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내, 도시와 바다와 기차가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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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내, 도시와 바다와 기차가 있는 곳
  • 박인영
  • 승인 2013.01.16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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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꼭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기차여행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동해남부선을 이용한 기차여행이다. 동해 남부선은 부산 부전역을 출발해서 경북 포항을 잇는 철길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절벽을 따라 운행되는 노선이다. 나는 이 열차를 이용해 부산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월내에 가 보았다.

나는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느긋한 점심을 먹은 후 부전역으로 향했다. 여행이라는 목적이 붙으니 기차역으로서 부전역의 위치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재래시장인 부전시장에 둘러싸여있는 모습을 나는 처음 확인하였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부전역으로 향하는 길에도 상인들이 생선, 나물, 과일 등을 팔고 있는 시장의 풍경이 펼쳐진다. 조금만 고개를 위로 들어 보면 부전역의 푯말이 보이지만 과연 저곳에 진짜 열차가 다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때문에 부전역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역의 위치를 몰라 자주 불어보곤 한다.

나는 부전역에서 13시 55분 무궁화호를 타고 월내로 출발 했다. 부전에서 월내까지는 정확히 45분 걸리며, 차비는 편도 2500원이다. 차편은 새벽 6시부터 하루 10회 내외로 운행되며, 50분~1시간 간격으로 매시간 있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가거나, 조금 늦은 오후에 출발해도 상관이 없다. 열차가 출발하자 조금 높은 위치에서 달리는 열차 덕분에 부전~해운대로 이어지는 부산의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버스나 자동차 등을 타면 항상 지나가는 길이지만, 열차 안에서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해운대역을 지나면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국내 유일의 해안절벽을 따라 운행되는 노선의 묘미가 여기서 드러난다. 모래사장 위를 다니는 사람들이 조막만하게 보이는가 하면 파도를 가르는 배들도 보였다. 달리는 열차는 출렁이는 물결 사이로 햇빛이 반사되는 바다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바다의 수평선이 하늘과 바다의 선을 뚜렷하게 그어놓은 것만 같다.

하지만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아쉬움이 한 가득이다. 월내역에 도착할 때쯤이 되면, 주택가와 숲에 가려진 바다를 잠깐씩 구경할 수 있을 뿐, 기대와는 달리 바다가 계속해서 보이지는 않았다. 기차는 2시 40분에 월내에 도착했다. 월내역은 보통의 간이역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06년 도시통근열차가 폐지되기 전까지는 종점으로 북적댔다고 하지만, 현재는 내리는 사람이 나밖에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월내라는 지명은 옛날에 나무 울타리 또는 흙돌담으로 성책을 쌓아 군사들이 지키던 곳으로 지금의 ‘군영’을 의미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숲 속에 큰 연지가 있고 밤이 되어 떠오르는 달이 연지에 비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연지내에서 달이 솟는 듯한 감을 느끼게 하여 월호(月湖)라 칭하다가 달이 동리안에서 뜬다하여 월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부산의 끝이기도 하고, 부산의 시작이기도 한 곳인 월내는 부산의 북쪽 맨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조금만 더 가면 울산이다.

월내역에 내리면 바다가 보이진 않지만 바다내음이 밀려와 해안가라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역사 바로 앞에는 1차선 도로를 따라 작은 상가와 집들이 보인다. 낮은 담장, 작은 문, 세련되지 않은 간판들, 꽃집이지만 잡화 등을 같이 취급하는 가게 등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 3분 정도만 걸으면 방파제와 함께 바다가 우리를 맞는다. 줄줄이 늘어선 작은 어선들, 바로 앞에서 어부들이 미역을 말리는 모습, 검은색 그물 위에서 멸치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많은 어선들만큼 여기저기에서 낚시대를 쥐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낚시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것도 좋은 휴식이 될 듯하다. 저기 멀리서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도 보인다. 한적한 어촌 뒤로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월내의 해안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곳이기 때문에 천천히 구경해도 2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월내는 부산이지만 부산 같지 않은, 부산을 벗어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여행지였다. 돌아오는 기차는 16시 50분 출발로 부전역에 도착하니 17시 35분이었다. 반나절도 걸리지 않은 간단한 기차여행이었다. 갑자기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나, 기차를 느끼고 싶을 때, 시간과 돈의 제약을 받지 않는 한도로 적당한 부전-월내 여행이 좋다. 현재 동해남부선은 2015년을 목표로 복선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작업이 완료되면, 부전-월내를 잇는 해안기찻길은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된다. 부산시에서는 이 노선을 관광화시킬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의 동해남부선은 없어진다. 그전에 한 번쯤 해안절벽을 따라 월내를 기차로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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