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바람과 같아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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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바람과 같아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어...
  • 부산광역시 한주희
  • 승인 2016.03.1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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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워크 투 리멤버(A Walk to Remember)>를 보고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보수적인 모범생 '제이미 설리반'과 친구들로 둘러싸인 인기 많은 반항아 '랜든 카터.' 서로에게 벽을 치고 영원히 접점이 없을 듯 보였던 이 둘 사이에 어느 날 조그만 사건이 생긴다. 친구를 다치게 한 벌로 제이미가 속해 있는 연극부에 들어가게 된 랜든은 주연을 맡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제이미와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다. 랜든은 은밀히 제이미에게 연극 연습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그녀는 랜든의 부탁을 수락하면서 이말 한마디를 남긴다.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줘.“

너드(nerd: 따분한 사람)라고 생각했던 제이미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게 된 랜든은 매일 제이미와 함께 하며 서로 암묵적으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하지만 제이미가 어느날 갑자기 울분을 토하듯 자신의 백혈병 투병 사실을 고백하며 "날 사랑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고 말하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들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위기에 맞서 싸운 둘은 제이미의 병에 개의치 않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행복한 여름을 보낸 제이미는 사랑하는 랜든 곁에서 눈을 감는다.

로맨틱 영화의 단골 소재인 인기 많은 불량 학생과 평범한 학생의 사랑, 불치병에 걸린 소녀와 소년의 사랑은 흔히 볼 수 있는 뻔한 스토리의 영화다. 어쩌면 이런 식상한 영화의 앞부분만 보면, ‘어? 이거 전에 내가 봤던 영화 아닌가?’ 하고 우리는 정말 전에 봤던 영화가 아닌지 영화 제목을 다시 확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잔잔한 감동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이 영화를 많고 많은 로맨틱 영화 중 하나로 치부하지 않고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영화로 느끼게 될 것이다.

제이미와 랜든은 서로에게 한 눈에 반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갔기에 더 애틋한 사랑을 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조금씩 빠져들어 갈 때, 제이미는 랜든에게 믿음은 바람과 같아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고 그녀를 '느끼게' 된다. 사랑은 대표적인 추상 명사로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눈빛으로, 행동으로, 사랑한다는 말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우린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곁에는 제이미가 없지만, 랜든은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과 추억들을 기억하고 그녀와 나누었던 사랑을 통해 결국 제이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녀를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말이다. 봄바람과 같이 슬그머니 다가온 그녀는 바람과 같이 떠났지만, 랜든은 그녀와 함께했던 사랑을 바람처럼 은연 중에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감동이란 본디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현재 어떤 마음을 하고 있느냐,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을 하고 다른 방향으로 다가 온다. 이 영화 역시 그러했다.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은 잔잔하게 다가와 마음을 휩쓸었고, 곧 그 감동이 나의 마음에 온전히 자리 잡아 영화가 끝나도 떠나가지 않았다. 그 감동은 제법 오래 남아 계속 영화를 회상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나와 같이 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만들었다.

두 번째 봤을 때의 감동은 첫 번째보다는 짧지만 강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된 양 그들 사랑에 감정이입을 했고 그들의 사랑을 나의 사랑으로 옮겨와 거기에 몰입했다. 또 ‘만약 주인공들의 외모가 덜 훌륭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단순한 질문부터 ‘이 영화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이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까지 나는 다양한 의문을 가졌고 그 의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계속 생각했다.

세 번째 영화를 봤을 때부터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현재 우리나라 2030세대는 '7포세대'라고 불린다. 우리의 2030세대는 사랑은 물론 자신의 꿈과 희망까지 포기해야 하는 실정에서 이 영화는 그들에게 허탈함과 동시에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막막함을 느끼게 할 것 같다. 나 역시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절절한 사랑을 이 영화에서 보게 되었지만, 이 영화는 타인의 이야기가 되어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가공의 스토리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사라졌다. 나는 아직 나의 꿈도, 사랑도, 희망도,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을 안고 걸어가고 싶다. 사람이 무엇을 포기할 때는 그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무거워서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 또한 걷다보면 내가 안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무거워질지도 모른다. 그럼 그 때 하나씩 내려놓으면 된다. 나는 아직 모든 것을 안고 걸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기에 '사랑'도 안고 가려 한다. 제이미와 랜든의 사랑을 나 또한 경험하고 싶다.

제이미는 나의 삶을 구원했고
나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삶과 희망,
그리고 앞으로의 오랜 여행에 대해서…….
항상 그녀를 그리워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바람과 같아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 <워크 투 리멤버>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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