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태워준 친구 아빠에게도 집 위치 숨기는 요즘 아이들

호의에 대한 감사보다 경계심부터 가르치는 자녀교육 세태 되돌아 봐야 할 때 / 부산광역시 김예영

2016-09-23     부산광역시 김예영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현실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아노미 현상이라고 한다. 행정학 용어 사전에 의하면, 아노미 현상이란 급격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원래의 규범이 약화되고 아직 새로운 규범 체계가 확립되지 않아 규범이 혼란한 상태, 또는 규범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내 생각으로는, 아노미 현상이 가장 심각하게 발생하는 영역이 어린이들의 도덕교육, 혹은 통상적인 가정교육이다.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나날이 늘어나면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잉 보호도 극심해지고 있다. 부모들이 자식 안전을 가정교육보다 더 중요시하게 된 것.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이 아이에게 다가와 호의를 보이면, 부모는 아이에게 호의에 대한 감사를 가르쳐 주기 전에 호의에 대한 방어 심리를 일깨워 준다. 아이들은 자동으로 모든 사람에게 방어 태세를 보인다. 이렇게 되니 전통적인 사회적 예절의 기본을 지키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예절을 지키는 것보다 예의가 없어 보이더라도 자신을 잘 방어하면 더욱 칭찬받는 게 현실이 되었다. 

부모들도 이런 가정교육을 하면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아노미 현상 속에서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하다. 현 시점에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현실적인 책상머리 교육, 즉 도덕 교육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전통적인 예(禮)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정중하면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짜리 동생이 있다. 내 어릴 적 어머니의 품안 교육은 현재 어머니의 그것과 많이 변했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다. 내가 10세 때만 해도 모르는 사람들의 호의에 대해 최대한 감사를 표현하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동생의 경우에는 호의를 받을 상황조차 만들지 말라고 교육받는다.

동생과 동생 친구가 집에 놀러 온 날이 있었다. 동생 친구가 집에 갈 시간이 되어 아버지가 차로 데려다 주셨다. 차를 타고 가던 중 동생 친구가 아버지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의아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그 아이는 자기 부모로부터 모르는 사람에게 집을 ‘절대로’ 알려주지 말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란다. 아버지는 친구 아버지에게조차 집 위치를 숨기는 그 아이를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영악하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시며 씁쓸하게 돌아오셨다.

순수한 호의조차도 거부하는 여즘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하지만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냉정하고 이성적이 될 수밖에 없다. 호의에 대한 감사를 가르치던 과거의 예절교육은 더 이상 현대 사회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 도덕 교과서도 새로 쓰여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아이들 안전을 생각해서 부모들은 별 도리 없이 바뀌고 있는 세상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삭막한 세상에 아이들을 내던져도 좋은 것일까. 아이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감사함을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도덕률이 나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