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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포르노그래피와 위선...‘사라’는 아직도 즐거운가강동수의 자투리시사인문⑪ 마광수의 죽음으로 살피는 ‘예술과 외설’ /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1.

이제는 뉴스의 초점에서 약간 비껴났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회자된 가장 큰 문화계 뉴스는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죽음일 터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그가 지난 5일 65세 나이로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가 그렇게까지 외롭고 단절된 노년을 보냈던가, 그의 고통이 그렇게 깊었던가 하고 새삼스럽게 되새겼던 것. 그의 ‘필화’사건을 되짚어 보는 언론 보도도 줄을 이었다. 그의 이름은 웹사이트의 검색 순위 최상단에 올랐고,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그의 책들도 인기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마광수가 이른바 <즐거운 사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건 1992년이다. 이 책은 보수적인 문단, 학계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그는 강의 도중 학생들 앞에서 체포됐다. ‘음란문서 유포 혐의’로 재판정에 선 그에게 사법부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란 실형을 ‘때렸다.’

생전의 마광수 교수(사진: 더 팩트 제공)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유복한 집안의 딸인 ‘오사라’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 것을 계기로, 그녀는 혼자만의 생활을 누리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성인클럽에서 댄서로서 일하면서 여러 경험을 통해 '성'에 눈을 뜨고, 이를 즐긴다는 거다.

그는 1998년 대학에 복귀하긴 했으나 학교 동료들의 따돌림, 문단에서 왕따가 된 현실, 그리고 무조건 자신을 변태로 매도하는 대중들의 차가운 시선 앞에 내내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퇴임 이후에도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하고 한스럽다”고 종종 말해 왔다는 것.

한국 문단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음란물’로 규정돼 강의 도중 체포, 구속에 이르고 실형까지 선고된 것은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어떻게 보면, <즐거운 사라>사건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지적 자유를 재는 또 다른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 사건이었던 거다.

 

2.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는 인간의 성적 행위의 사실적 묘사를 주로 한 문학·영화·사진·회화 등의 작품을 일컫는다. 포르노라고 약칭하기도 하는데 어원은 그리스어의 ‘포르노그라포스(pornographos)’. ‘창녀(pornē)에 관하여 쓰여진 것(graphos)’을 뜻하다가 이윽고 영어의 ‘오브신(obscene)’, 곧 외설적인 문학을 지칭하게 됐다. ‘오브신(obscene)’의 본뜻은 ‘무대(scene) 밖의 것’. 무대에서는 보일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인 내용의 작품이란 뜻이겠다.

18세기는 ‘포르노그래피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쾌락주의가 유행했다. 사드와 카사노바 같은 이들은 분방함을 넘어 범죄적 묘사도 거리끼지 않을 만큼 노골적인 성행위의 묘사에 나섰다.

적어도 내가 지금껏 읽어본 문학작품 중에 그 음란성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사드의 <소돔 120일>이었다. 루이 14세 치세 말엽을 배경으로 공작·고위 성직자·법원장·판사로 지칭하는 권력자 4명이 미소년·미소녀 40여 명을 고성으로 납치해 게이, 사디즘, 스카톨로지(분변음욕증), 근친상간 등을 벌인다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사악한 성적 묘사가 쏟아진다. 사드 후작은 44세 때 바스티유 감옥에서 이걸 썼다는데, 프랑스에서도 오랫동안 금기시돼 온 작품이다. 존 클레란런의 <퍼니힐>(1749), 니콜라에듬 레티프의 <앙티 쥐스틴>(1798) 등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마르키 드 사드의 초상화(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포르노그래피는 19세기에 이르면서 사회문제가 됐다. 18세기까지 일부 귀족과 대부르주아가 숨어서 돌려 읽던 포르노그래피가 이 시대에 대량 생산되면서 다수의 시선에 노출되기 시작했기 때문. 복제 기술의 발달과 시장의 확대로 포르노그래피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으며, 사진술의 진전에 따라 포르노 사진도 나돌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대량 보급으로 갖가지 포르노그래피가 홍수를 이루는 요즘처럼.

