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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에서 북한 ICBM까지…‘E=mc²’이 몰고 온 재앙자투리 시사인문④ 핵무기의 국제정치학 / 편집국장 강동수

1.

홀쭉이와 뚱뚱이.

왕년에 양훈, 양석천이란 두 코미디언이 짝를 이룬 ‘홀쭉이와 뚱뚱이’란 추억의 명콤비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인류 최초로 투하된 핵폭탄의 이름이기도 한 걸 아시는가. ‘홀쭉이(little boy)’는 긴 관의 양 끝에 우라늄 235를 분리해 넣은 것으로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투하돼 14만 명의 목숨을 앗았다. 속이 빈 공 모양의 ‘뚱뚱이(fat man)’는 사흘 후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져 7만 명을 죽였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패트 맨의 폭발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어쨌거나 오늘날 인류가 핵무기의 위협에 전전긍긍하게 된 건 두 사람의 원죄(?) 때문이다. 신화적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상대성이론이야말로 핵무기의 이론적 기초가 됐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년 전 퇴역했지만 미해군의 핵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의 갑판에는 커다란 글씨로 ‘E=mc²’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인슈타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나치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아인슈타인은 1939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권하는 편지를 썼던 거다. 히틀러의 움직임이 심상찮으니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 이래서 1941년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이 시작됐다. 책임자는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인 당년 37세의 오펜하이머였다.

오펜하이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맨해튼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 부문에서 진행됐다. 하나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핵분열 물질을 추출하거나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만들어진 핵분열 물질을 가지고 폭탄을 제조하는 것. 핵 분열 물질로 폭탄을 제조하는 일은 뉴멕시코 주의 사막에 있는 로스앨러모스라는 곳에 세워진 비밀 연구소에서 수행됐다. 오펜하이머는 1942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소장으로 핵폭탄 제조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일본 두 도시의 참상을 지켜본 이들은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기가 만들어 낸 이론과 자신이 수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실제로 수십 만 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 이후 아인슈타인은 핵 위협으로부터 세계를 보호할 세계 정부 수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오펜하이머도 자신이 만든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목도하고는 반핵주의자가 됐다. 오죽했으면 트루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내 손엔 피가 묻어 있다”고 했을까. 트루먼은 “그 얼간이를 다시는 백악관에 부르지 말라”고 노발대발했다고. 2차 대전 후 오펜하이머는 더 이상 전쟁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거부했다. 미국 정부가 추진하던 수소폭탄 계획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래서 그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과거의 삶이 낱낱이 드러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비밀에 접근할 권한이 필요한 모든 공직도 박탈당했다. 그의 개인사야말로 20세기 과학과 정치의 굴곡진 관계를 극명하게 반영한 작은 역사였던 셈.

 

2.

1945년 8월 9일 아침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 테니안 기지를 출발한 원폭 탑재기 B29 복스카(Bockscar) 호는 제1공격목표인 북 규슈의 공업지대인 고쿠라시 상공에 도착했다. 그러나 구름으로 시계가 나빠 제2목표였던 나가사키로 방향을 틀었다. 복스카호는 구름 사이로 미쓰비시의 나카사키 병기제작소가 있는 거대한 공장지대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도 3만피트 상공에서 ‘패트 맨’을 투하했다. 오전 11시 2분 패트 맨은 상공 500m에서 하늘을 찢는 듯 한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조종사의 순간적인 상황 판단으로 고쿠라시의 시민들은 목숨을 건진 반면, 나가사키 시민이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을 맞은 것.

나는 10년 전쯤 원폭 피해자를 추도하는 나가사키의 평화공원에 들른 적이 있다. 푸른 잔디밭이 널찍하게 깔린 평화공원은 일견 아름다웠지만 곳곳에 1945년 여름의 참상을 되새기는 조형물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평화의 샘(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평화의 샘 (平和の泉)’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날갯짓을 형상화시킨 분수대인데 피폭으로 인해 심한 갈증 속에 “물을…물을…”하고 신음하며 죽어갔던 당시 원폭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에서 기부금을 모아 건립했다고 한다. 분수대 전면부의 오석엔 당시 극심한 목마름을 경험했던 소녀의 말이 새겨져 있었다.

