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졸업하다'...어느새 불어닥친 졸혼(卒婚) 바람, 시민들도 찬반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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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졸업하다'...어느새 불어닥친 졸혼(卒婚) 바람, 시민들도 찬반양론
  • 취재기자 김지언
  • 승인 2017.08.2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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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성 54%, 미혼 여성 63%, “결혼 후 졸혼할 생각 있다” / 김지언 기자
일본에서 등장한 졸혼이 40~60대 중년층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졸혼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에 비해 졸혼을 터무니없는 문화라고 여기는 시민들도 나타났다(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주부 배성주(57, 부산시 사하구) 씨는 최근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서류상으로 이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부부관계에서 벗어나는 졸혼을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배 씨는 “35년을 함께 살았는데 그동안 남편과는 마음 맞는 부분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더 이상 부부라는 명목 아래 서로에게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며 “아이들 둘 다 성인인지라 자녀 정서나 교육상 못 갈라서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원래 살던 집에서 따로 나와 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는데 요즘처럼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운 적은 처음”이라며 현재 생활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황혼 이혼에 이어 중·장년, 노년층 사이에서 졸혼 바람이 조용하게 불고 있다. 졸혼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공감대가 아직은 충분하게 형성되진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의 단초로 볼 만한 사례들은 줄을 잇고 있다.

졸혼은 ‘졸업’과 ‘결혼’이 합쳐진 신조어로 30~40년을 함께 산 황혼기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각자 따로 살면서 개인 생활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일본 중년 부부 사이에서 확산된 문화였다. 백세 시대가 열리면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늘어나고, 결혼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선택으로 보는 경향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졸혼은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해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반면 이혼으로 가는 수순으로 악용될 수 있고 질병이나 사고 시 의지할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졸혼 문화에 대한 소재가 등장한다. KBS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중년 남성 차규택(강석우 분)이 아내인 오복녀(송옥숙 분)에게 졸혼하자며 졸혼과 관련된 책을 건네는 모습이 나온다. KBS 예능 <여유만만>에서도 졸혼이 늘고 있는 실태에 대해 22일 방영할 정도로 졸혼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뜨겁다.

모바일 결혼정보서비스 '천만모여'가 미혼 남녀 54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졸혼’ 문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절반이 넘는 57%로 나타났다. 결혼 후 ‘졸혼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 질문에 미혼 여자의 63%, 미혼 남자의 5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졸혼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결혼 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가 57%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배우자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가 22%, ‘사랑이 식은 상태로 결혼 생활을 유지할 것 같아서’가 18%로 뒤를 이었다.

시민들의 의견도 찬반 양론으로 갈린다. 직장인 안진수(37, 대구시 달서구) 씨는 “졸혼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면서 사회적으로 이혼을 부추기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면서 “결혼은 일생에 한 번 뿐인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회사원 오지혜(28, 서울시 중랑구) 씨는 “요새 누가 결혼은 한 번만 하는 거라고 못을 박아두냐”며 “그건 구시대적 발상이고 요즘은 마음이 안 맞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이혼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재혼도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학생 박혜경(25, 부산시 북구) 씨는 “결혼 생활을 유지한 지 오래된 부부가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졸혼하려는 거라면 서로에게 믿음이 있는 상태에서는 괜찮은 방법으로 보인다”며 “내가 다 큰 마당에 만약 내 부모님이 서로의 인생을 위해 졸혼한다고 하시면 망설임 없이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민 최현종(57, 경남 밀양시) 씨는 “부부가 한 집에 같이 살지도 않고 왕래도 없다면 그건 이혼이랑 다를 게 없다”면서 “차라리 이혼하고 말지 졸혼이라는 말 자체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비판했다.

네이버 이용자 shvj****는 “솔직히 졸혼이라는 단어가 웃기긴 하다”며 “가정불화와 이혼을 애써 졸혼이라고 포장하는 느낌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이버 이용자 muto****도 “졸혼인지 나발인지 콩가루 집구석에서 망한 부부 사이를 포장해보려고 되도 않는 단어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이에 트위터리안 poaj****는 “같이 살지 않는 것뿐이지 졸혼한 부부도 부부”라며 “이따금씩 같이 만나서 자녀 얘기도 하고 각자 사는 얘기도 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냐”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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