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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웃 ‘퀴어’...이젠 성소수자를 정서적으로 공감할 때자투리시사인문③ 퀴어(queer) 축제 / 편집국장 강동수

1.

지난 1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색다른 축제가 열렸다. 성소수자들의 축제 ‘퀴어문화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올해로 18회째를 맞은 이 축제의 슬로건은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지난해 구호가 ‘퀴어 아이 엠(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인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도전적이랄까, 미래지향적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주최 측 추산으로 7만 명(경찰 추산 9000명)이란 역대 최다 인원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이 그 동안은 주로 10대, 20대 젊은 층이었다면, 올해는 30대 이상이 적지 않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부모들도 있었다는 보도다. 행사장인 서울광장에는 미국·영국·호주 등 13개국 대사관과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 인권 재단 사람·성소수자 부모 모임 등 인권 단체가 마련한 총 101개 부스가 설치됐다. 또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무지개예수 등 진보 성향 개신교 단체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종교계 부스도 눈에 띄었다는 전언이다.

원내 정당의 대표로서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참석했고,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인권위원회도 참석했다. 축제의 끝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와 종로, 한국은행 앞 등을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퍼레이드로 마무리 됐다. 하고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제18회 퀴어문화축제 포스터

2.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개인적인 사소한 경험담부터.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다. 그때 일간 신문사의 기자였던 나는 출입처 동료 기자들과 함께 캐나다와 미국 서부 일대를 돌아본 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들렀을 때다. 햇볕도 가릴 겸 운동 모자가 필요했던 나는 쇼핑몰에 들러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의 모자를 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러 색깔의 천이 잇대진 그 모자가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했다.

내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뭔가 낯선 느낌을 받은 것은 사흘째였다. 지나치는 현지 주민들이 내 모자를 슬쩍 보고는 다시 내 얼굴을 유심히 훑어보는 것이었다. 어떤 흑인 청년은 내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며 씩 웃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때야 나는 내 차림에서 그들의 시선을 끌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지개빛 모자가 사단(?)이었다는 것은 동행했던 현지 가이드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알아낸 것이었다.

내가 쓴 모자의 무지개 빛깔이 바로 동성애자의 표지라는 것을 과문했던 나는 몰랐던 거다. 하고 보니 어떤 거리엔 아파트 창문이니, 가게에 무지개 깃발들이 유난히 많이 걸려 있었던 것도 기억났다. 그러니 동성애자도 아니면서 동성애자임을 만천하에 ‘커밍아웃’한 셈이 됐던 거다. 당혹스러워져서 그 모자를 바로 벗었지만 나로선 그게 ‘퀴어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최초의 계기라면 계기였던 것. 글쎄,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는 건 동성애자들의 권리 운동의 하나라는 가이드의 부연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만 해도 동성애는 감추어야 할 그 무엇이라는 한국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던 나로선 그 깃발의 의미가 잘 납득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성소수자들이 무지개를 자신들의 상징물로 삼은 것은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로 불리는 그들 삶의 다양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 무지개 깃발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78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에서였다고 한다. 길버트 베이커란 디자이너가 주디 갈란드의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고 한다. 주디 갈란다는 게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길버트 베이커가 처음 깃발을 만들었을 때는 지금과는 달리 빨강ㆍ주황ㆍ노랑ㆍ초록ㆍ파랑ㆍ남색ㆍ보라의 7색에 핑크를 더한 8색이었다. 핑크는 성지향(sexuality), 빨강은 삶, 주황은 치유, 노란색은 햇빛, 초록색은 자연, 청록색은 마법과 예술, 남색은 평온과 화합, 보라색은 정신을 각각 상징하는 것. 1978년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퍼레이드에서 암살된 하비 밀크란 동성애자를 기리기 위해 무지개 깃발은 미국 전역에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깃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대량 생산이 어려운 핑크색이 무지개에서 빠지게 됐다. 그리고 다시 남색이 빠져 지금은 6가지 색으로 깃발이 구성된다고 한다.

무지개 깃발은 동성애 문화만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시작을 전후해 전 세계에서 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하고 보면, 성소수자 운동은 평화 운동이기도 하다는 걸 그 깃발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화된 퀴어 축제의 한 모습(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3.

성소수자를 뜻하는 퀴어(QUEER)란 단어는 원래 ‘이상한’, ‘색다른’란 뜻이었다. 영어권에서는 위조술과 남성 동성애란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원래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했지만 성소수자 스스로 자신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받아들임으로써 지금은 부정적인 의미가 퇴색됐다고 하겠다.

동성애는 동성의 상대에게서 감정적·사회적·성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동성애자는 이러한 감정을 그 자체로 받아들여 자기 정체성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대개 여성 동성애자는 레즈비언(lesbian)으로, 남성 동성애자는 게이(gay)로 지칭된다. 흔히 트랜스젠더(transgender)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그 개념은 전연 다르다.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동성애자는 자신의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은 일치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것을 커밍아웃(coming out)이라 하며 타인에 의해 강제로 성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을 아우팅(outing)이라고 하는 것은 다들 아는 바다.

동성애의 원인을 밝히려는 연구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동성애가 호르몬의 부조화나 성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등 생물학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이론도 있다. 프로이트처럼 동성애를 성 심리의 발달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의 결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동성애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정체성의 문제라는 거다.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니까 동성애자를 죄악시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동성애자들은 이런 개념 규정을 탐탁해하지 않는다. 동성애를 생물학적 요인에서 찾는 것은 동성애가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놓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생물학적 장애인이란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되며, 동성애 자체가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그리고 성적 다양성의 한 갈래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신의학협회가 동성애를 정신 질환의 일종으로 간주하다가 1973년 정신 질환의 목록에서 삭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직은 많은 논란이 있지만,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성적 취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 동성애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사고의 진보성을 재는 잣대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의 인정 투쟁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치는 동성애자를 유대인보다 더 금기시했지 않았는가.

