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나의 조국 한국과의 인연: 동아일보, 조선일보, 미주리 저널리즘 오너 메달 수상
상태바
(9)-4 나의 조국 한국과의 인연: 동아일보, 조선일보, 미주리 저널리즘 오너 메달 수상
  •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 승인 2017.08.06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부 보람 찾는 언론학 교수] 19명의 한국 신방과 교수 배출, 100여 명의 한국 언론인 해외연수 운영 / 장원호 박사

(9)-3 나의조국 한국과의 인연에서 계속: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주립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의 '언론 공로 메달'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매스미디어 관계 기관이나 언론인에게 매년 주는 상입니다. 이 메달은 1930년에 처음 생긴 이래 500명의 개인과 단체가 수상했습니다.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은 그 해 세계적으로 업적이 뛰어난 언론단체나 언론인 1명을 선정해서 오너 메달을 수여한다. 사진은 미주리 오너 메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아시아 중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언론기관이 이 메달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한국 언론으로서는 내가 추천하여 1985년에 동아일보가 받았고, 1994년에는 성곡 언론재단, 그리고 1996년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영예의 메달을 받았습니다.

메달 수상 만찬 자리에서, 동아일보의 고 김상만 회장은 영국 식 액센트의 영어를 구사해서 박수를 받았고, 성곡 언론재단의 한종우 이사장은 한국의 연고대 같이 미주리 대학의 영원한 라이벌인 옆 주 캔사스 대학 출신으로 "적진에 와서 상을 받는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도 험난했던 한국 언론사에 대한 영어 연설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미국 공중파 NBC-TV의 간판 앵커였던 탐 브로커도 미주리 오너 메달을 받았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내가 미국에서 언론학 교수를 하면서 가장 큰 자랑과 보람은 한국 언론학 유학생 교육과 한국 언론인 해외연수입니다. 나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한국 학생과 언론인들을 미주리로 유치해서 그들을 교육시켜 국내 언론 선진화에 기여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내가 은퇴한 2000년까지 나는 이 대학 창설 이래 교수 중에서 가장 많은 31명 박사를 지도, 배출했는데, 이 중 한국 학생이 19명이었으며, 석사 학위를 지도한 학생수는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해외연수를 도와준 한국 언론학 교수와 언론인 수는 100명을 훠씬 넘습니다.

내가 지도교수로 배출한 한국인 언론학 박사들은 박영상(한양대), 김정탁(성균관대), 김흥규(한국외국어대), 김승현(고려대), 한정호(연세대), 임상원(고려대), 윤석홍(단국대), 정만수(숙명여대), 정태철(경성대), 정걸진(경북대), 우병동(경성대), 김영기(전남대), 이민규(중앙대), 이병수(Elon Univ.), 김종찬(예비역 준장), 강승구(방송통신대), 이은택(방송통신대), 박종민(경희대), 김헌식(Univ. of Colorado) 교수 등 19명입니다.

1965년부터 시작된 언론인 해외연수로 인해, 그동안 많은 한국 언론인들이 해외 선진 언론을 연구한 경험을 쌓고 돌아가 한국 언론을 양과 질적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켰고 한국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해외연수를 도운 기관 중 한국의 성곡언론재단은 우리 나라 언론재단들 중에서 가장 먼저인 1965년부터 국내 언론인의 해외연수를 지원해서 최근까지 140여 명을 연수시켰습니다. 이 재단은 매년 4-5명씩의 기자를 선발해서 영국의 카딥, 홍콩의 중문대학, 일본의 게이오 대학, 프랑스의 파리 대학, 그리고 미국의  하버드, 콜롬비아, 미주리 대학에 보냈습니다.

관훈클럽은 1957년에 창설됐는데, 1977년에 신영연구기금이란 언론 후원 재단을 설립하고 그 사업의 일환으로 최근까지 언론인의 해외연수를 후원했습니다. 

1980년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언론인 해외연수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나, 그 이듬해에 이 사업을 언론연구원으로 이관해서 1989년까지 계속 해외연수를 지원하다가 그후 중단됐습니다.

역시 1980년에 대우그룹에서 설립한 서울언론재단도 언론인 해외연수를 지원했고, 1989년에 설립된 SBS가 그해 동시에 설립한 서암재단도 언론인과 언론 관계 교수들의 해외연수를 지웠했습니다. 1993년부터는 서울프레스센터에서도 언론인의 단기 해외연수를 지원했고, 이 밖에도 1982년에는 연합통신이 자체 자금으로 자사의 기자들을 해외로 보내자, 다른 언론사들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1996년부터는 LG 그룹에서 만든 상남언론재단, 그리고 삼성그룹의 삼성언론언단이 설립되어 국내 언론인들의 해외연수를 도왔습니다. 

