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다 할머니 목소리가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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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보다 할머니 목소리가 더 좋아요"
  • 취재기자 강경민
  • 승인 2013.07.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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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사람 향기를 전하는 '이야기할머니' 이야기
▲ 유정숙 씨가 진주참빛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 한국국학원 이야기할머니 사업팀 제공).

2013년 여름, 한 유치원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있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인자한 자태와 목소리에 귀와 눈을 모으고 때론 웃기도 했고, 때론 무서워하기도 했으며, 때론 울먹이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 이야기 할머니는 경남 진주시에 사는 유정숙(60) 씨다. 유정숙 할머니는 젊은 시절 한 때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3남매를 키워낸 억척 어머니며 주부였다. 자녀들이 커가면서 하던 일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낸 그녀에게 무기력감과 우을함이 밀려 왔다. 유 할머니는 “정기적으로 일하러 갈 곳이 생긴 것 만해도 큰 기쁨이고 삶의 활력소입니다”라고 말했다.

유 할머니는 우연히 ‘이야기 할머니’ 양성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에 나서게 되었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노령 여성 인력에게 구연동화 교육을 시켜 유치원 유아 교육을 통해서 사회에 봉사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이건 날을 위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려운 면접도 거쳐야 하고 교육기간도 7개월이나 되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720명 모집에 2700명이 모이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유정숙 할머니는 당당히 이 프로그램에 합격하게 됐다. 할머니가 사는 진주에서 매주 3일 동안은 교육을 받기 위해 새벽처럼 일어나 대구행 차를 타야 했다. 유 할머니는 “남편이 흔쾌히 받아들이고 후원해주었어요. 수업 시간 간간히 응원 문자도 보내주었습니다”라고 소녀처럼 부끄럽게 말했다.

교육을 마치자, 유정숙 할머니에게는 일주일에 세 번 유치원에 나가서 1시간 20분간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일거리가 생겼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친 손주라 생각하고 옛날의 교훈이 담긴 이야기, 훈훈한 미담, 민족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유 할머니는 “아이들이 이야기 듣는 것을 아주 재미있어 하고, 목이 터져라 대답할 때, 저도 보람을 느껴요”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보람이 날 때는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갈 때다. 마칠 시간이 돼서 가려고 일어나면, 아이들이 할머니에게 달려와 안긴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가지 마세요”라고 말할 때, 유정숙 할머니는 사람이 아름답고 삶이 즐겁다는 것을 느낀다.

유정숙 할머니는 실제 목소리로 들려주는 동화에 아이들이 집중하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TV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 할머니는 TV의 기계음에 아이들이 지쳤기 때문에 직접 육성을 전달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TV에만 길들여 있는 아이들이 할머니 입에서 전해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똘똘한 눈으로 저와 눈을 맞추고 집중해요“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유정숙 할머니는 요즘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고 TV와 접촉하는 시간이 많아서 산만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유치원 교육이 어린 나이부터 주입식 교육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문제를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유정숙 할머니는 “좀더 인간적인 감정과 인성 교육이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 할머니 자격을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수업이 없는 날에도 쉬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한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외워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우린다. 유치원 아이들의 방학 기간에 이야기 할머니들은 모두 심화교육을 받게 되어 있단다. 그리고 1년 활동 이후에는 다시 재교육도 받아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일임에도 지원자는 넘쳐난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노년층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매년 1회씩 선발되는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이제까지 5기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해 선발된 사람은 그해 교육을 거쳐 다음 해부터 활동하게 된다. 지원 조건은 만 56세 이상의 고정된 직업이 없는 여성에 한한다.매년 2월부터 한국국학진흥원(홈페이지: http://www.koreastudy.or.kr)에서 지원서를 접수받는데, 2014년 6기 모집은 현재 세부 계획을 수립 중이며 확정되는 대로 공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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