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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세계적인 스포츠 도시: 도전 30년 만에 개최된 제11회 삿포로 동계 올림픽로 삿포로는 세계 도시가 되다[2부 삿포로의 도시 브랜드 자산] / 목지수 안지현

1972년 제11회 동계 올림픽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삿포로에서 개최되었다. 35개 국가 1006명의 선수들이 참가했고, 스키, 스케이트, 아이스하키, 봅슬레이, 바이애슬론, 루지 등 6개 종목의 35개 세부 종목이 겨뤄졌으며, 11일 동안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삿포로에 집중시켰다.

삿포로 동계 올림픽 기념우표(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삿포로가 동계 올림픽 개최에 뛰어든 것은 1972년 올림픽이 처음은 아니었다. 1928년 히로히토 천왕의 동생인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秩父宮雍仁)가 삿포로를 방문했는데, "향후 일본에서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면 설질(雪質)이 우수한 삿포로에서 열릴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그의 발언이 삿포로 동계 올림픽 유치의 신호탄이 되었다.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는 스키와 럭비 등 스포츠 산업의 발전에 힘썼으며, 스포츠를 즐기는 왕족으로 일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제11회 삿포로 동계 올림픽은 개최권 박탈과 유치 경쟁 실패 등으로 30여 년간의 기다림 끝에 1972년 개최되었다. 사진은 삿포로 윈터 뮤지엄에 소개된 대회 개요(사진: 목지수 제공).

이후 아버지의 오쿠라 재단(일본의 대형호텔 소유)을 물려받은 오쿠라 기시치로가 삿포로에 스키점프대 건설을 후원하자, 동계 올림픽 유치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31년 스키점프대가 완공됐고, 1938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삿포로는 제5회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하지만 중일전쟁 도발에 따른 일본의 올림픽 평화 정신 위배가 도마에 오르자, 삿포로는 올림픽 개최권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이후 잠잠하던 올림픽 유치 이슈는 1955년 열린 IOC 총회에서 도쿄가 1964년 제18회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으며, 동계 올림픽 유치에 대한 일본 사회와 삿포로 시민들의 열망이 재점화됐다.

삿포로 동계 올림픽 당시에 사용되었던 성화봉이 삿포로 윈터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다(사진: 목지수 제공).

1964년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삿포로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 그르노블과 유치 경쟁을 펼쳤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1966년 로마 IOC 총회에서 삿포로 시는 결국 꿈에 그리던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당시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맡았던 이와다 유키아자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유치한 JOC(일본올림픽위윈회) 위원이었다. 그는 삿포로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편집해서 보여주며 아름다운 삿포로의 겨울을 소개했다. 그리고 "30년 간 눈 속에 파묻힌 삿포로의 겨울을 반드시 찾고 싶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1928년부터 시작된 동계 올림픽 개최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데는 이처럼 긴 시간이 걸렸다.

제11회 삿포로 동계 올림픽 기념우표. 삿포로 위터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음(사진: 목지수 제공).

삿포로 올림픽의 개막식은 일본의 성장과 발전은 물론, 세계인을 향해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 성화 봉송 주자는 유명 스포츠 선수라는 관행을 깨고 16세의 고등학생이 깜짝 등장했고, 개막 공연에서는 삿포로의 초등학생 868명이 풍선을 흔들며 스케이트 공연을 펼쳤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대륙에서는 처음 열린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뤄내며 삿포로는 단숨에 세계 도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목지수 안지현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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