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픈 곳에서 피어난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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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픈 곳에서 피어난 따뜻한 이야기
  • 부산광역시 김가희
  • 승인 2013.12.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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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 관람평

"가장 외로운 사람이 가장 친절하고, 가장 슬픈 사람이 가장 밝게 웃는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소원>은 이렇게 단 세 문장으로 긴 여운을 남긴 채 끝을 맺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조두순 사건’을 그대로 가져왔다. 2008년, 조두순은 여덟 살 난 여아를 상대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흉악한 성폭행을 저질렀고, 그 잔인함에 세간이 떠들썩했다. 하지만 극악무도한 그의 행각에 비해 징역 12년이라는 어이없는 판결이 내려지자, 국민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질타는 잦아들었고, 잊을 수 없는 피해 아동 나영이의 상처만 긴 세월 동안 덧나지도 아물지도 못한 채 남아있었다. 그리고 5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이야기가 다시 스크린으로 비춰지게 된 것이다.

처음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작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컸다. 악몽 같은 그날의 기억이 상업적인 영화로 다시 떠올려지면 나영이를 포함한 상처가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을까? 그간 범죄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들을 봤을 때도 범죄 자체에 포커스가 맞춰진 게 대부분이었다. 그것들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보다 흥미 있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 그런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보는 이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이라고는 필요이상의 찝찝함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답답함뿐이었다.

그러나 <소원>은 달랐다. 영화는 가해자와 그 사건 자체보다 상처받은 나영이를 어떻게 위로할지를 더 고민했다. 아픔을 가진 수많은 나영이들을 따뜻한 사회 안으로 귀환시키려는 영화의 노력이 계속해서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는 모순적이게도 아픈 이야기를 다루면서 따뜻함을 선사한다. 나는 영화 첫 장면부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 달 전, 내가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리게 된 기찻길 옆 문구점이 영화의 주된 배경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소원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마을하면 떠오르는 서정적인 이미지를 충실하게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적막하면서도 고요한 풍경을 잘 알고 있기에 소원이 가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더 잘 흡수될 수 있었다.

소원이의 가족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설경구)와 문구점 주인인 엄마(엄지원), 그리고 소원이(이레)가 전부지만 전혀 부족한 느낌이 없다. 아빠에게 없는 따뜻함을 엄마가 채우고, 엄마에게 없는 듬직함은 아빠가 책임지는 단란한 가족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가해자를 제외하면 모두 본래부터 선하게 그려진다. 머지않아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할 만큼 평화롭기만 하다.

그러나 어느 비오는 날 아침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소원이와 소원이 가족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온 마을의 평화도 한 순간에 깨져 버린다. 끔찍한 사건은 단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지지만, 그 절제된 화면 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마치 나의 일인 양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와중에 그 누구보다 침착한 사람은 오히려 당사자인 소원이다. 주위의 걱정과 위로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단단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울거나 떼쓰지 않고, 밝은 미소로 가족을 진정시키는 모습이 보는 사람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시간이 가면서 얼굴에 뚜렷하게 남은 상처도 흐릿해지고, 소원이의 심리 상태도 점점 안정을 되찾아간다. 그러나 여덟 살 가슴 한 구석에 뿌리 내린 아픔은 그대로 머물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아픔을 내 아픔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 영화는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먼발치에서 소원이를 지켜주는 아빠가 있다. 그는 보통의 아버지에게서 예상되는 모습처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 하는 감정적인 모습은 되도록 절제된다. 또 혹여나 아빠이기 전에 남자인 자신이 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존재가 될까 조심스럽게 상처를 어루만질 뿐이다. 그래서 그의 눈물은 분노가 아니라 딸에 대한 미안함이다. 딸이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탈을 쓰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땀범벅이 된 채로 눈물을 삼켜야하는 아빠의 모습은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가장이기 때문에 마냥 분노할 수 없고 감정을 숨겨야 하는 그의 모습은 애달프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겉으로 맴돌기만 하던 아빠의 노력도 소원이가 끝내 마음을 열어 안아주는 것으로 보상받는다. 평소 표현에 서툴러 무뎌진 부성애는 보는 이들에게 그 자체로 감동일 수밖에 없다.

또 이 영화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혼란은 한 사람의 이기심을 발단으로 시작되지만, 책임은 모두가 진다. 이 영화 안에서 구석진 길로 내몰린 소원이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악랄한 범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는 없으며, 물의를 일으킨 가해자는 평생토록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그 누가 보더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소원>은 손가락질하며 누구를 탓하기보다 우리에게 떠맡겨진 책임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심지어 여덟 살배기 소원이 친구 영석이(김도엽)도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특정 누군가에게 전가되는 책임도 없을뿐더러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스스로 반성하며 어떻게 하면 소원이의 상처가 완전하게 아물 수 있을지를 먼저 걱정한다. 사회라는 울타리 안 벌어진 일에 자신의 책임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써 다른 곳에 탓하기 바쁜 우리의 현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다. 사실 이런 범죄가 무관심과 외면에서 드리워진 우리 이면의 그림자라는 점에서 아무도 누구를 탓할 처지는 못 된다. 범죄는 무시해버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같이 아파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이기 때문에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성범죄는 최근 들어 공공연하게 일어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관련 법규를 제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또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에만 급급해 피해자들의 고통은 밖으로 내몰리며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 해 안에서 곪아 터져있다. 이런 무기력한 상황에서 나온 영화 <소원>은 시의적으로 적절한 메시지를 내포한다. 영화에 신선한 볼거리나 감탄을 자아낼 만한 영상미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와 가까운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과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것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제34회 청룡영화제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극중 소원이의 두 마디 대사가 유독 기억에 오래 머문다. "왜 태어났을까?"와 "태어나길 참 잘했어"인데, 이 두 말을 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극복의 시간과 치유의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암울한 결말이 아닌 다시 피어난 소원이의 웃음꽃으로 마무리 된다. 치유와 극복의 과정은 더 이상 아프게 인식되지 않으며, 먹먹해진 우리의 가슴에는 무거운 책임까지 덤으로 내려앉는다. 영화 <소원>은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아픈 곳에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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