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있는 곳에서 주체적인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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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있는 곳에서 주체적인 삶을!
  • 장동범 시빅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07.29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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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 가끔 학교를 나와 보면, 학기 때와 너무나 다른 학교 분위기에 스스로 놀란다. 텅 빈 강의실에 한적한 교내 도로와 건물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살들. 연구실에서 하는 일없이 이런저런 책들이나 뒤적이고 있노라면 강의시간에 늦을까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리들,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나가는 학생들의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도 하면서 그들이야 말로 진정 학교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의 글로 기억하는데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날에 대한 회상에서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엄격한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던 작중 인물이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숙사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데 멀리 정거장에서 기차 기적 소리를 들었던 때가 가장 가슴 설레던 때라고 썼다.

누구나 인생에서 이 같은 가슴 설레거나 즐거운 경험들은 한 두 가지 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방학은 ‘공부하는 고통’(學苦)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때이기도 하다. 학생이면 모름지기 학업이 으뜸이지만 비자발성을 전제로 할 때 공부야 말로 고통으로 느끼는 게 보편적인 정서일 것이다. 빠듯한 수업 일정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지루한 강의에서 벗어나 평소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미뤄두었던 일이거나, 오프라인으로 가고 싶었던 낯선 곳으로의 여행, 또는 누군가와 만남은 젊은 날의 로망이자 분명 인생의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이 같은 일탈(逸脫)의 체험은 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남이 그만큼 소중해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서 아쉽고 부족함을 느끼는 학창시절 때는 하루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 평소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리라 기대하지만 막상 ‘방학 없는 사회생활’을 해보면 아무 걱정 없이 자유분방하게 살면서 공부만 하면 되던 대학생 시절이야 말로 다시 돌아가고픈 그리운 때인 것이다.

누구든지 인생의 황금 시기는 늘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고 돌아가고 싶어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단 1회성의 유한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얼마 전 젊음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는 노시인과 10대의 사랑을 그린 한국영화 <은교>에서 “젊음이 너희가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늙음도 내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인구에 회자(膾炙)된 적이 있었다. 또 잘못 중에서 가장 큰 잘못으로 ‘젊음을 낭비한 죄’가 부각되기도 했다. 그래서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나이 먹어갈수록 실감나고 “빨리 죽어야지”하는 한탄은 노인의 가장 큰 거짓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벨기에 작가 메트롤 링크라는 사람이 쓴 <파랑새>라는 메르헨(어른이 읽는 동화)에는 두 형제가 잃어버린 파랑새를 찾아 헤매다 집에 돌아와 보니 그토록 찾던 파랑새가 새장 안에 있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글의 핵심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도 젊은 시절 우리는 행복이 항상 멀리 있는 줄 알고 찾아 방황하다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야 비로소 행복이 가까이, 내 안에 있음을 알아챈다.

얼마 전 중국 운남성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해발 3000미터 이상 고원지역으로 티베트와 인접한 중티엔(中甸)은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상향(理想鄕)을 뜻하는 ‘샹그릴라’로 잘 알려져 있고, 중국 정부도 이곳이 샹그릴라(香格里拉)임을 공식 발표했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옥룡설산을 해발 4,680 미터까지 숨차게 오르며 나는 무릉도원이나 이상향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음을 실감했다. 실제로 티베트어로 샹그릴라는 ‘마음속의 푸른 해와 달’이라는 뜻이라 한다.

임제(臨濟) 스님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隨處作主, 立處皆眞)는 어록을 남겼다. 어디에 있든지 참되게 주체적인 삶을 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한 사람의 삶은 주인이 따로 있고 어느 누구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 가장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도록 저마다 부여받은 소중한 존재 이유인 것이다. 게 중에 인생의 황금기인 젊은 시절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바로 방학이다. 방학은 공부에서 해방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학교라는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넓은 세상을 향해 열리는 기회의 시기이기도 하다.

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떠나 조용한 캠퍼스를 거닐며 이런 저런 생각에 사로잡히다가 떠오르는 최근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슈 하나! 바로 오는 2018년이면 한국 대학들의 전체 입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를 최초로 넘어선다는 것. 대학 입학 문이 그 만큼 넓어진다는 것이고 학교의 주인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들의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졌고, 특히 학생 유치를 놓고 지방대학들의 위기감이 더 높아지고 있는 작금이다. 이에 따라 대학 구성원들의 상호 역할과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지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한 때를 캠퍼스에서 보내야 하는 젊은이들! 대학의 진정한 주인인 이들이 방학을 잘 보내고 학교로 돌아와 캠퍼스가 또 다시 활기 넘치게 되면 학교도, 학생들도 한결 성숙해져 저마다 있는 곳에서 보다 주체적이고 자유 분망한 대학사회가 되도록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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