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의 전설 품은 약천(藥泉) '동래온천' 발자취를 따라
상태바
백학의 전설 품은 약천(藥泉) '동래온천' 발자취를 따라
  • 취재기자 최위지
  • 승인 2015.10.14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근대역사관, 특별기획전 ‘근대의 목욕탕, 동래온천(♨)’ 19일 문연다

신라 때 다리가 불구였던 절름발이 노파가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를 다친 하얀 학 한 마리가 동래에 날아와 머물더니, 사흘이 지나자 완쾌되어 힘차게 날아갔다. 이를 이상히 여긴 노파가 백학이 머물던 곳으로 가보니 뜨거운 샘물이 솟고 있었다. 노파는 이것이 약천(藥泉)이라 여기고 다리를 담갔더니, 며칠 후 자신의 다리도 씻은 듯 모두 나았다.

이 이야기는 동래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백학(白鶴)전설’ 설화로, 여기에 등장하는 약천이 바로 ‘동래온천’이다. 동래온천의 온천수는 약알칼리 식염천으로 류머티즘과 신경통, 근육통, 부인병 등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유구한 세월을 지나온 동래온천의 역사와 목욕문화를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 ‘근대의 목욕탕, 동래온천(♨)’이 오는 19일 부터 12월 6일까지 부산근대역사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 근대역사관 특별전 ‘근대의 목욕탕, 동래온천(♨)’의 포스터(사진: 근대역사관 제공).

동래온천은 우리나라 목욕문화의 산실로 여겨질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온천이다. 삼국유사에 "신라시대 3년(683년) 계미년,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동래현의 내산국)의 온천에서 목욕을 하고.."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동래온천에 관한 첫 기록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남탕과 여탕을 구분한 목욕탕이 생겨났으며, 개항 후 1910년대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근대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일본인들은 온천수가 나오는 곳에 욕장(浴場)과 여관을 겸한 형태의 시설을 짓고 전차를 들였는데, 당시 지어졌던 동래별장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현재 동래 온천장 일대에는 농심관광호텔과 3000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대규모 온천시설인 허심청을 비롯해 오랜 전통의 대중 온천 목욕시설과 호텔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근대 동래온천의 변화와 함께 일상적인 생활문화의 변동을 보여주는 △동래, 따뜻한 온정(溫井)의 고장, △근대의 온천장으로 개발된 동래온천, △근대 부산의 관광 일번지, 동래온천, △동래온천장의 여관, 그리고 기생, △근대 온천이 품은 공중목욕탕, △건강하고 깨끗한 신체를 강조하는 위생국가 등으로 구성돼있다. 또, ‘동래온천장부근견취도,’ ‘동래관 간판,’ ‘대성관 도자 타일’등 150여 점의 유물이 출품되고, 동래온천의 풍경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진엽서들이 전시된다.

▲ 이번 특별전은 '동래관 간판'과 '동래온천장부근견취도' 등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유물들을 선보인다 (사진: 근대역사관 제공).

근대역사관 담당자 류승훈 씨는 이번 특별전에 출품되는 150여 점의 유물들을 통해, 고대에서 근대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목욕문화를 전파하고 생활문화의 변동을 가져왔던 동래온천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산의 상징적 문화유적이자 대표적 관광지의 기능을 수행했던 동래온천을 알리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