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병의 인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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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병의 인과관계
  • 발행인 정태철
  • 승인 2017.07.0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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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인 정태철
발행인 정태철

온 나라가 한 어린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햄버거병으로 난리다. 그 아이는 햄버거를 먹고 난 후 신장이 망가지는 용혈성요독증후군, 일명 햄버거병에 걸린 것으로 병원이나 부모들은 확신하고 있다. 아이는 하루 10시간씩 신장 투석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부모는 아이에게 몸속에 든 벌레 한 마리만 잡으면 된다고 어린아이를 토닥이고 있고, 괴로운 아이는 “이 벌레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라고 자꾸 물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9월에 일어난 이 사고에 대해 부모가 맥도날드를 상대로 피해 보상 소송을 최근 제기했다. 햄버거 속의 소고기, 일명 패티 안에 일종의 장출혈성 대장균이 잘못된 조리 과정에서 아이의 몸에 살아서 침투하여 아이의 신장 기능을 망가트렸다는 게 피해자 측의 주장이다. 즉, 맥도날드가 햄버거 고기를 덜 익힌 게 '원인'이고, 그래서 생존한 균이 아이의 신장을 파괴했다는 게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들은 법정 공방의 핵심은 두 개 사안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폐암에 걸린 환자가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동일하다. 과연 담배를 많이 피웠다는 게 폐암의 원인일까? 여기서도 이 둘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게 소송의 핵심 쟁점이다.

인과관계 증명은 간단하지 않다. 우선,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상관관계는 두 개의 각각 별개인 현상이 양적으로 비례, 혹은 반비례의 관계를 갖는 것을 가리킨다. 국가적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분명히 흡연자 중에서 폐암 환자가 많다. 그래서 흡연을 많이 하면 폐암 발병 가능성이 증가한다. 두 개는 분명히 양적으로 비례의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되려면 먼저 상관관계는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상관관계가 있다고 다 인과관계가 되는 게 아니다. 왜 그럴까?

담배를 피우는 것이 폐암의 원인이란 게 맞으려면 담배 피우는 사람은 어느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흡연을 했느냐에 따라서 거의 예외 없이 폐암에 걸려야 한다. 최근 병원 신생아실 간호사가 결핵환자임이 발견되고 나서 병원을 거쳐 간 수십 명의 아이들이 결핵 관련 질환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 병원에 간 신생아인데도 결핵에 안 걸렸다면 그 환자 간호사와 접촉 정도나 빈도에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결핵균과 결핵 발병은 부정할 수 없는 인과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흡연과 폐암 간에는 분명히 상관관계는 있지만, 둘 사이에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의학적 매카니즘이 있어 보인다. 비흡연자들 중에도 폐암환자가 꽤 있기 때문이다. 폐암으로 죽은 율 브린너는 우리나라 이주일 씨처럼 죽기 전 TV 공공 광고에 출연해서 "Just don't smoke!"라고 애절하게 금연을 권했지만, 1996년에 100세로 타계한 미국의 코미디 전설 조지 번스는 90이 넘어서도 여전히 시가를 물고 TV에 출연하곤 했다. 담배갑 혐오 그림, 폐암 환자의 증언 광고로 아무리 겁을 줘도, 흡연자들이 금연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과학자가 아닌 그들도 흡연과 폐암 간의 상관관계는 수긍할지언정 인과관계는 믿지 못하겠다는 사실을 나름 위안 내지는 신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인과관계는 하나의 결과를 일으키는 단 하나의 원인을 찾는 게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 '실험'이다. 실험의 생명은 하나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른 원인이 될 만한 요소들의 개입을 차단하는 것이다. 과학 용어로는 이를 통제(control)이라 한다.

바이러스와 질병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개 동물실험, 임상실험, 역학조사 등을 통해서 확실한 질병의 단 하나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차단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 방법을 찾는다. 원인이 하나인줄 알고 그 원인을 차단했는데 또 그 질병이 또 발생했다면, 알아낸 그 하나의 원인에 의한 인과관계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위로 던진 사과는 중력이란 단 하나의 원인으로 땅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법칙'이란 게 결국은 단 하나의 인과관계가 밝혀진 연구 결과를 말한다. 상관관계는 여러 원인들의 복잡한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단순 상관관계 발견에 머물고 있는 연구 결과는 가설, 또는 이론이라고 부른다.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 등으로 무장한 자연과학은 그래서 알파고도 탄생시켰고 북한마저 ICBM을 쏘게 했다.

사회과학은 도처에 상관관계 현상들을 무수히 발견하고 있지만, 현상이 복잡하고, 동물실험 등을 할 수도 없어 확실한 하나의 원인에 의한 인과관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과학 자체가 복잡한 원인들의 상호작용 효과(일종의 시너지 효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돈과 행복은 상관관계가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돈이 단 하나의 원인이 되어 행복을 결정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재벌도 우울증에 빠질 수 있고, 돈 없는 부탄 사람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가 있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열연한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 ‘에린’은 법률 지식 하나 없이 각고의 노력 끝에 PG&E라는 가스회사가 유출한 중금속이 주변 주민들 다수를 암에 걸리게 했다는 '확실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서 거액의 보상금을 주민들에게 안겨준다.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였다. 옥시 사태도 그렇고 삼성전자 근로자의 백혈병 사태도 모두 인과관계 입증이 관건이었다.

이번 햄버거병 사태의 인과관계도 선명하게 밝혀져야 패스트푸드 점을 가도 좋을지, 학교 급식에 햄버거를 계속 넣어도 될지, 육회 비빔밥이나 피가 보이는(소위 rare) 스테이크를 먹어도 될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햄버거병의 ‘인과관계’가 속 시원히 증명되어 가여운 어린아이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그 놈의 벌레’가 어서 제거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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