데 폭격 시 대피할 수 있는 대피소들을 볼 수 있는데, 건물 신축 시 의무화 조항으로 나라 전체 대피소들을 합하면 국민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한다. 이들 대피소 안에는 6개월 정도를 생활할 수 있는 생필품이 저장돼 있다니 놀라운 준비태세가 아닐 수 없다. 바다가 없어 해군은 없다지만 육군과 공군의 전투력은 막강하며 국가예산 중 상당액을 국방비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스위스의 강력한 국가안보 태세를 보면서 우리의 국방 자세가 어떤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뚜렷한 적이나 군사적 위협이 없는데도 이렇게 철저한 정신 무장을 하고 있는 스위스에 비해 핵과 미사일로 무장을 하고 시시때때로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무력집단을 바로 이웃하면서도 우리 국민은 별다른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니 이상한 일이다. 일부러 전쟁을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라와 나라 간의 문제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 역사로부터 얻은 경험이다. 국가에 대한 위험은 터진 다음에는 회복하기 어렵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지하고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어떠한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른 나라에서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일을 저지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