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접근하는 ‘익명 채팅앱’, 청소년 성매매 창구로 악용

특별한 가입절차 없어 청소년에 무방비...'조건 만남' 제안하는 메시지 수시로 등장 / 김민성 기자

2018-06-20     취재기자 김민성

특별한 인증 없이 서로를 모른 채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인 익명 채팅앱이 성매매 창구로 전락하고 있다. 별도 가입절차 없이 앱만 다운 받으면 그냥 사용할 수 있는 탓에 욕설과 성희롱이 난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익명 채팅방이 청소년들의 성매매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지난 17일 여성가족부의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매매를 조장하는 모바일앱 317개 가운데 본인 인증이나 기기 인증 등을 요구하지 않은 앱은 278개(87.7%)에 달했다. 본지 기자가 직접 앱을 받고 가입해본 결과, 대부분의 익명 채팅앱은 본인 인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순히 별명과 성별, 나이만 설정하면 바로 채팅할 수 있었다.

성별과 나이를 여성, 17세로 설정한 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조건만남 메시지가 왔다. 분명 채팅방 상단에는 청소년 조건 만남이나 성매매 관련 행위를 금한다는 주의 글이 게시돼 있는데도 음란한 사진을 보내며 만남을 요구하는 남성 채팅 유저도 있었다.

여가부에 따르면. 조건 만남을 경험한 청소년 10명 가운데 7명(74.8%)이 채팅앱이나 채팅 사이트를 통해 상대를 만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가입자 수만 4200만 명에 달하는 메신저 ‘카카오톡’도 오픈 채팅방 접속 시 인증절차는 없다. 이처럼 온갖 욕설과 성희롱이 난무하는 채팅방에 청소년들은 무방비로 노출된다.

하지만 익명 채팅앱에 대한 확실한 규제나 단속은 미비한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여성인권센터 등 시민단체 260여 곳은 청소년 성매매를 조장한 채팅앱 고발장을 검찰에 냈으나 무혐의로 종결된 적도 있다. 채팅앱을 규제하거나 운영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

김지훈(22, 경남 양산시) 씨는 미성년자들이 성교육이 제대로 안 된 상황에 올바르지 못한 성 소비에 노출되는 것이 문제라고 전했다. 김 씨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바른 길을 가르쳐야 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길로 들어오라 꾀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지난 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익명 채팅앱을 통해 성매매를 제안하는 범죄자들은 아이들의 성을 착취하기 위해 계속해서 외모를 칭찬하며 당근을 주는 ‘그루밍’을 이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외로움을 이용해 돈을 제시하면서 성매매를 제안한다는 것.

또 조 대표는 그루밍 수법에 길든 아이들은 그게 성매매가 아니라 연애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게다가 만남을 거부하면 일부 성 매수자들은 "부모님께 알리겠다", "너도 처벌받는다" 등 청소년들에게 협박까지 한다는 것.

김소영(42, 경기도 평택시) 씨는 혹시나 딸도 이런 익명 채팅앱을 사용 중인지 걱정이 된다며 “카카오톡에도 오픈 채팅방이 활성화돼 있어 너무 불안하다”며 “가입 절차도 없이 요즘 아이들이 장난삼아 많이 하는 익명 채팅앱에서 딸이 나쁜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김 씨는 “채팅앱 내에서 성인 인증을 했으면 좋겠다”며 “익명성이 보장돼 경찰 수사에 한계가 있는 만큼 본인 인증까지의 인증절차는 꼭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바람을 전했다.

익명 채팅앱도 순기능은 있다.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스터디 모임방, 취미 공유방 등 서로 유익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익명으로 채팅할 수 있어 고민 상담도 쉽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