“목이 말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물에는 기름 같은 것이 전면에 퍼져 있습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물이 마시고 싶어서 마침내는 기름이 떠 있는 채로 마셨습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의 평화기념상(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조각가 키타무라 세이보의 평화기념상도 있다. 높이 10m 규모의 남신상인데 하늘을 가리킨 오른손은 원폭의 무서움을 나타내고 수평으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의미하며, 온화한 표정은 절대신의 가호를, 그리고 살짝 감은 눈꺼풀은 전쟁 피해자의 명복을 빌고 있는 형상이라고 들었다. 이 나가사키 원폭 폭심지공원 한 켠에는 ‘원폭 한국인 희생자 추모비’도 있다. 이 곳 나가사키로 끌려와 강제노동을 하던, 2만여 명의 한국인이 피폭했고, 그 중 1만 명이 죽었다.

글쎄,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세계 평화를 위협했고, 한국, 중국 등 인접국에 숱한 악행을 저지른 일본 제국주의의 자업자득이라고도 하겠으나, 역시 피해자는 힘없는 백성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핵무기의 비정함은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다. 그 참상을 고발하는 현장이 나가사키 평화공원이다.

 

3.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진실’은 무엇인가? 핵 학살이었는가, 조기 종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는가. 민간인에 대한 원폭 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가, 아닌가.

지난 70여 년간 세계인은 일본 원폭 투하가 조기 종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미국의 주장을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이는 군사적으로 불필요한 조치였고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2017년 7월 25일자 '프레시안'의 ‘히로시마, 인류 최초의 핵 홀로코스트’ 제하 기사에 따르면, 미 정부 기관인 핵통제위원회(NRC)의 공식 역사가로, 온건 성향의 제도권 학자인 새뮤얼 워커는 “미국은 수십만 미군 병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원폭을 투하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1945년 11월로 예정됐던 규슈 상륙, 46년 3월의 혼슈 상륙 작전에서 예상되는 미군 희생자는 2만 5000~4만 1000명, 아무리 많이 잡아야 5만 명 이하였다는 것. 반면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은 일본 상륙 작전으로 미군 병사 50만~100만 명의 희생이 예상됐다고 주장했다. 엄청나게 부풀려진 수치인 셈. 그 과장된 예측을 기초로 민간인 21만여 명이 한 순간에 생명을 잃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굳이 일본에 핵공격을 감행했을까.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진정한 속내는 또 다른 승전국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였다는 게 연구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우리가 핵무기를 가졌으니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갈 세계 질서에 따르라는 공갈(?)이었다는 것. 트루먼 등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원폭은 포커판의 조커랄까, 혹은 아서 왕의 신검 ‘엑스칼리버’였던 거다. 거칠게 말하면 동네 깡패 형님이 이웃 동네에서 온 조무라기에게 양말에 숨긴 잭나이프를 슬쩍 보여주면서 “이 동네는 내 구역이니 꺼져”하는 식이랄까.

2차 대전 후 미국의 목표는 세계를 미국 주도의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어내는 것이었다.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 복원, 즉 세계 전체를 미국의 투자 및 수출 시장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전쟁 직후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했고, 절대 무기인 핵무기까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라는 카드를 꺼내 보임으로써 패권 다툼의 잠재적 경쟁자였던 소련에 대해 무력 시위를 했다는 거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던 것도 원폭 덕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재래식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한다 하더라도 핵무기로 격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지상군을 빼내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군사적 일방주의는 2003년 부시의 이라크 침공 때 시작된 게 아니라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시작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60년대까지 미국은 압도적 핵 우위를 바탕으로 소련을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켜 왔다. 1962년 흐루쇼프가 미국의 턱밑,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압도적 핵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미국은 독일과 이탈리아, 터키 등 소련의 주변에 핵무기를 배치해놓은 반면, 소련은 자국 영토 외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해외 기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루쇼프의 시도는 실패했고 2년 후 권좌에서 밀려났다. 이후 소련은 대대적인 핵 군비 증강에 나섰고 1970년대 중반에야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는 거다. 그 과정에서 미‧소의 핵탄두는 한때 무려 7만 개 가까이에 이르렀다. 지구를 무려 수백 번 절멸시킬 수 있는 살상력이 아닌가.

 

4.

‘핵에 의한 평화’라는 논리가 있다. 이른바 '억제 이론(deterrence theory)'이라는 거다.

미국은 핵무기가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주장을 펴 왔다. 핵전쟁이 초래할 무시무시한 인명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서로 간에 아니까 전쟁을 피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때문에 대규모 전쟁을 벌일 수 없다는 것. 그 근거로 20세기 전반 전쟁에 의한 사망자가 1억 명이었던 데 비해 (핵시대가 도래한) 20세기 후반의 전사자는 2000만 명에 불과(?)했다는 통계 수치도 내세운다.

