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그리고 삼계탕의 약진과 보신탕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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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 그리고 삼계탕의 약진과 보신탕의 퇴장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7.07.1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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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12일 어제는 초복이었다. 요즘 직장에서는 초복에 보양 음식을 직장 동료들과 같이 하는 게 전통이 됐다. 직장인들이 이날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던 기나긴 대기 줄로 도심 오피스 타운 식당가는 점심 시간 내내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날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보양식은 무엇이었을까?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와 댓글에서는 단연 삼계탕이 으뜸이었다. 드물게 장어, 추어탕, 오리탕, 전복죽, 물회를 추천하는 글이 있었다. 그런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보신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88 올림픽을 전후해서 동물 애호 단체들로부터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았던 한국의 보신탕은 ‘문화적 상대주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후 영양탕, 멍멍탕 등으로 자신의 고유 이름을 숨겼고, 간판도 대로변에 내걸지 못한 채 골목을 전전하면서 소멸하고 있다.

세월이 변해, 개는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로 위상이 높아졌고, 대통령이 기르는 개를 부르는 ‘퍼스트 도그’란 단어도 생겨났다. 견공들은 ‘아가’ 내지는 ‘내 새끼’로 불리고, 견주는 ‘아빠’와 ‘엄마’로 자칭한다. 예전엔 이런 호칭에 대한 반감이 대단했지만, 요새는 많이 완화됐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반려동물이 생을 마감한 것을 이렇게 말한다) 장례를 치르는 전용 장례식장이 있고, 화장 후 정중히 모시는 전용 납골당도 있다. 이런 세상에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인육을 먹는 야만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20-30대 젊은 세대가 개고기를 식용으로 여길 가능성이 제로가 되어가고 있으며, 중장년층 중에도 일부 주당들이나 별미의 술안주로 어쩌다 한두 번 개고기를 찾고 있다.

한민족은 개고기 식용을 오랜 풍습으로 갖고 있었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소 한 마리는 사람 8, 9명 몫에 해당하는 쟁기질을 했으며, 한 마을에 소 한 마리만 있으면 마을 전체의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농업 국가인 조선시대에는 소나무 베기, 밀주 제조, 그리고 소의 도살을 3대 금지령으로 막았다고 한다. 맛있는 소고기를 먹으려면 장례 등을 이유로 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소의 도살은 살인죄와 같은 죄로 다스려졌다니, 단백질 고기 맛을 위한 대용으로 집집마다 기르던 개가 자연스럽게 선택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을 ‘문화’라고 한다. 사는 방식이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그래서 개의 보양식 임무가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음식 문화가 종교와 결합되면 좀처럼 바뀌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음식에 돼지고기 없음을 증명하는 ‘할랄 인증’까지 만들면서 돼지고기를 거부하는 아랍 풍습의 인류학적 해석은 간단하다. 돼지는 유독 습한 곳을 좋아한다. 돼지우리는 항상 질척거리고, 돼지는 그곳에서 뒹굴기를 좋아한다. 요즘 도시에 출몰하는 멧돼지를 추적하다보면, 멧돼지가 산속에서 진흙 목욕을 즐긴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건조한 사막 지대인 아랍에서 기르기 힘들고 구하기 어렵지만 맛은 끝내주는 돼지고기에 사람들 입맛이 들면, 아랍인은 돼지고기를 구하기 위해 돼지를 기르는 타민족을 침입해서 전쟁을 자주 하게 될 것이란 게 아랍 선조들의 우려였다. 그래서 돼지고기 금기라는 이슬람 율법이 탄생했다는 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해석이다. 돼지고기 금기는 평화를 원하는 이슬람 선조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만, 돼지고기를 수입할 수 있는 상황이 됐어도, 돼지고기 금기가 종교 율법과 결부되었기 때문에 쉽게 변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한 의사는 동물과 같이 생활하는 게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 좋다고 했다. 혼자 아니면 부부만 남게 된 노인들에게 반려동물은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고 대화 상대가 되어주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최근에는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노인들이 제법 많이 생겼다. 이제는 보신탕을 즐겼던 이 땅의 노인 세대마저도 개를 반려동물로 기르게 되면서 개고기를 먹을 사람들이 점차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부산의 구포 시장에는 아직도 20여개 개고기 점포가 남아 있고, 동물 보호 단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와 상점 폐쇄를 외친다고 한다. 상인들은 개 도축을 양성화해주든지 다른 생업으로 먹고 살게 해달라고 하소연한다는 시빅뉴스의 보도도 있었다. 구포 개시장은 어찌 되었건 거대한 문화의 변화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인 듯싶다. 수백 년을 풍미했던 초복 최고 보양식 개고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개고기를 먹었던 ‘그때를 아십니까?’란 TV 뉴스가 초복을 장식할 날도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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