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는 잡스러운 풀이 아니라 자유로운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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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는 잡스러운 풀이 아니라 자유로운 풀이다
  • 부산광역시 김주영
  • 승인 2014.06.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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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를 읽고

<야생초 편지>는 1985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13년 간 투옥생활을 한 작가 황대권 씨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어 만든 장편소설이다.

황대권 작가는 투옥생활 중 감옥에서 작지만 생명력 넘치는 잡초들을 발견했다. 작가가 잡초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잡초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었다. 잡초들은 잡스럽고 필요 없는 풀도 아니고, 단지 야생에서 자랄 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잡초는 잡초가 아니라 야생초라 불렀다. 그는 야생초를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밟히고, 버려지고, 뽑히는 생물이라 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쓸모없는 것’이라고 무시해버린다. 잡초의 사전적 정의는 ‘잡스러운 풀’, 혹은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정의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것이라고 본다. 사람은 항상 자기 위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이 이름도 없고 기능도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무시하는 것들도 알고 보면 야생초처럼 다 제 일과 제 자리가 있다. 나와 친하지 않던 사람이 나에게 도움을 줄 때도 있고, 평소에 필요 없던 물건도 버리고 나면 필요한 때가 있다.

어느 날, 나는 친척들과 외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우리 일행이 강아지풀, 토끼풀, 이름 모를 잡초, 이끼 등 무덤의 외관을 헤치는 풀들을 뽑아내고 있을 때, 갑자기 위에서 벌초하던 아저씨 한 분이 우리에게 “이끼는 잔디의 습기를 유지해주니 뽑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끼의 존재 이유를 알게 됐다. 이끼도 알고 보니 외할아버지의 보금자리를 유지해주는 소중한 존재였다.

작가는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의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상업화한 농업을 비판했다. 카슨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농부들이 농약으로 잡초를 제거하기 때문에 모든 풀들이 사라지고, 그 풀씨를 먹고 살아가는 야생동물이 죽어간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장에 팔 수 있는 식물만 재배하다보니, 35만 종에 달했던 식물들이 3000종의 채소를 제외하고 전부 잡초 같은 취급을 당해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나중에 감옥에서 사회로 복귀한 작가는 야생초와 채소를 한데 섞어 자연스럽게 길렀다고 한다. 나는 야생초와 같이 자라는 채소로부터 배척하고, 시기하고, 경쟁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았다. 그것은 인간세계야말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았다.

야생초는 인간으로부터 버림받고 끝없이 수난을 당하면서도 비좁은 시멘트 사이, 더러운 하수구 옆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나고 자란다. 인간은 외양을 서로 재고 비교하며 뽐내기에 바쁘다. “크건 작건, 못 생겼건, 잘 생겼건, 타고난 제 모습의 꽃만 피워 내는 야생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작가의 말대로, 남과 비교하지 말고 꾸밈없이 꿋꿋하게 자신만을 피워내는 야생초의 모습을 인간들이 닮았으면 좋겠다.

책을 덮으니, 책속의 풀 냄새가 내 코끝에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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