2차대전 당시 동성애자들은 나치로부터 사회악으로 규정돼 강제수용소에 잡혀 들어가 고문을 당하고 신체 실험의 대상이 됐다. 전두환의 삼청교육대 비슷한 대접을 받은 거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37~1938년 두 해 동안 수용소에 들어간 동성애자들은 2만 5000명이나 됐는데, 수용소에서도 최악의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다윗의 별’이란 노란색 육각형 별을 가슴에 패용해야 했지만, 그들은 ‘핑크트라이앵글’이란 핑크색 삼각형을 가슴에 매달아야 했다. 여자들은 검은 삼각형을 매달아야 했고. 중세의 ‘마녀’와 다름없이 여겨진 거다. 나치의 동성애자 탄압을 다룬 영화가 바로 <벤트>다. <브이 포 벤데타>란 영화도 있다.

어쨌거나 19세기 말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동성애자의 권리 운동이 정치 운동으로 떠오른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이다. 이제 동성애는 다양한 정체성의 하나로 용인받아 네덜란드·벨기에 등 몇몇 국가에서는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화됐다. 미국에선 200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이후 10여 개의 주에서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2015년 6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되는 등 세계적으로 동성애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기는 하다. 최근 정의당의 대표가 된 이정미 의원이 “한국을 대만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밝힌 마당이니 금석지감이다.

4.

그러나 정말로 성소수자에 대한 은근한 탄압과 차별의 시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성소수자를 가장 조직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집단은 한국에선 보수 개신교단이다. 그들은 동성애가 창조주의 섭리와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이단의 일탈 행위라고 단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올해 퀴어축제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는 같은 시간 서울광장 맞은 편 대한문 앞에서 동성애 반대 기도회를 열고, 퀴어축제 개최 측에 ‘죄악된 길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한 목사는 설교에서 “이처럼 음란하고 타락한,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죄악의 모습이 여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고 개탄했다고 한다.

보수 개신교단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는 물론 성경이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여러 구절이 있긴 하다. 이를 테면 레위기에 나오는 이런 구절들이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 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사랑과 용서를 설파하는 성경 말씀치고는 써늘하다. 이스라엘 고대 유목민의 생활 강령을 21세기 문명 사회에 자구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들이대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개신교도가 ‘호모포비아’는 아니다. 개신교인 중에서 동성애자 인권 운동에 참여하는 이도 적지 않다. 미국의 신학자 대니얼 헬미니악 신부는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에서 ‘성서는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어떠한 단정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룻기’에 나오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의 이야기는, 물론 정신적 사랑이긴 하지만 동성 간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다룬 이야기가 아닌가. 글쎄, 개인적인 소견이긴 하지만, 경전을 고식적으로 해석해 인간의 사랑을, 그것이 좀 특이한 방식이라고 해서 비난하고 탄압하는 것이 종교의 본령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룻과 오르바에게 모압 땅으로 돌아가도록 당부하는 나오미>(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5.

한국사회는 지금 성소수자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문화 충돌을 빚고 있다.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지난 대선 TV 토론의 한 장면이었다. 4월 25일 토론에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홍준표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군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습니까?” 문재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홍준표는 다시 묻는다. “그래서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이어지는 문재인의 대답. “반대하죠.” 이에 반발한 성소수자인권단체 회원들이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의 기자회견에 난입해 격렬한 항의를 한 터다.

이 사건(?)은 진보를 자처하는 유력 정치인조차도 동성애 문제에서만큼은 보수적 사고방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나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글쎄, 그게 어디 문재인 당시 후보의 문제이기만 하겠는가. 기성세대의 다수가 그럴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 이 글을 쓰는 나만 해도 그렇다. 내 머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부당한 짓이란 것을 인정하고 있고, 그들의 인권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가슴까지 그 사랑의 방식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아마 이게 우리 세대의 보편적 사고 체계일 터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근원적인 공감이 보편적으로 확산되려면 상당한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절규는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할 터이다.

아들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어느 엄마의 이야기다. “남편과 함께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를 보았다. 아들의 커밍아웃 후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정말 너무 놀랐다. 영화에 나오는 엄마는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들이 게이라고 하자 계속 ‘너는 달라질 수 있다’면서 기도하고 기도시키고 그런다. 그리고 결국 아들은 자살한다. 실화다. 아들이 죽은 후 이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한다. ‘내 아들을 지옥에 빠뜨린 건 바로 나였다’고. 내가 아들에게 뭔가 잘못된 것처럼 말했던 게 얼마나 큰 상처였을까(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6년 6월 24일자)."

우리나라에선 아직 성소수자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는 없다. 미국에선 2015년 성소수자 비율이 3.6%로 30명 중 1명꼴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긴 했다. 하지만, 좀 오래된 것이긴 해도 이런 통계는 우리 모두 가슴 깊이 담아둬야 하지 않을까.

2006년 한국청소년복지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들 가운데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77.4%이고, 실제로 '자살을 시도해 봤다'는 응답자 비율도 무려 47.4%에 이른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혼자 고민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 이 아이들 자신의 죄 때문일까. 

편집국장 강동수  reporter1@civic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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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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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현정 2017-08-15 09:07:27

    룻기의 나오미와 룻의 사랑은 가족간의 사랑이지 동성애가 아닙니다!!!기자선생님기사란 객관적사실을 쓰셔야 합니나!!
    너무도 편파적이고 주관적사실을 기사로 쓰시는것은ㅜㅜ
    기자의 본분이 아닐듯 합니다!!
    성소수자십니까?
    항문섹스를 합법화해달라는게 인권입니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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