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잡상인, 그 뒤엔 바람잡이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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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잡상인, 그 뒤엔 바람잡이들 있다
  • 취재기자 문병훈
  • 승인 2014.02.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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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 장애 걸인들도 알고보면 멀쩡한 비장애인

     부산 도시철도공사, 2월부터 대대적 단속 나서

“본 제품은 추운 날씨에 딱 맞는 목 토시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좋습니다.” 지하철에 오른 시민이라면 간간히 이런 잡상인 소리를 듣는다. 어느 누가 제품 좋다며 지갑을 열면, 대개 다른 승객 몇 명이 구매에 가세한다. 그 승객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훤하게 꿰고 있는 젊은 층이 지하철에서 환불도 안되고 할인 카드 혜택도 없는 이런 제품을 구매할 리 만무다.

이번에는 한 장애인이 지하철 차안 복판에 섰다. “저는 지체장애인 2급으로...100원이라도 보태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장애인은 애절한 멘트로 승객들의 동정을 유발한 다음, 승객들에게 작은 소쿠리를 내민다. 이번에는 젊은이들 몇이 마지못해 동전을 소쿠리에 넣는다. 특히 젊은 여성의 호응이 눈에 띈다.

지하철 상행위나 구걸 행위는 불법이다. 이들을 대하는 지하철 승객들 맘도 편치 않다. 부단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부산 도시철도의 잡상인과 걸인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부산 시민 김지영(29) 씨는 “출근할 때 본 걸인을 퇴근할 때 본 적도 있다”며 당국이 이들을 막아 주길 바라고 있다. 대학생 박태민(22) 씨도 지하철에서 상인이나 걸인을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는 “조용한 지하철 안에 잡상인이 등장하면 정적을 깨 정신이 사납다”며 소음 문제를 지적했다.

부산교통공사에는 도시철도 내 잡상인과 걸인을 단속하고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이를 ‘영업처’라 부른다. 영업처의 분석에 따르면, 도시철도 내에서 오전에는 잡상인이, 오후에는 걸인들이 기승을 부린다. 잡상인들은 일명 ‘노인 알바’라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데, 잡상인이 차내에서 물건을 홍보하면 같은 차에 승객으로 가장해 타고 있던 노인 알바들이 물건을 달라고 소리치면서 옆 승객의 구매를 유도한다. 이 수법은 꽤 효과적이다.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을 한두 번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처음 물건을 사자고 소리치는 사람이 상인과 한통속인 점만 일반 승객들이 몰랐을 뿐이다. 직장인 박지현(31) 씨는 잡상인들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란 점을 상인들이 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들이 주로 물정이 어두운 노인들을 ‘타겟’으로 해서 지갑을 열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잡상인 중 특히 음악 CD 판매자들이 CD 음악을 크게 틀면서 영업행위를 하는 바람에 승객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업처 대리 조정대 씨는 CD를 파는 잡상인을 적발했더니 “너희는 툭하면 파업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뭘 잘 한 게 있다고 나를 단속하느냐”며 되레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곤란에 처한 적이 있다. 대개 CD를 파는 사람들이 소음 문제는 물론이고 행동이 거칠고 과격해서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단속반원들이 말한다.

영업처 단속반들은 잡상인보다도 구걸행위를 하는 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증언한다. 걸인들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의 배후에 ‘어떤’ 조직이 있다고 한다. 직접 돈을 구걸하는 걸인과 그 주위에서 ‘감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단속반원은 팔이 없는 장애 걸인을 적발했을 때 겪은 황당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단속된 장애인에게 신상을 적으라고 했더니, 붕대 속에서 멀쩡한 팔이 나오더라”며 장애인으로 위장한 걸인들은 대부분 적발이 돼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속반에 걸리면 무조건 단속반 요원들에게 안겨버리던지 누워버려, 단속반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주부 이민정(34) 씨는 “걸인들을 보면 돕고 싶은데, 팔이나 다리에 붕대를 감은 게 진짜인지 의심을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민경(21) 씨 또한 “팔, 다리를 다친 걸인들은 모두 가짜라고 들었다”며 “측은한 마음보다는 기분이 먼저 상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 부산도시철도 내 걸인들이 승객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고(왼쪽), 다른 걸인은 누워 다니는 장애인 형상으로 구걸을 하고 있다(오른쪽)(사진: 취재기자 문병훈).

잡상인들과 걸인들이 단속과 적발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활개를 펼치는 이유는 교통공사 단속 요원들이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단속반이 이들을 적발해서 사무실로 연행해도 별도의 벌칙을 부과할 권한이 없다. 이 때문에 잡상인과 걸인들은 부산 전체 도시철도에서 하루 평균 5건 이상 적발돼도 강제로 쫓겨나면 다시 다른 도시철도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한 걸인은 자신들도 승객 중 한 명이라며 단속이 두렵지 않다고 항변한다. 그는 “지하철 공무원들이 경찰이라도 되냐? 우리가 이런 일한다고 우습게 보는 거다, 그들은 우리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통공사 영업처는 사법권이 없어 잡상인과 걸인을 발견하면 주소와 이름을 적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부산시에 통보하고 지하철에서 쫓아내는 것이 단속 활동의 전부다. 조정대 대리는 “잡상인과 걸인들 대부분이 주소지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부산시가 과태료를 청구해도 별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는 이유에는 솜방망이 식 처벌 외에도 도시철도 내 ‘일일승차권’ 악용도 한몫하고 있다. 본래 일일승차권, 혹은 일일권은 외국인 관광객이나 사업차 외지에서 부산을 방문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일일권을 구매하면 하루 동안 도시철도 내 어디든 다닐 수 있다. 잡상인과 걸인들은 이 일일권을 구입하여 단속반에 적발되어 쫓겨나도 언제든 그날 하루 다른 도시철도로 갈아타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도시철도에 따르면, 승객 민원 콜센터의 하루 평균 80% 이상이 철도 내 잡상인과 걸인들에 대한 불만 전화다. 민원 콜센터에는 간혹 잡상인이 직접 전화해 “우리를 잡상인이라 부르지 마라. 우리는 엄연한 이동 상인이다”라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황당한’ 경우도 발생한다고 한다.

드디어 부산교통공사가 설 연휴가 끝나는 2월 1일부터 2개월 동안 도시철도 내 잡상인과 걸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 단속’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도시철도공사는 이번 특별 단속 기간 중에 역마다 공익요원과 청원경찰은 물론, 교통공사 과장급 이상 간부 등 100명을 배치해 대대적인 단속을 펼 예정이다. 이번 특별단속 기간 중 1호선에는 60명, 2호선에는 40명의 특별 단속반이 참여한다.

현재 상시적인 도시철도 잡상인과 걸인 단속은 ‘영업처’가 총괄하고 각 역 운영사업소의 공익근무요원과 청원경찰이 맡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고유 업무 이외에 단속 활동까지 나서기에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교통공사는 설 연휴를 기해 승객이 붐비는 점을 노려 기승을 부리는 잡상인과 걸인에 대한 특별 단속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원래 작년 10개월 동안 외부 직원을 고용해 도시철도 내 질서유지를 전담했던 도시철도 ‘보안관’ 제도가 있었으나, 예산 문제와 법적 지위 문제가 발생해 현재는 폐지된 상태다. 도시철도공사는 제도적 보완을 거쳐 올 3월부터 보안관 제도를 재시행할 것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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