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부터 큰 뜻 세우셨던 분...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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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부터 큰 뜻 세우셨던 분...명복을 빕니다"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5.11.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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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그의 정치적 고향 부산 분향소에도 조문객 줄이어

 

▲ 부산역 앞 광장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차려졌다(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지난 22일 새벽 0시 22분, 故 김영삼 前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서거했다. 병원 측은 직접적인 사인이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증이라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가장으로 치러지며, 그에 따라 전국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부산시에서도 부산역 광장, 부산시청, 그리고 고인의 모교인 경남고교에 분향소를 열었는데, 23일 오전 9시부터 차려진 세 곳의 분향소에는 그를 추모하는 애도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산역 광장에 분향소가 차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역에서 내리자마자 분향소를 찾아왔다는 윤종근(77, 충북 음성) 씨는 故 김 전 대통령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윤 씨는 “민주화 운동으로 대단한 사람 아닙니까? 김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최상수(78, 부산시 영주동) 씨는 “김영삼 대통령은 소년 때부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해보겠다고 꿈을 가지고 살아오셨기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인의 대표 업적으로 금융실명제와 군부독재 척결을 꼽았다. 부산으로 여행을 왔다가 분향소에 들렀다는 고영환(56, 경기도 수원시) 씨는 “김 전 대통령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하나회를 척결한 분입니다. 김대중, 김영삼 양 김은 민주화의 상징이죠”라고 말했다.

분향소에서 헌화하며 눈물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이판순(64, 경남 양산시) 씨는 “애통합니다.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 씨는 “대통령님이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주셔서 우리가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늘에 가서 편안하게 사시길 기도합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 분향소가 부산역 앞에 차려지자 부산역으로 여행을 오가는 사람들이 짐을 들고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 시민이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정혜리).

김 전 대통령을 ‘민주화의 선구자,’ ‘민주화의 양대산맥 중 하나’ 등 민주화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김 전 대통령 재임시절 IMF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오진규(74, 영주동) 씨는 “IMF를 겪게 한 경제적으로는 무능한 대통령이었다”라고 평했다. 또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호진(26) 씨는 “IMF의 책임이 크지만 문민정부를 열고 민주화의 발판을 만든 분으로 정치를 못했다고 평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재일동포인 윤도심(60) 씨는 일본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투표에서 김 전 대통령을 뽑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개인적으로 온화하고 원만하게 정치를 잘하셨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상도동에서 김 전 대통령의 이웃집에 살았던 이모(67, 경북 경주시) 씨는 김 전 대통령의 평소 성품을 기억했다. 이 씨는 “결혼해서 이사를 갔더니 옆집에 김 전 대통령이 살고 계셨어요. 김 대통령은 ‘새댁 놀러 오세요,’ ‘우리집에 놀러오세요’라고 친절하게 챙겨주신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라고 분향소를 찾은 이유를 밝혔다.

故 김영삼 前 대통령 분향소는 부산지역에서 시청 1층 로비 및 부산역 광장, 모교 경남고등학교 강당에 열렸고, 23일 오전 9시부터 시민들의 조문이 시작됐다. 오후 2시 기준으로 1,500여 명 이상이 분향소에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분향소는 26일까지 24시간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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