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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대장과 병영 문화의 그늘...국방의 의무에 가린 인간의 존엄성/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에 주둔한 한국군 사령관을 지냈던 채명신 장군이 병사들을 자식처럼 배려한 일화가 있다. ‘보병의 전투력은 발바닥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가진 그는 베트남의 습한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쉬는 시간에 군화를 벗고 맨발로 다니라고 했다. 또 무좀으로 고생하는 병사들이 늘어나자 작전을 중단하고 휴양소 백사장을 맨발로 걷게 해 무좀을 치료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개헌에 반대했다가 예편당한 그는 2013년 11월 25일 향년 88세로 별세하면서 국립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닌 제2사병 묘역에 묻혔다. ‘죽으면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했던 유언을 따른 것이다. 장군이 한 평짜리 사병 묘역에 안장된 것은 채명신 장군이 처음. 그와 함께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고 이곳에 안장된 병사는 900여 명. 그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주월 한국군 사령관 당시의 채명신 장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전우애는 이런 것이다’라고 몸소 가르쳐준 사람이 고 한주호 준위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순직했다. 높은 파고와 낮은 수온 등 극한의 환경에서도 숨진 전우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건 수색에 나섰던 것. 당시 3월 30일 잠수 수색 활동 중 실신한 그는 미 해군 구조함으로 후송돼 응급 처치를 받았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구조활동을 벌이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박찬주 대장이 공관병들에게 전자 팔찌를 채운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업무 시간 외에는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다. 프랑스에선 2017년 1월 1일부로 관련법이 시행되고 있다. 직원이 50명 이상인 프랑스 기업은 근무 시간 외에 노동자에게 연락하는 문제에 대해 직원들과 의무적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에 빗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카톡 야근’, ‘24시간 메신저 감옥’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자 정부가 올 연말까지 실태를 파악해 개선해나가기로 했다. 지난해 6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명시돼 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이 프랑스에서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풍자한 사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박찬주 대장은 공관병의 전자 팔찌에 대해 “자식처럼 여겼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손님들이 있는 데서 공관병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전자 팔찌로 조용하게 호출하는 식으로 배려했다는 거였다. 채명신 장군이 사병들을 자식처럼 여겼던 일화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박 대장의 부인도 어제 군 검찰에 출두하면서 취재진에게 “제가 잘못했다. 아들같이 생각하고 했지만...”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이를 받아들일지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 어느 아들들이 부모들한테서 일상적으로 모욕을 당하면서 살아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들같이 여겼다면서 왜 자신의 아들은 쉬게 하고 남의 아들에겐 속옷 빨래와 바비큐 시중을 들게 했는지 궁금하다.

장군에겐 장군의 통솔 방식이 있는지 모르지만 권리와 의무의 경계가 헷갈릴 때는 헌법을 펴면 답이 나온다. 이참에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를 한 번 읽어보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인간의 존엄성 규정은 국가나 사회제도 등 그 어떤 것보다 인간의 가치가 최우선이라는 인간중심주의를 토대로 한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결코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우리 헌법이 인간을 국가나 특정 사회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전체주의를 부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도소 감방 한 구석에 화장실이 있다. 하지만 화장실 칸막이가 허술해 용변을 보는 재소자가 수치심을 느낄 정도라면 어떨까. 이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결정한 바 있다.

폭력 행위와 불법 집회 가담한 혐의로 체포된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경찰관은 자해가 우려된다며 규칙에 따라 학생이 쓴 안경을 강제로 회수했다. 금속으로 된 안경테를 흉기나 다른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시력이 0.1도 안 되는 학생은 안경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는 학생의 ‘볼 권리’를 경찰이 침해했다고 판정했다.

물론 자유와 권리도 무제한 누릴 수 없는 게 민주공화국의 현실이다. 공관병들이 군 복무를 하는 근거는 헌법 제39조에 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방의 의무를 진다."

그렇다면 ‘병역의 의무’와 ‘자유와 권리’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헌법 제37조를 읽어 보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를 테면 ‘병역의 의무’ 또한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병역의 의무를 진다고 해서 군에 입대한 병사들을 상관들이 제멋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거다.

박찬주 대장의 공관병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한 이 땅의 건강한 젊은이들이자 한 가정의 귀한 자식들이다. 공관병의 상관은 마땅히 이들을 지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까지 침해할 권한은 없다.

병역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상관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도 침해해서는 안 될 본질적 자유와 권리의 내용은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사령관 부인으로부터 칼로 도마를 내려치는 따위의 모욕을 당하지 않을 권리, 전을 잘못 부쳤다는 이유로, 토마토가 물러 터졌다는 이유로 얼굴에 투척을 당해 수치심에 사로잡히지 않을 권리, 전자 팔찌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 언제 호출이 올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강박에서 벗어날 권리, 대장의 아들을 위해 바비큐를 준비하고 빨래하는 머슴살이를 거부할 권리, 사령관 부부가 눈 뜨는 시간에 출근하고 취침하는 시간에 퇴근하는 비인간적 복무에서 해방될 권리, 새벽 5시에 일어나 공관 텃밭에서 사령관 가족들이 먹을 작물을 수확하는 ‘사노비’ 같은 계급의 굴레에서 벗어날 권리, 부당한 지시를 견디다 못해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이유로 최전방 GOP에 징벌적 파견 근무를 보낸 인사 명령을 거부할 권리...’

이들을 묶어 요약하자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할 권리’쯤 될 터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민주주주의 국가가 보장해야할 최후의 보루이다. 병역의 의무조차 이를 박탈할 수는 없을 터.

별 넷을 단 대장이 공관에서 헌법의 기본 조항을 침해하는 일들이 일상으로 벌어지는 데도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대목을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사병(士兵)을 사병(私兵)으로 여기고 머슴처럼 부리는 군대는 이미 군대가 아니다.

군 장성들에게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이나 충절까지 바랄 수는 없다. 그저 보통의 상식으로, 헌법 정신에 기초해서 사병들을 통솔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하면 군의 사기가 살아나고 전투력도 오르게 돼 있다. 군대라는 이유로 통용되던 전근대적 사고와 악습에서 헤어나야 우리의 어두운 병영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국방부 장관이 장군들에게 대한민국 헌법 한 번 읽어보라고 권장하는 것은 어떨지.

편집위원 이처문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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