최근 한국 언론재단들은 '김영란법'에 의해 언론인들의 해외연수 지원을 중단했다고 듣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내가 은퇴한 2000년까지 내가 주선해서 미주리 대학에 연수를 다녀간 언론학 교수, 언론인들의 명단과 연수 온 당시의 소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1979: 이원달(중앙일보), 이광재(경희대), 장원흥(조선일보), 김덕규(전 국회 부의장)

1980: 양휘부(KBS), 장정행(서울신문)                     

1981: 하진오(연합통신)

1982: 이인형(부산일보), 최동우(연합통신), 이용승(경향신문), 은종일(연합통신), 김종남(광주일보), 송태호(경향신문), 김차웅(동아일보)

1983: 양재흥(연합통신), 김희진(한국경제), 고흥길 (중앙일보), 이종구(Korea Herald), 신용순(동아일보), 최선록(서울신문), 박종형(조선일보), 최희조(동아일보), 황봉구(KBS) 

1984: 이정교(연합통신), 하정조(연합통신), 손영수(Korea Herald), 박향구(광주일보)

1985: 송효빈(한국일보), 임백(조선일보), 민병문(동아일보), 김재곤(동아일보), 남성욱(KBS), 김왕기(Korea Herald)          

1986: 김진호(연합통신), 김성구(잡지 '샘터' 사장), 문창극(중앙일보), 이장규(중앙일보), 민병욱(동아일보), 조순형(KBS), 최남현(Korea Herald)

1987: 김영희(중앙일보), 최청림(조선일보), 김광섭(중앙일보), 장용성(매일경제), 배귀섭(MBC), 조영휘 (KBS)

1988: 김종립 (LGAd), 안병화(제일기획)

1989: 최신호(서울신문), 허남진(중앙일보), 김민환(고려대), 구자호(조선일보), 민충기(KBS), 정혜자(무등일보), 이주룡(KOBACO), 이종선(KOBACO), 이경구(오리콤), 김희광(금강기획)

1990: 김종완(동아일보), 박정규(청주대), 정해영(조선일보), 김종량(KOBACO), 유완근(KOBACO), 김영수(일동제약), 최영집(KOBACO)

1991: 이우봉(부산매일), 고도원(중앙일보), 문인기 (쌍용), 송병국(대구MBC), 구기룡 (KOBACO),홍지일 (KOBACO)

1992: 공진구(공군), 박영배(한국경제), 이승철(경향신문), 정동우(동아일보), 서상숙(중부매일),

1993: 차용범(부산매일), 김창욱(중앙일보), 김현섭(경향신문), 이은경(국민일보), 김대호(매일경제), 고광남 (KBS), 조순영(외국어대학), 유재혁(서울신문)

1994: 성하운(동아일보), 이선재(KBS), 오양호(태평양변호사)

1995: 강현두(서울대), 이현규 (MBC), 정성근(SBS),

1996: 김석현(중앙일보), 배명철(조선일보), 임의순(LG ), 반재풍

1997: 박계동(국회의원), 서원석(조선일보), 양성기(해군중령), 조성환(경향신문), 전영배(MBC), 노웅래(MBC), 김경중(MBC), 유용원(조선일보), 이의정(전남대), 김 연(경성대), 김민남(동아대), 송유재(이화여대), 정태철(경성대), 이완수(내외경제), 김만수(해군중령)

1998:  민경욱(KBS), 허인구(SBS), 김규진(공군중령)

1999:  이상일(중앙일보), 이규연(중앙일보),

나는 2000년에 미주리 대학을 은퇴하고 아주대에 석좌교수로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한국 언론인들이 미주리에서 연수를 받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한동안 성곡 언론재단은 미주리 대학과 직접 연결하여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한국의 언론학자와 언론인들이 매년 사람을 바꿔가며 미주리에서 1년을 지내는 동안,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미주리에 온 기자들은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지는 한 가지 큰 낙이 골프였습니다. 연수 기간 중 한국 언론인들은 강의와 공부 틈틈이 필드에 나가 골프를 즐겼습니다. 사실 이곳에 연수 온 기자들은 대개 언론사에 입사한 지 10년 전후 또는 그 이상 되는 사람들로 그 동안 일선에서 바쁘게 뛰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서 휴식이 필요한 상태로 이곳에 오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앞장에서 소개한 것처럼 처음 6개월간의 고달픈 IEP(Intensive English Program) 영어 공부 과정과 그 후에는 저널리즘 스쿨에서의 쉽지 않은 정규 과정 과목 수강이었습니다. 

미주리 대학의 IEP 프로그램은 원래 유학생들의 영어 교육을 목적으로 개설되었기 때문에 한국 기자들이 따라가기에는 벅찬 면이 있었다. 사진은 미국 한 대학의 IEP 프로그램의 사진(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IEP는 미주리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으로 한국 언론인들은 여기에서 먼저 6개월간 영어 듣기, 말하기, 쓰기 등을 공부해야 합니다. 앞 장에서 소개한 것처럼, 매일 6시간씩의 빡빡한 연속 강의에, 하루 건너 테스트가 있고, 매일 상당량의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에만 매달려 왔던 언론인들에게는 이 코스가 결코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IEP 때문에 죽겠다”는 소리가 연수 온 기자들 사이에서 절로 나오곤 했습니다.

또 이 코스를 마치면, 토플 시험을 쳐서 일정 점수 이상이 되어야 저널리즘 스쿨 과목 수강이 허락됩니다. 다행이 토플 점수가 높아 저널리즘 스쿨에서 과목을 수강하게 되면 이것 역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연수온 기자들은 대개 개인별로 관심 있는 과목 몇 개(국제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언론학 등)를 택해 듣는데, 강의 듣고, 리포트 내고, 시험 준비하느라 저마다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골프장은 그렇게 공부에 지친 한국 언론인들에게 유일한 휴식처였습니다. (9)-5 나의 조국 한국과의 인연에서 계속.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