포르노그라피 시비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계속됐다. D.H.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이 일으킨 논란이 대표적이다.

1928년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나온 후 영국에선 대대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성불구자가 된 귀족 출신의 상이군인의 아내 코니가 사냥터지기와 짙은 성애를 벌인다는 이야기에 분노한 보수주의자들이 이 작품을 외설 혐의로 기소하자, 예술가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발했던 것. 이 작품은 1928년 최종본이 나온 이래 출판 금지 등 부침을 겪다 1959년을 기점으로 국가와 예술인들이 다시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 로이 젠킨스가 음란물 출판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팽귄 출판사가 무삭제판을 전격 출판했던 것.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저자 D. H. 로렌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성 담론의 해방, 성을 매개로 펼쳐지는 계급 갈등, 문학적 표현의 한계 등 당대 영국 사회의 과제와 사회적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주는 표징이자 문학의 역할을 되새기게 한 있게 한 사건이었다.

헨리 밀러의 대표작 <북회귀선>은 작가 자신의 파리 생활을 담은 자전적 소설이었는데 성에 대한 격렬한 묘사로 외설 논란으로 내몰렸다. 미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됐다가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영어판으로 출판됐다. 미국에 출간된 것은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1961년. 하지만 곧바로 음란도서로 기소됐다. 3년의 재판 끝에 1964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물론 이 소설은 ‘근대 문학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순간’이라고 사무엘 베케트가 평한 대로 지금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922년 나온 제임스 조이스 대표작 <율리시스>의 운명은 더 가혹했다. 음란하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영어권 국가들로부터 판금을 당했다. 프랑스에서 겨우 출간된 <율리시스>는 1960년에서야 고향 더블린의 서점에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율리시스>가 음란도서로 지목돼 판매조차 할 수 없었다니 아이러니하다.

<율리시즈>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3.

우리나라라고 해서 음란물 시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고금소총(古今笑叢)>에 실린 해학과 골계담, 그리고 성애담은 우리 민족의 낙천적인 품성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예의와 염치, 근엄의 화신인 선비님네들도 팍팍한 과거 공부 틈틈이 이런 포르노그래피를 읽고 머리를 식혔고, 그들의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게 이런 종류의 패설(悖說)이었던 것.

2006년에 나온 영화 <음란서생>은 인쇄문화가 본격화돼 대중소설들이 장안의 세책가(貰冊家)를 중심으로 민간의 부녀자들에게 은밀히 유통되던 18세기 조선의 사정을 실감나게 묘사했거니와 이 무렵 나온 <북상기(北廂記)>는 충격적일만큼 노골적이다. 2007년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된, 일종의 연극 대본인 <북상기>는 18세 기생과 61세 선비의 그로테스크한 사랑을 극화했다. 우리 고전에 이처럼 노골적으로 성애를 묘사한 작품은 드물고, 희곡이 발달한 중국에서도 성애 장면을 이처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은 찾기 어렵다. 허를 찌르는 풍자와 재기, 기녀의 생활상을 비롯해 당시 사회상과 인물의 생생한 묘사 등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해방 이후, 문화계 최대의 사건은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둘러싼 논란이다. 6·25 휴전 직후 서울신문에 연재된 이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국문과 교수의 부인 오선영은 정숙한 가정주부였다가 친구의 권유로 동창회에 나가 바깥세상에 흔들린다. 양품점에 취직하고 남편의 제자와 춤추러 다니면서 가정 파탄의 위기에 처한다. 한편 그의 남편인 국문과 교수는 젊은 타이피스트에게 접근했지만 그녀가 결혼함으로써 헛꿈은 사라진다. 선망, 질투, 울분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진 오선영은 결국 남편의 ‘이해와 아량’으로 서로 과오를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정비석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자유부인>의 포스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이 소설을 음란성의 잣대로 재기엔 무리가 있지만 어떻든 가정주부의 탈선(?)이란 당대로선 자극적 소재를 다룸으로써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특히, 후일 법무장관을 역임했던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 황산덕이 “대학교수를 양공주에 굴복시키고 교수 부인을 대학생의 희생물로 삼으려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라는 다분히 매카시즘적 공격을 가해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감색 스커트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은미의 하얀 종아리”에 “별안간 가슴이 설레었다”거나 오선영이 옆집 대학생 신춘호의 방에서 춤을 배우다가 “입술을 고요히 스쳐”가자 “미지근한 태도가 오히려 불만”이었다는 둥 묘사의 수위는 지금으로 따지면 오히려 피식 실소가 나올 만큼 일상적(?)이었는데도 그런 논쟁이 불붙었던 거다.

