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도 넘은 최영미 때리기…“시인이 무슨 힘 있어 갑질하겠나”

"호텔 방 빌려주면 홍보대사 하겠다" 제안에 '갑질 프레임'...문인에게 집필실 협찬하는 호텔도 있어 / 정인혜 기자

2017-09-11     취재기자 정인혜

11일 시인 최영미 씨의 이름이 온종일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최 씨가 호텔에 장기 투숙을 공짜로 요구했다는 것. 이를 두고 언론은 ‘갑질’이라는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다.

논란은 지난 10일 그의 페이스북에서 촉발됐다. 최 씨는 “어제 집주인에게서 월세 계약 만기에 집을 비워달라는 문자를 받았다”며 “고민을 하다 평생 이사를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묘안이 떠올랐다”고 적었다. 그는 해당 글과 함께 A 호텔에 보냈다는 이메일을 공개했다. 

최 씨가 보낸 이메일 내용은 이렇다. “A 호텔의 방 하나를 1년간 사용하게 해주신다면 평생 홍보대사가 되겠다. 장난이 아니며 진지한 제안임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그냥 호텔이 아니라 특급 호텔이어야 한다. 수영장이 있으면 더 좋겠다. 아무 곳에서나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후 논란이 불거지자 그는 “A 호텔에 거래를 제안한 것”이라며 “공짜로 방을 내달라고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다”라고 갑질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의 해명에도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최 씨는 언론의 보도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우리 국민은 울 줄은 알아도 웃을 줄은 모르는 것 같다. 행간에 숨은 위트를 읽지 못한다. 내가 내 집만 있었어도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글을 올렸다. 

아울러 “제가 특급 호텔 원했다고 비난하시는데 하나 물어보겠다. 오래 집 없이 셋방살이 떠돌던 사람이 여름 휴가 가서도 좁고 허름한 방에서 자야 하나요?”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상당수 네티즌들은 그를 비판했지만, 최 씨를 옹호하는 의견도 더러 나왔다. 언론의 최영미 때리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당초 ‘갑질’ 프레임을 씌운 언론에게 책임을 묻는 여론도 형성됐다. 

대학생 여현민(25, 부산시 사하구) 씨는 “인터넷에서 하도 난리라 직접 찾아봤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이 커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돈 한 푼 안 들이고 결혼식 하는 연예인들도 수두룩한 마당에, 시인이 글 쓰는 데 필요한 방을 협찬 받고 싶다는데 왜 갑질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싫으면 호텔에서 거절하면 그만 아니냐”고 비판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갑질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빈민에 속하는 최영미 씨가 호텔에 언제 갑인 적이 있었던가”라며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을 비난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호텔에서는 문인에게 집필 장소를 협찬하기도 한다. 호텔 방에서 유명한 작품이 나오면 관광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프린스호텔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작가 12명을 선정해 숙식을 제공해오고 있다. 10년 이하 소설가 및 1년 이내 소설책 출간 계획이 있는 작가에게 1~3개월 동안 객실은 물론 식사 등을 제공하는 것. 

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프린스호텔 측은 “작가가 오로지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