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칠 줄 모르는 블랙리스트 1심 판결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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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칠 줄 모르는 블랙리스트 1심 판결 후폭풍
  • 논설주간 강성보
  • 승인 2017.08.02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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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강성보
논설주간 강성보

'블랙리스트’의 기원은 17세기 영국 청교도 혁명 당시 잉글랜드 왕 찰스 2세가 자신의 아버지 찰스 1세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관 58명의 명단을 작성한데서 유래됐다. 그 명단에 죽음을 뜻하는 검은색 커버를 덮어 블랙리스트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리스트에 올려진 58명의 재판관은 찰스 2세의 혹독한 보복 조치 아래 처형되거나 죽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뒷길,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직동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약간 고풍스런 아담한 교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110여년 역사를 가진 대한 감리교 ‘종교교회’다.

대부분 행인들은 그냥 스쳐지나가지만 일부 외지 사람들은 간판을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어? 교회면 당연히 종교 시설일텐데 왜 이름이 종교인가? ‘역전 앞’ 같은 동의반복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하지만 이 교회 이름 ‘종교’는 영어로 ‘religion’을 뜻하는 종교(宗敎)가 아니다. 한자로 표기하면 ‘琮橋’라 쓴다. 지금은 모두 복개됐지만 옛날 이곳에는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천이 있었고, 그 개천 위에 놓였던 다리 이름이 종교(琮橋)였다. 종교교회는 다시 말하면 광화문교회, 명동교회, 판교교회처럼 지명에서 연유된 고유명사인 것이다.

서울시 종로구 도렴동에 위치한 종교교회(사진: 종교교회 홈페이지 캡처).

원래는 종침교(琮琛橋)였다. 이곳 다리가 종침교로 불리게 된 데는 역사적 사연이 있다.

조선 성종 10년(1479년), 성종 임금은 질투가 심한 왕비 윤 씨를 폐하고 그 이듬해 사형에 처한다. 대표적인 조선의 궁중 비극중 하나인 이른바 폐비 윤 씨 사건이다. 이 왕비에게 사약을 내릴 것인가 여부를 논의하는 긴급 어전회의가 소집됐을 때 당시 의금부도사(지금 경찰총장) 허종(許琮)과 형방승지(법무장관) 허침(許琛)형제는 고민에 빠진다. “다음 임금은 폐비 윤 씨의 소생인 왕세자 연산군이 될 게 뻔한데 이번 어전회의에 참석했다가 나중에 보복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는 평소 학식이 깊고 명석한 사리판단으로 주위의 높은 평판을 받고 있던 누님(백세부인)에게 사람을 보내 자문을 구한다. 그때 백세부인이 아이디어를 내는데, “어전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고의 낙마 사고를 내라”는 것이었다. 형제는 누님의 충고대로 대궐로 가는 도중 바로 이 종침교에서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팔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을 이유로 이들 형제는 폐비 윤 씨 처형을 안건으로 한 어전회의에 불참했고, 6년 뒤 연산군이 옥좌에 올라 당시 어전회의에 참석한 모든 대신들을 처단하는 갑자사화를 일으켰을 때,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허종, 허침 형제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이 다리를 허씨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라 이름 붙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종교’로 바뀌었다.

연산군이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이한 생모의 복수를 위해 작성한 폐비 윤 씨 처형 어전회의 참석자 명단도 조선판 블랙리스트라 할 수 있다. 그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대신 각료들 중 생존자는 대부분 처형당했고, 이미 사망한 사람은 관을 파헤친 뒤 시체의 목을 자르는 부관참시까지 당했으며, 그 유족들도 엄청난 고통을 겼었다.

원래 블랙리스트는 이처럼 작성자의 서릿발 원한이 서린 죽음과 공포의 리스트인 것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판결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피의자들에게 선고된 형량이 그들의 ‘죄질’에 비해 턱없이 가볍다는 사실에 여론이 들끓고 있으며, 민변 등 재야 법조인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인들과 여권 인사들도 잇달아 불복 성명을 내는 등 재판부에 대해 강력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특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부 장관 등 피의자 7명 전원에 대해 항소했고,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련한 사실 관계를 재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 즉각 활동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사실 재판부의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이번 판결에는 뭔가 수긍이 안 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의 위법성은 인정하면서도 리스트 작성의 지휘 계통에 있는 조 전 장관에 대해 이부분 무죄로 판정하고, 국회 위증죄만 물은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다. 재판관은 일부 조 전 장관 부하 직원들의 법정 진술을 근거로 조 전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일부 법조인들은 재판관이 그 부하 직원들의 특검 진술 내용(조 전 장관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다고 진술)을 편의적으로, 일방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고 있다. 판단 착오, 혹은 편향된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더욱이 이 판결의 주심 판사는 최순실 국정 농단에 항의에 검찰청사 앞에서 포크레인 시위를 벌인 40대 남성에게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무엇이 정의인지, 국민 정서가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그 판사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한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찰스 2세가 작성한 명단이 블랙리스트라면,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쉰들러 리스트는 화이트리스트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쉰들러(리암 니슨 扮)의 지시에 의해 죽음의 나치 수용소행을 면하는 유대인 명단 작성 작업을 한 유대인 서기(벤 킹슬리 扮)는 이렇게 말한다. “이 리스트 종이의 하얀 여백은 여기 이름이 적힌 사람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천사의 방벽입니다.”

이번 블랙리스트 1심 재판 판결문의 여백 역시 피고인들에겐 장기 감옥 생활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천사의 방벽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항소심 재판 판결문에서 그 리스트의 여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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