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물질 해가꼬 아들 딸 다 키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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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없이 물질 해가꼬 아들 딸 다 키웠제"
  • 취재기자 윤다은
  • 승인 2013.06.0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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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오륙도 해녀 고이선 할머니의 어제, 오늘, 내일

고이선(76) 할머니는 새벽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시큰시큰 아려오는 무릎을 두드리며 오륙도로 가는 마을버스에 몸을 싣는다. 해녀일을 하기 위해서다. 오륙도에 얼마 남지 않은 해녀들 중에서도 최고령자이다. 물질을 해온 지 올해로 60년. 그녀가 해녀일을 시작한 것은 16세 때부터란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고 할머니는 해녀인 엄마를 따라 제주도 바다에서 해산물을 캐기 시작했고, 16세 때부터는 울산까지 물질을 하러 다녔다. 그녀는 "제주도는 섬이니께(섬이니까) 해산물이 풍부해서 해녀일을 해도 제대로 돈이 안됐제··. 그래가꼬 육지가 돈 많이 벌 수 있다 하니께(하니까). 3월달에 울산에 가가(가서) 그서(거기서) 잡아가꼬 팔고 해가, 8월달에 집에 오고 그랬제··"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 물질 중인 고이선 할머니(사진: 취재기자 윤다은).

그렇게 고 할머니는 원정으로 해녀일을 하다가 20세 때 결혼한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오게 됐다. 

고 할머니는 "그 때는 애려븐(어려운) 시절이니께 제주서는 보리쌀 놔가지고 밥해가꼬 먹고 그랬제. 없어가지고··. 그래했는데 부산에서는 쌀밥 먹을 수 있다고 하니께 냉큼 따라왔저게이(따라왔었지)"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남편 하나 믿고 따라온 부산이었지만, 생계가 어려웠다. 남편이 철도청에 다녔는데 임시직이라 봉급이 최저생활비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 후 얼마되지 않아, 남편은  철도청 일을 그만두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원양어선을 탔다. 그런데 사우디 아라비아까지 한 번 갔다 온 이후 배 일도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어 버렸다. 이런 백수 남편을 대신해 고 할머니는 생활 전선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물질. 그래서 부산에서의 해녀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엔 해운대에서 물질할라고 방 하나까지 얻었는데, 그곳 해녀들이 안 끼워 주더라고...자신들만해도 해녀들이 흘러 넘친다면서...  대신 거기서 소개해줬제. 용호동에 해녀가 몇 없다며 용호동에 가라고 해가(해서) 몇 안되는 살림들고 용호동으로 이사했다 아이가"라고 그녀는 말했다.

제주 출신이라 물질하면서 먹고 사는 일은 끄덕없었다고 한다. 자신과 아이 셋을 놓고 먼저 저승으로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할 법도 하지만, 고 할머니는 묵묵히 해녀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대학까지 보냈다. 그녀는 "남편이 일찍 죽고 혼자서 아이들 셋 키웠제. 아이들 돌봐줄 사람도 없어가꼬 두 놈은 손잡고 제일 어린 놈은 업어가꼬 물질하러 오고, 물에 들어갈 때는 큰 놈보고 동생들 잘 보라고 하고 갔다왔제. 큰 놈이 '엄마 나는 안 가믄 안되나' 이러니께 '이노므 새끼, 안 가면 동생은 누가 보노' 그래 가지고 억지로 데꼬 댕겼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해녀일 허면서 고단하고 힘든 점은 있었지만. 그래도 뭐 후회한 적은 없제. 그거 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도 대학 보내고 장가도 시집도 보냈다 아이가"라고 말했다. 후회는 없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쁜 해녀일로 아이들의 학교를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다고 한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로 나갔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아직도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 따 온 미역을 정리하는 고이선 해녀 할머니(사진: 취재기자 윤다은).

고 할머니는 매일 6시 40분 버스로 오륙도에 가서 준비를 하고 바다로 들어간다. 해녀 할머니에게는 비가 와서 물질을 못 하는 날이 휴일이고 그 외에는 매일 바다로 간다.

오전에는 2~3시간을 기본으로 고동, 미역, 군수 등을 포함한 해산물을 캔다. 그러고 오후에는 손님들을 맞이하며 오전에 딴 해산물들을 판다고 한다.

평일에는 찾아오는 손님수가 적기 때문에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서 물질을 하고, 주말에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가까운 바다에서 해산물을 캐고 나와서 파는데 주력한다고 한다. 오륙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일 뻔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 오륙도에 갈맷길이라는 산책로가 생겨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주말이면 포항이나 대구에서 단체로 관광버스로 오기 때문에, 덕분에 수입은 꽤 짭짤하단다.

▲ 캐온 해산물들을 팔고 있는 고이선 할머니(사진: 취재기자 윤다은).

그러나 나이가 76세인 할머니에게 해녀일이 이제는 슬슬 힘에 부친다. 그런 할머니를 딸이 도와주고 있다. 할머니가 해산물을 캐면 딸이 오륙도에서 좀 팔아주고 시장에 나가서 나머지들을 팔아준다.

그녀는 "물질을 더 하고 싶어도 인자 해봐야 한 1년 해질까. 우에(위의) 할매들 다 죽고 나가(내가) 제일 나이 많어··. 그래도 몸 아플 때까지는 계속 해야제"라고 말했다. 

그녀는 "오륙도에 인자 해녀가 딱 15명 있어. 새로 허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뭐, 제일 나이 어린 사람이 60이거든. 이제 와서 하겠다고 허는 사람도 없고, 하지도 안하고. 그걸로 끝이지 뭐"라며 해녀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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