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동쪽 해안에 외로운 성(城) 하나, '매미성'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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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동쪽 해안에 외로운 성(城) 하나, '매미성'을 아시나요?
  • 취재기자 황예원
  • 승인 2016.06.0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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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목 복항마을에 위치...태풍 매미가 할퀸 텃밭 지키려 농부 혼자 13년째 하나하나 쌓아올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가장 큰 섬이 어디일까? 바로 거제도다. 경상남도 거제시에 속한 거제도는 해금강을 끼고 있고, 외도와 인근 바다를 전망할 수 있는 유명한 ‘바람의 언덕’ 등 특색 있는 관광 명소가 많아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고 있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여행지인 거제도에도 아직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가 있다. 그곳은 이름도 생소한 '매미성'이다. 매미는 2003년 한반도를 강타한 초대형 태풍 이름이며, 성은 성벽을 뜻한다. 그래서 매미성은 무언가 태풍과 관련이 있을 법한 신비로움을 감춘채 바닷가를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

부산에서 거가대로를 건너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해안가를 따라 작은 지붕이 쪼르르 줄지어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앞으로 쭉 뻗은 해안길을 따라 중죽도 터널(거가 해저터널)을 빠져나오면 바닷가 한가운데에 떠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바다와 가깝다. 매미성이 있는 대금리 복항마을은 거제도 초입에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복항마을 입구엔 “차량 진입을 금하니 조금만 걸어가달라”라는 표지판이 놓여있다. 마을 입구부터 걸어서 10분이면 매미성에 도착한다. 때문에 복항마을 입구 주변에 차를 세워놓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과 큰 버드나무를 지나면 굴곡진 골목길이 반기고 있다.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다 보면, 아파트촌과는 다른 시골 마을의 정겨움이 느껴진다.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약 150미터쯤 걸어 들어가면 파도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기 시작한다. 바다 내음이 조금씩 코를 간지럽힐 때쯤 바닷가로 트이는 길의 끝이 보인다. 이윽고 탁 트인 바닷가 풍경이 사람을 반기고, 왼쪽으로 돌아보면 매미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로 들어오면 머지 않은 거리에 숨겨진 명소 매미성이 있다(사진: 네이버 지도).

이 매미성이 유명해진 것은 누구의 도움도, 아무런 현대적 장비도 없이 한 개인이 13년 동안 돌을 하나 하나 쌓아올려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복항마을 해변에 위치한 '매미성'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힘들게 일구던 밭을 잃은 이 마을 주민 백순삼 씨가 피해 이후 농작물을 지키기 위해 갯바위를 따라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이다. 백 씨는 2011년에 방영된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방송에서 자신은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의 연구원으로, 노년을 위해 거제도에 땅을 사 텃밭을 일구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3년 태풍 매미가 그의 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태풍 피해로부터 텃밭을 지키기 위해 돌을 쌓기 시작한것.

당시 백 씨는 약 600여 평의 밭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 그는 해변가에 있는 자신의 밭이 더 이상 파도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게 보호하기 위하여 돌로 축대를 쌓아올렸고, 그것이 매미성의 시초가 되었다. 일종의 방조제인 셈. 그렇게 13년 동안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백 씨 혼자서 쌓아 올린 성벽의 길이가 무려 130m, 높이는 8m에 달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백 씨가 건축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도안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으로 돌을 쌓아 훌륭한 성을 지어냈다.

마을에서 매미성으로 가는 골목길의 끝엔 탁 트인 바다가 성을 방문하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바다의 오른쪽엔 해안가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있고, 왼쪽엔 매미성이 있다. 멀리서 보았을 땐 그저 신기한 풍경이지만, 매미성에 다가갈수록 그 크기와 웅장함에 압도된다. 한 개인이 도안도 없이 지은 성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건축물이다.

휴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매미성에 들렀다는 관광객 황해성(57, 부산 중구 중앙동) 씨는 "부산과 가까워서거제도를 자주 방문했지만 거제도에 이런 관광지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미성이 입소문을 탄 지는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미성은 지난 2011년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2014년 JTBC의 <오감도>, 그리고 2015년 KBS의 <VJ특공대>에 소개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미성은 신혼부부들의 이색 웨딩 촬영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 입구에서 바라본 매미성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매미성을 한눈에 담기 위해서는 해안가로 가는 것이 좋다. 매미성 앞 바다는 모래사장 대신 자갈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바로 ‘몽돌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제의 또 다른 명소이기도 하다. 동그란 자갈이 가득한 몽돌 해수욕장의 한쪽 끝은 바다와 맞닿아 있고 다른 쪽 끝은 매미성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해안가에서 본 성은 입구에서 본 모습보다도 크게 느껴지고, 층층이 놓인 계단이 강조돼 더욱 인상적이다.

▲ 측면에서 바라본 매미성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 해안가에서 바라 본 매미성의 모습(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백 씨는 매미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성의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다. 매미성 옥상 전망대로 직접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성의 입구에 있다. 올라가는 길에는 아직 공사 중임을 말해주듯 일정한 크기로 잘라 놓은 돌이 즐비하다. 2014년 방영된 <오감도>에서 백순삼 씨는 “어떠한 기계와 도구의 도움 없이 100% 수작업으로 성을 쌓았다”고 밝혔다. 살짝만 건드려보아도 굉장히 무거운 돌을 10년이 넘게 직접 구해 옮기고 쌓는 모든 과정들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것이 또 한 번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르막길을 오르면 금방 매미성의 옥상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 보는 앞바다의 모습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성의 아래쪽에서 바다를 볼 땐 가까이서 맞닿을 듯한 모습이었다면, 전망대에서는 숨통을 트여주는 바다의 넓은 모습이 눈에 꽉 차게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가대교의 멋진 경치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백 씨는 <오감도> 방송에서 옥상 전망대는 배의 선수를 형상해서 만든 공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직장이 조선소여서 배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특히 배의 선수가 아름답게 느껴져서 그것을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꼭대기 전망대 바로 왼편엔 백 씨의 소유로 보이는 경작지가 있다. 

▲ 매미성이 아직 미완성임을 알려주는 돌이 성벽 아래 쌓여 있어서 언젠가 이뤄질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 매미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바닷가(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 매미성 꼭대기에 위치해있는 밭. 이 밭에 태풍 매미에 의해 피해를 입은 후 밭주인은 매미성을 쌓았다고 한다(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꼭대기에서 계단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또 다른 풍경이 보인다. 중간중간 성 내부에 공사가 진행 중인 흔적에서 매미성 공사가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또한 매미성의 자투리 공간에 놓인 시멘트와 삽 등은 백순삼 씨의 매미성 건축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성의 내부는 전체적으로 계단이 많이 사용됐다. 계단이 있어 여행객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내부를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또한 계단과 함께 층층이 벽을 쌓아 올린 모습이 더욱 이국적인 외관을 연출하고 있다.

▲ 계단을 이용해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놓은 내부 구조(사진: 취재기자 황예원).

관광객 고인옥(55, 부산 영도구) 씨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사실 백순삼 씨가 성을 쌓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는데 못 봐서 아쉽지만 많은 감명을 얻고 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매미성은 한 사람의 열정과 끈기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또 들러 공사가 얼마나 더 진척됐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는 매미성 성주 백순삼 씨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거제도를 찾았으나 그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노작은 웅장하고 견고하게 태풍 매미보다 더 강한 바람이 온다 해도 틀림없이 그 안의 텃밭을 지킬 자세로 바다를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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