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잎 한 장만 가져갈께,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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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잎 한 장만 가져갈께, 고마워"
  • 취재기자 최서영
  • 승인 2013.06.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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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장전동 숲 유치원... 자연 속에서 동심 키운다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에 위치한 부산대학교 부설 어린이집에서는 13명의 아이들이 두 명씩 손을 잡고 산으로 올라가려고 기다리고 있다. 오전 10시면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아이들이 왜 산으로 갈까? 바로 유치원이 이 아이들의 산이고, 숲이기 때문이다.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은 부산에서 처음 생긴 숲유치원이다. 숲유치원이란 매일 숲으로 가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어울리면서 노는 유치원이다. 드디어 아이들이 산으로 가기 위해 어린이집을 나서자, 하정연 원장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배웅한다.

▲ 숲유치원 아이들이 금정산으로 올라가고 있다(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하 원장은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아토피, 비만,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등 몸도 마음도 다 아프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 자연의 대명사 숲을 주면 될 것 같았다”며 숲유치원 창립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놀 시간이 없다. 우리 어릴 땐 뒷산에 가서 노는 게 다였어도 몸 어디 하나 아픈 일이 없었고, 늘 즐거웠다. 우리 사회는 계속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만 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없다”고 소신을 밝혔다.

매일 숲에 가는 어울림숲반 아이들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 내내 선생님에게 질문한다. “선생님 이거 딱정벌레 맞죠?”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관찰하기 바쁘다. 누구 하나 벌레라고 질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서로 만져보고 싶어 안달을 낸다. 아이들은 나뭇잎이나 열매를 하나 딸 때마다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아카시아 나무야, 잎 하나만 가져갈께. 고마워.”

아이들의 교실인 금정산 초입길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은 익숙한지 앞장서 뛰어 올라간다. 어울림숲반 담임 선생님 박현정(35) 씨는 처음엔 아이들이 힘들어서 못 올라가겠다고 많이 울었단다. “처음 산에 올라갈 땐 힘들어서 코피까지 쏟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른들보다 잘 올라가요. 아이들이 숲유치원에 와 제일 먼저 바뀐 것이 체력이죠”라며 이젠 아이들을 따라가기도 벅차다고 했다.

▲ 아이들이 직접 만든 아지트 간판(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한참을 올라갔을까? 드디어 어울림숲반 아이들의 아지트가 보인다. 아이들은 재빨리 가방을 내려놓곤 제각각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줄에 매달려 타잔놀이도 하고, 땅을 파서 지렁이도 잡고, 나뭇가지에 사포질을 해 칼을 만들어 칼싸움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개구쟁이처럼 뛰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딱딱한 흙바닥에 넘어져 아플만도 한데, 넘어진 아이들은 울지 않고 씩씩하게 바지를 털곤 다시 뛰어간다. 박 씨는 “이제 넘어져도 울지도 않는다. 어리광이 많이 줄었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 아이들은 숲속에 흩어져 각자 하고 싶은 놀이를 하고 자연스럽게 즐기고 있다(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제각각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다같이 모여 술래잡기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게 노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이들만의 규칙을 지켰다. 어울림숲반엔 5세부터 7세까지의 어린이들이 있는데 5, 6세 아이들은 잡혀도 술래가 되지 않는다. 달리기가 느린 동생들을 배려하는 규칙이란다. 이처럼 7세 형님들은 5, 6세 아우들이 넘어질까 손도 잡아주고, 넘어지면 일으켜주는 등 끊임없이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 씨는 “요즘 아이들이 그렇듯 여기 아이들 대부분도 외동이라 처음엔 형, 동생 개념이 없었어요. 다들 자기가 왕자님이고, 공주님이었죠. 그러다 숲유치원에 들어와 처음 형, 동생하면서 아이들끼리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규칙을 만들어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게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요”라고 말했다.

▲ 아이들이 모여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다(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오후 12시. 실컷 뛰어 놀다보니 배가 고파진 아이들은 빨리 밥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박 씨는 재빨리 아이들에게 밥을 나눠주면서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말해줬다. “아이들이 숲유치원에 와서 바뀐 게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보다시피 아이들이 반찬투정도 없이 밥도 잘 먹고, 자립심도 생겼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렇게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뛰노는 모습을 보면 숲유치원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박 씨는 3년 전 일반 어린이집에 근무했지만 아이들도, 자기도 행복하지 않아 진정한 교육이 뭔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숲유치원을 보고 반해 숲유치원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숲에서 놀고, 어린이집에 와서도 계속 노는 아이들 얼굴이 너무 행복해보였어요. 제가 늘 꿈꾸던 어린이집 모습이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다시 일반 유치원으로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애들이랑 노는 재미를 알아버렸어요”라며 “다시 일반 어린이집으로 돌아가긴 어렵지 않을까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어울림숲반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있다(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오후 3시가 되자, 산에서 내려온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상에 앉는다. 공부하나 싶었는데, 다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기 숲유치원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는다. 박 씨는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신기하게 숲에서 놀다오면 알아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보면서 조용한 놀이를 찾더라고요”라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 아이들이 직접 산에서 본 것을 그린 그림 중 하나(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하 원장은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학부모들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우리 숲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엄마들은 하루종일 놀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공부를 못 따라갈까 걱정하지 않아요”라며 “숲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른 아이들보다 집중력도 더 높고 학교 생활에 더 적응을 잘해요. 숲유치원에 다닌 아이들 모두 그렇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어요”라며 “아이들이 원없이 놀고 나서 공부를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놀고 있다(사진: 최서영 취재기자).

어느새 어두워진 오후 5시, 아이들은 어린이집 놀이터로 나와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님들과 함께 뛰어논다. 하나둘씩 부모님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에게 인사해주던 박 씨는 “보다시피 숲 유치원은 선생님들과 부모님, 아이들의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곳”이라며 “숲유치원 덕분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두 행복해졌다”고 미소를 지었다.

부산시 중구에 사는 김정숙(37) 씨는 공부를 위해 5세 아들을 숲 유치원에 보낼 생각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지금밖에 할 수 없는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엄마들이 많은데 숲유치원의 인기만 봐도 알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녀는 “숲유치원이 많이 없어 대기자가 많아 입학이 어렵고, 대안 유치원이라 보육비 지원이 안됩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숲유치원 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숲유치원은 총 59곳으로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에만 대기자가 5000여명이 넘는다.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들을 지켜보던 하 원장에게 숲유치원의 미래를 물어보니 “숲 유치원은 시대적 과제”라며 “아이들이 뛰어 놀아야 아이들이 행복해집니다. 아마 계속해서 숲유치원은 생겨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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