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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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힘
  • 경성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우병동 교수
  • 승인 2013.01.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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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다. “겸손해라(Be humble).” 미국 미식축구 한국계 영웅 하인즈 워드 선수가 어머니로부터 들으며 자랐다는 말이다. 슈퍼볼에서 MVP로 선정된 뒤 하인즈 선수는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이 잘 던져준 덕분이다. 나는 그냥 달렸을 뿐이다”라고 자신의 공을 팀 동료들에게 돌리는 겸손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지난 연말 배우 황정민 씨가 어느 영화상 시상식에서 했던 수상소감도 떠오른다. “많은 사람이 밥상을 차려주었고 나는 그냥 먹기만 했을 뿐”이라는 수줍은 말에 모두들 흐뭇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겸손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영악하고 악착스럽게 자기를 내세워야 이긴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남들은 어찌 되었든 내 것은 챙겨야 살아남는다는 철학이 보편적인 원칙이 되어버렸다. 남을 배려하는 자세, 함께 어울려 지내야 한다는 생각은 패배자의 변명처럼 들리게 되었다. 실속이야 있건 없건 어떻게 해서라도 튀어야 한다는 절박감 속에서 있는 것 없는 것 다 내놓고 휘두르는 어지러운 세태가 되어버렸다.

과거보다 훨씬 더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한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이유 하나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합리화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인간답지 못하고 몰가치한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과정과 절차의 정당성보다는 목표 달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선보다는 나의 이익과 성취가 더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척박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내 몫을 챙기고 내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서라면 법과 질서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세태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지난번 대학입시 때 자신이 지원한 학과의 경쟁률을 낮추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른 지원자의 접속을 막았던 학생들이 그다지 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는 보도를 보고 젊은 사람들의 도덕적 황폐에 충격을 받았었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라면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이들에게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상대적이다. 내가 악착스러워지면 남들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몫을 챙기려 든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살벌해지겠는가.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끝까지 추구하기보다는 남의 사정도 어느 정도 생각해 보면서 적당히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인즈 워드가 대선수로 자란 계기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에 눈 뜬 것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그는 어머니가 창피했고 부끄러워서 남들 앞에서 어머니를 피했다는 것이다. 그가 만약 그대로 환경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젊은이로 자랐다면 지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을 때 워드 선수는 자기를 단련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감사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키워준 부모에 감사하기보다는 섭섭함을 느끼는 자식들이 되었고, 가르쳐준 선생님에게도 불만이 앞서는 세태가 되었다. 얼마 전 모 대학 선생님들이 사은회에 가기가 민망하다는 말을 했다.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졸업 축하연은 고급 호텔에서 초호화판으로 벌인다는 말을 들으면서 가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를 내세우고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규칙과 질서를 지키면서, 남의 사정도 배려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익 추구가 정당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 더하여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자신이 이룬 성과를 주위 사람들의 공으로 돌릴 수 있는 겸손이 더한다면 정말로 보기 좋은 모습이 될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그는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인즈 워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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