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 21만 원’ 유방암 치료제 입랜스, 건보 급여 결정 지연에 환자들 발 동동

영국에서는 5개월간 공짜, 한국에선 수백 만 원…“영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을 텐데” / 정인혜 기자

2017-05-18     취재기자 정인혜

“돈 없는 사람은 죽어야 하나 봐요.”

초등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주부 강모(41) 씨는 3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이런 강 씨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영국인이 되고 싶다’는 게 바로 그것. 이유를 묻자, 강 씨는 “약 먹는 데 눈치가 덜 보일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다.

강 씨가 현재 투약 중인 약은 ‘입랜스.'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새로운 기전의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다. 미국 FDA에서 ‘획기적인 유방암 치료제’로 평가받는 등 유방암 환자 사이에서는 효과적인 신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입랜스의 한국 판매가는 한 알 당 21만 원에 달한다. 한 달치 약값은 500만~550만 원, 1년 치 약값만 6000만 원에 육박한다.

반면, 영국의 한 달 기준 약값은 420만 원이다. 한국에서는 같은 약을 100만 원 가까이 더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통상 입랜스는 6개월을 기준으로 처방받는데, 한국 유방암 환자들은 영국 환자보다 약 700만 원가량의 약값을 더 지불하고 있다. 더구나 영국에서는 자국 유방암 환자들을 위해 최대 5개월 동안 입랜스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 환자들이 더욱 반발하고 있다. 

한국 환자들을 향한 ‘차별’이라는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강 씨는 “돈 없는 서민 환자인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영국 환자와 차별까지 당한다”며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약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돈 놀음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소린지…영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에 유방암 환우 단체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과 보건복지부에 입랜스 건강보험 급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입랜스 급여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환우 단체 관계자는 “입랜스를 복용하는 환자와 그 가족은 ‘메디컬 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돈 때문에 치료 못 받는 사람이 생겨서야 되겠냐”고 말했다. 이어 “가격 인하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건보 급여화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며 “심평원에서 입랜스 급여 적정성 여부를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논란이 커지자, 한국화이자제약(이하 한국화이자)은 수습에 나섰다. 한국화이자는 지난 10일 “오는 6월 중으로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화이자는 다만 환자 프로그램은 입랜스 급여 진행 과정 중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세부 내용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한국화이자 측 관계자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꾸준한 논의를 하고 있다”며 “급여 승인을 앞당기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화이자는 지난해 하반기 입랜스의 건강보험 적용을 위해 급여 등재를 신청한 상태이며,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에 대한 급여 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