60년대, 70년대에도 이따금 문학의 외설 논쟁이 터져나오곤 했다. 1969년 박승훈이 <서울의 밤>, <영점하의 새끼들> 등을 펴내 ‘박승훈 신드롬’을 일으키다 구속되기도 했다. 같은 해엔 소설가 염재만이 <반노>로 구속됐다. 하지만 염재만의 소설은 “그 주제가 성(性)의 노예성으로부터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방향으로 지향했다”는 취지로 대법에서 무죄로 최종 판결됐으니 오히려 <즐거운 사라> 때보다는 진보적인 판결이 나왔던 셈.

 

4.

예술과 외설을 재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포르노그래피는 성행위의 실제 여부와 표현 정도에 따라 하드 코어(hard core)와 소프트 코어(soft core)로 구분된다. 하드 코어는 실제의 성행위를 묘사하되 성기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수간, 혼음, 근친상간, 사도마조히즘 등 이상 성애를 즐겨 다룬다. 폭력적인 성 표현과 비폭력적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남성에 대한 성 노예화를 묘사하거나 아동이 출연하는 성 표현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소프트 코어는 누드를 다루지만 성기를 직접 노출시키지는 않는 정도.

미국에서는 하드코어 포르노그라피를 트리플 X(XXX)로 표시한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포르노그래피는 표현 그 자체가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주며 나아가 사회적으로 유해한 태도나 행동을 유발시키는 미끼가 될 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적 착취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법적 처벌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 판단의 잣대 역시 사람마다 매우 다른 것도 사실.

외설성이 미학적 개념인 데 대하여 포르노그래피는 도덕적 개념이라고 한 사람은 W. 앨런이다. 위선과 고상한 체하는 감정의 내면을 폭로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마광수가 줄곧 항변한 대목이기도 하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60년대 미국에선 포르노그래피를 단속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반사회적 행동을 유발하므로 유해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왔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19명의 권위자, 20명의 스태프로 ‘외설과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위원회’를 조직, 1968년부터 2년간 실증적 연구를 했다고.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성에 대한 흥미는 극히 당연한 것으로 건강에도 이롭다. 그리고 포르노그래피 문제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성에 대하여 더 솔직하고 대범한 태도를 취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며 성인에 대한 포르노그래피의 판매 진열·배부 금지에 관한 법률을 모두 폐기할 것을 건의했다고.

덴마크에서는 포르노그래피가 널리 퍼지면서 성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해 해금 후에는 3분의 1로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10대 때 포르노그래피에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 중에서 성 범죄자가 오히려 많이 나왔다는 역설적인 연구도 나왔다니 오히려 어리둥절해질 정도. 포르노가 오히려 성적 억압을 풀어주는 구실도 한다는 이야기일 터다.

어쨌거나, 예술의 탈을 쓴 외설도 안 되겠지만, 성애적 묘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망나니 칼 휘두르듯 함부로 외설로 재단해선 곤란하겠다.

 

5.