그런데 그게 진실일까. 핵 억제 이론은 미국이 내세운 일방적 주장일 뿐 핵무기는 미국의 세계 지배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미국의 평화 운동가 조셉 거슨은 <제국과 폭탄: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란 책에서 핵무기는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1945년 이래 미국의 핵무기는 다섯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첫째, 실제 전투용.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핵공격이 현재로선 유일한 사례다. 둘째, 핵무기로 미국은 적과 동맹국들을 암묵적으로 위협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 셋째, 선제 핵공격 위협을 통해 상대를 위협함으로써 미국에 유리한 조건의 협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데도 유용하다. 넷째, 미국의 재래식 병력을 '의미 있는 군사 및 정치적 도구'로 만드는 최후 보루이기도 하다. 다섯째, '억제' 수단의 용도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군사 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억제'란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미국에 의해 체제 존속을 위협받는 나라가 기를 쓰고 핵개발을 강행하려고 하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미국 등 오늘날 이미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이 후발국의 핵개발을 극력 저지하고 있지만 경쟁이 진정되는 기미는 없다. 하기야 자기들은 멋대로 개발하면서 약한 나라엔 으름장을 놓으니 고분고분할 리 없는 거다. ‘내로남불’이랄까, 내가 하는 핵개발은 로맨스, 네가 하는 핵개발은 불륜이라는 식이다. 상황이 이러니 미국에 미운 털이 박힌 나라는 미국에 의한 군사적 위협을 막기 위해선 핵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인도, 파키스탄 등은 미국의 견제를 뚫고 핵무기 보유에 성공한 나라다. 중도 포기했지만 이란도 최근까지 핵개발에 나서지 않았던가.

하고 보면, 2004년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극소량이긴 하지만 우라늄과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했다고 해서 미국이 난리를 친 적이 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에 나서고 우리 정부가 재발 방지를 다짐한 끝에야 사태가 해결된 거다. 하기야, 박정희 시대 우리나라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군 고위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신에게 “핵무기 개발이 95% 달성됐다”고 말했다는 것. 물론 미국의 개입으로 좌절됐는데, 그 무렵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암살에 미국 CIA가 개입했는데, 그 이유는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서였다”라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음모론도 시중에 나돌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 비대칭성 때문에 일단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아무도 감히 건드릴 나라가 없게 되는 게 바로 핵무기의 매력이 아니던가. 북한이 핵개발의 유혹을 느낀 것도 핵무기가 가진 국제정치학적 성격 때문이 아니겠나.

 

5.

어쨌거나, 핵무기 보유국들은 자신들이 핵과 같은 압도적 위력의 무기를 갖고 있어야 세계가 평화로워진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소수의 ‘깡패 국가’들이 까불지 못한다는 거다. 북한 같은 불량 국가가 핵을 가지고 불장난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결코 안 된다는 거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한 나라가 새 핵무기를 개발하면 다른 나라도 반드시 더 위력이 센 걸 개발하게 돼 있다. ‘일단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써먹게 된다’는 것도 만고의 진리다.

미사일 발사 장면(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북한은 핵무기란 패를 결코 쉽게 내던지지는 않을 거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북한이 ICBM 개발을 완료하고, 수소폭탄까지 개발해 실전 배치하는 단계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가만있을 수는 없게 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일본도 핵개발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게 핵 도미노 현상이란 거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팍스 아메리카나’, 혹은 ‘팍스 누클리어’ 라고나 할까, 미국이 핵 지배를 통한 세계 지배 체제를 유지시키는 걸 용인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미국은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지금처럼 갈팡질팡해선 안 된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강력한 수단을 찾아내든지, 그게 안 된다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큰 스케일의 타결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게 아닌가. 미국과 국제사회가 제재로 갈수록 북한의 피해와 고립 의식을 더욱 강화시켜 생존 수단으로서의 핵무기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는 역설도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놓고 북한과 협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우리 정부로선 한국 주도의 해법을 마련해 북한과 미국의 동의를 구해내고 국내 여론도 설득해야 한다. 힘든 노정이겠지만 그게 문재인 정권의 몫이 아닐까.

 

6.

다시, 핵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잠꼬대 같은 생각 한 토막. 순진한 상상이지만 강대국이 핵개발에 들인 돈을 인류의 공영에 썼다면 지구촌이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활인행(活人行) 아닌 살인행(殺人行)에 그 엄청난 지구 자원을 낭비하고, 그리하여 제가 놓은 덫에 제가 빠져 전전긍긍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가 아닌가.

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 한 대목. "범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것만큼 많겠느냐.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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