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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것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부산광역시 김예지

“너 데모하려고 대학 갔냐? 대학 들어가서 데모나 하고 앉았으니… 사우디를 가봐라. 그래야 대한민국이 좋은지 알지.” 데모하는 학생들을 보며 주인공 만섭(송강호 분)이 하는 푸념이다. 택시운전사인 만섭은 학생들이 데모하는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데모는 그저 택시 통행을 방해하고, 체루가스에 따가운 얼굴을 막으려고 치약을 인중에 묻히게 만들며, 종국에는 그의 택시 헤드라이트를 부숴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 만섭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불볕 아래에서 5년간 일했다. 벌어 온 모든 돈을 아내의 병원비로 썼고, 그가 애지중지하는 택시는 살 가망이 없음을 인지한 아내의 마지막 권유로 산 것이다.

만섭은 친구의 집에 세 들어 살며 어린 딸을 혼자 키운다. 주인집 아들과 다퉈 상처가 난 딸의 얼굴에 화가 나 주인을 찾아가지만, 밀린 사글세(남의 집이나 방을 빌려 쓰는 값으로 다달이 내는 돈) 10만 원 때문에 오히려 주인에게 사과하고 만다. 어쩌면 주인집 아들의 괴롭힘에 “참아야지,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딸을 다독이던 모습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든다.

가난한 현실에 버거운 만섭이지만, 그에겐 인간적 따스함이 남아있다. 딸을 위해 소풍을 가자 권하고, 임산부와 그녀의 남편을 태워 병원에 내려주지만, 돈이 없다는 그들에게 따불(택시 요금의 2배를 지급하는 것) 약속과 남편의 명함 한 장만 받고 순산을 기원해준다. 그는 그런 인간적인 사람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줄곧 ‘만섭’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관객으로 하여금 만섭을 이해하고 동화되게 만든다. 그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삶에 지쳐 세상일에 무심해졌지만, 인간적 따스함을 잃지 않은 우리 말이다.

밀린 사글세 10만 원을 빌리기 위해 만섭은 집 주인이자 친구인 상구 아빠(고창석 분)를 불러낸다. 그리고 우연히 통금 전까지 서울에서 광주를 다녀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외국 호구(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 이야기를 듣는다. 일본에 있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가 광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듣고 직접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이다. 사우디에서 일했던 만섭은 얕은 영어 실력을 뽐내며 “나이스 투 미 츄, 렛츠 고 광주”를 외친다. 만섭은 10만 원을 위해, 힌츠페터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과 독일의 외부인은 또 다른 외부인인 관객을 태워 그 날의 광주로 향한다.

10만 원과 신발

영화에서 ‘10만 원’은 만섭의 광주행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힌츠페터가 통금 전까지 광주를 다녀오면 준다고 약속한 돈이 10만 원이다. 밀린 사글세를 낼 수 있고, 그보다 앞서 신발이 작아져 꺾어 신는 딸을 위해 새 신을 사줄 수도 있다. ‘신발’ 역시 주목해야 한다. 뒤축이 꺾인 운동화와 분홍색 구두는 딸에 대한 만섭의 사랑을 나타낸다. 또한, 핏물과 흙먼지에 뒤엉켜 주인을 잃은 수많은 광주 희생자들의 신과 휘장자 중 한 명인 '재식'의 신발이 만섭의 변화와 관객의 동요를 끌어낸다.

직업의식, 혹은 누군가의 부채(負債)

“저 광주 사람 아닙니다. 저 서울 사람입니다”라며 사복 특공조장(최귀화 분)에게 외치던 만섭이다. 그는 외부인인 ‘서울 사람’이자 ‘서울 택시 기사’다. 하지만 외지인 서울 사람인 그가 공간 속에, 사람들 속에 녹아들며 광주의 일을 제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국숫집에서 대화를 나누던 손님과 주인은 광주의 진실을 모른다. 뉴스에서도 거짓만을 이야기한다. 집에 혼자 있을 어린 딸이 마음에 걸려 서울로 돌아가던 만섭은 예쁜 분홍 구두를 사고, 딸에게 다시 전화한다. “아빠가 해야 할 일이 있어. 손님을 두고 왔어.” 어쩌면 이 말은 두고 온 이들에 대한 부채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힌츠페터를 도와야 한다는 정의감(正義感)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택시 기사인 그에겐 손님을 목적지에 데려다줘야 할 의무가 남아 있었다. 그건 만섭이 해야 할 일이었다.

푸른 눈의 목격자

장훈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의 만남을 이야기했다. 감독은 가장 먼저 “어떤 마음으로 광주에 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어떤 대단한 사명감이 있으면 그런 위험한 곳에 가는 걸 자청할까 싶어서였다고 한다. 힌츠페터는 “기자니까 당연히 간 거다”라고 답했다는 것. 혹시 다른 기자들과 다른 특별한 기자 정신이 그에게 있지는 않을까 싶어, 장 감독이 “왜 기자가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힌츠페터는 ‘돈 때문’이라며 손으로 지폐를 세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장 감독이 상충한다고 생각한 두 가지의 가치가 힌츠페터에겐 공존하고 있었다. 덤덤한 그의 대답이 부럽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기자니까 당연히 갔다는 그의 대답처럼 말이다.

박 중사

만섭이 광주를 벗어나 공항으로 가기 위해 검문소에 도착했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힌츠페터와 만섭이 트렁크를 뒤지는 박 중사(엄태구 분)를 간절히 바라본다. 안타깝게도 박 중사는 트렁크 한 편에서 숨겨진 서울 택시 번호판을 발견하고 만다. 박 중사가 소리친다. “보내줘. 보내주라고. 서울 택시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라는데 어쩔 거야.” 이 장면에서 모든 관객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는 왜 그들을 보내줬을까. 영화 속에서 군인과 사복을 입은 특공 조가 악(惡)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세상은 선과 악이 이분법처럼 뚜렷하지 않다. 특히나 사람의 경우는 훨씬 복잡하다. 누군가의 명령이나 특정 상황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과연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옳지 않은 일이라 거부할 수 있을까? 어쩌면 군복을 입은 박 중사 역시도 또 다른 모습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놀랍게도 이 장면은 힌츠페터가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이 있다. 배우 유해진과 류준열의 활용이 부족한 것 같단다. 그 날의 광주는 영화보다 무자비했다고 소리 높인다. 후반부의 추격 장면이 꼭 필요했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하고 싶다. 흔히 말하는 신파가 없었고, 영웅들의 서사 역시 없었다.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 위해 자극적으로 만들지도, 애국 마케팅에 기대지도 않았다. 지나침 없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택시운전사>가 보여준 5월의 광주와 서울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 날, 그곳에 영웅은 없었다. 단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아, 하나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왜 그러느냔 물음에 시종일관 모른다고 답하던 재식의 대사가 맴돈다. “모르겄어라. 우덜도 우덜한테 와 그라는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물을 수 없는 그분의 소식이 들려온다. 사실 왜곡으로 회고록 출판과 배포가 금지됐다는 씁쓸한 소식이 말이다.

부산광역시 김예지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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