1999년 경 마광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주로 글 쓰는 일을 핑계로 일요일이든 연휴든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원고지의 칸을 메워 나가는 게 정해진 일과처럼 되어 있다. 정말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이다. 남들은 내가 연애 얘기나 성에 관한 얘기를 많이 쓰니까 아주 재미있고 신나게 일상을 때워가는 줄 아는데 정 반대다.

나는 하루에 담배를 세 갑씩이나 피우고 매일 저녁마다 혼자서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허무주의자다.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비사교적으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 관능적 상상력이 발달하게 됐다. 그리고 비현실적 공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야하고 과장적인 ‘꿈’과 ‘일탈’을 담은 시나 수필, 소설을 많이 쓰게 됐는데 문학이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구속도 되고 꽤나 시달림을 받았다.

거세게 비난하는 분들이 지적하는 것 같이 내 작품세계가 비현실적이고 변태적인 백일몽의 산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작가의 경우라면 야한 연애소설이나 솔직한 고백소설을 쓰기보다 교훈적 이념소설이나 종교소설 또는 민족대하소설을 써서 ‘글쟁이’가 아닌 ‘지도층 인사’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현학적인 포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다. 나는 보수적 권위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며 수구적 봉건윤리와 맞서 싸워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쎄,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증언(?)하듯 그는 일상생활에선 전혀 난잡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낯을 가리고 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

내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내가 마광수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무렵 어느 문예지에 실린 그의 시를 읽었을 때였다. 오래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무슨 할렘의 왕처럼 야하게 치장한 무희들을 거느리고 성애를 만끽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글쎄, 나로선 그의 시가 특별히 음란하다거나 자극적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80년대식 민중주의의 영향이 문단에 강하게 남아 있던 시절에 이런 용기(?)있는 ‘야한’ 시를 문예지에 싣다니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쯤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라든가 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를 읽었을 때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성에 대한 그의 묘사는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약간 구식이랄까, 지루했다는 느낌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그가 ‘음란물 제조’ 혐의로 붙잡혀 갔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 오히려 의아해했던 것. 후일 그가 ‘윤동주 연구’의 권위자란 이야기를 듣고는, 윤동주의 파리하지만 고고한 정신 세계와 마광수의 성애 소설을 연결시켜보고는 그 부조화에 쓴 웃음을 짓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도 마광수의 성애 작품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가의 작품성과 외설성에 대한 논란도 얼마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가 글을 써서 책을 냈다는 이유로 강의 중에 붙잡혀 가서 재판에 넘겨지는 건 지난 시대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드러낸 상흔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한 작가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끝내는 자살로까지 몰아간 지식인들의 엄숙주의도 마찬가지. 예술 작품에 대한 논란은 토론과 논쟁이라는 사회적 여과 장치로 걸러져야지 사법적 몽둥이로 두드려 잡을 문제는 아니지 않나. 그러기에 마광수의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게다.

마광수는 법정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성문제는 마치 쓰레기통에 뚜껑만 덮어놓고 있는 양상”이라고 비판했다. “높으신 분들, 하느님 찾는 분들, 엘리트님들이 낮에는 근엄한 목소리로 마광수 죽여라 해놓고 밤에는 룸살롱에 간다”고도 항변했다.

작가란 존재는 ‘잠수함 속의 토끼’가 아닌가. 옛날의 잠수함은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가끔 물 위로 나와야 했는데, 잠수함 속의 산소 농도를 재기 위해서 토끼를 길렀다는 것. 산소가 희박해지면 토끼가 먼저 죽기 때문이다. 작가는 펜 하나만 가지고 세상과 대적하는 약한 존재다. 사회 전반의 자유의 농도를 알려주는 토끼이기도 하다. 정치적 견해이건, 사회적 태도이건, 하다 못해 성(性) 문제이건 작가의 상상력을 억압하고 표현물을 탄압하는 사회는 문명사회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 마광수는 죽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위선과 야만을 고발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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