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시위는 '아랍의 봄'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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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시위는 '아랍의 봄'과 다르다"
  • 취재기자 권경숙
  • 승인 2013.07.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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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 콥쿠 교수 "무슬림화 퇴행 정책에 반발 사회운동"
터키에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최초에는 이스탄불의 탁심(서울의 명동이나 부산의 광복동 같은 곳) 게지 공원에 쇼핑센터를 세우려던 정부 계획에 반대해 시작된 소규모 집회였으나,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외신들은 민주적 국민투표의 연속적 승리로 11년 동안 장기 집권해 온 에르도안 총리에게 쌓인 국민의 피로감이 분출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연 깊은 이유가 있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 멸망 이후, 20세기 초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 장군이 공화국을 세웠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다보면 거리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는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케말 장군일 정도로, 터키 국민들에게 케말은 존경받는 건국의 아버지다. 그런데 케말은 탈 아시아와 유럽화를 국가 정책으로 정했으며, 이에 따라서 아랍 문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표기문자로 교체했고, 공공기관이나 모든 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무슬림 여대생들은 히잡을 쓰고 다니다가 학교 정문을 들어 설 때면 이를 벗어야 한다. 그밖에도 이슬람 전통 복장 폐지, 남녀평등권 확립 및 정치 제도의 민주화 등 이슬람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개혁과 서구에 대한 개방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려는 노력도 모두 이런 터키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국부(國父)의 이러한 정책은 아무리 무슬림 터키인이라 해도 공식적으로는 거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에르도안 총리와 그의 부인은 독실한 무슬림이며 과거로 회귀라도 하듯 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퇴행적 정책을 펼침으로써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최근의 시위는 정부 자체가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것이고 총리가 리비아의 카다피 같은 독재자도 아니므로 아랍의 봄을 뜻하는 순수한 민주혁명은 아니다. 이것은 전통적 이슬람 세속주의와 총리의 점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화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부산 경성대 교환 교수인 터키 바흐체세히르(Bachesehir) 대학 무랏 콥쿠(Murat Copcu, 42) 교수는 다음과 같이 터키 국민의 속사정을 털어놨다.

국내 언론들이 이번 시위를 터키판 '아랍의 봄'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콥쿠 교수의 생각은 이와 전혀 달랐다.

중동 국가에서 발발했던 반정부 시위, '아랍의 봄'은 경제적 어려움 해결과 독재자 축출이 목적이었던 반면, 터키 시위는 국민이 투표로 선출한 에르도안 총리가 자꾸 이슬람주의를 강조하는 바람에 시위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원래의 터키를 유지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시위대의 배후에 어떠한 정치 세력이나 종교 집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다른 아랍 민주혁명과 큰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 부산 경성대 교환 교수로 재직 중인 터키 바흐체세히르(Bachesehir) 대학 무랏 콥쿠(Murat Copcu, 42) 교수(사진 : 김민철 영상기자).

콥쿠 교수가 말하는 이번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상극이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학생, 교수, 변호사, 가정주부 등 다양한 계층이 시위대와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서로를 싫어했던 라이벌 축구 팀 팬들도 시위에서는 한 팀이 되었으며, 심지어 총리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시위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음주가 자유로운 터키의 독특한 분위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널리 공유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콥쿠 씨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히려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이는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여) 민주화를 역행하려는 에르도안 정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데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해석했다.

터키 시위의 양상은 초기에 게지 공원 재개발 반대를 외쳤던 것에서 나아가 에르도안 총리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진화했다. 콥쿠 씨는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의 원인으로 이슬람 근본주의화도 있지만 에르도안 총리의 대응 방식을 꼽았다. 시위자들은 국민 모두가 주인인 게지 공원을 개발하겠다고 일방 통보한 것에 대한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와 의견 수렴을 원했을 뿐인데, 총리는 이를 무시하고 경찰력을 동원해 최루가스, 물대포 등 잔인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진압했단다. 콥쿠 교수는 “자신의 지지 세력과 시위대를 편 가르기 하고 시위자들을 ‘약탈자’라고 부르는 등 국민에게 상처를 줬다”고 전했다.

결국 시위대의 답답함은 20세기 초부터 유지돼온 종교로부터의 분리 정책을 총리가 자꾸 건드리는 것에서 비롯됐다. 콥쿠 교수는 에르도안 총리가 주류 판매 금지, 대학 내 경찰 배치, 일부 예술 활동 금지 등 이슬람주의에 근거한 정책을 앞세워 국민의 자유를 침해해 왔던 것도 국민들이 화가 난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터키인들은 거리 어디서나 자유롭게 술을 마시며 젊은이들은 애정 표현을 하기도 한단다. 히잡 쓴 여자와 남자가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은 이스탄불에서 흔히 관찰된다.

콥쿠 씨는 “시위대를 구성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원래의 자유가 사라진 자신들의 미래를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에르도안 총리는 그와 함께 과거처럼 자유로운 터키 국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시위의 최종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 아닌 원래의 '세속주의(secularism)‘를 지키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속주의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터키는 철저히 이슬람 율법에 근거해 정치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이란 등의 이웃 국가와 달리 케말 때부터 세속주의를 실현해 왔다.

콥쿠 씨는 “현 정부가 이슬람이란 종교를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다음 달 게지 공원 개발 사업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절충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만약 개발 금지 결정이 내려지면, 총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고, 반대로 개발 허가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총리는 투표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묻겠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콥쿠 교수는 “에르도안 총리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이미 너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제안도 국민의 화를 누그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터키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지만 얼마 남지 않은 선거에서 현 총리는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터키의 주식 시장과 관광업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콥쿠 교수의 말에 의하면, 터키 이스탄불은 1,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에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데 이번 시위 때문에 관광 예약이 많이 취소됐고, 타국 유학생들도 기숙사에만 머무르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콥쿠 교수는 “지금 당장에 이러한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자유로운 터키를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할 문제라면 부딪쳐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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