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설치된 노상 입간판 철거 둘러싸고 부산시와 상인들 마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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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설치된 노상 입간판 철거 둘러싸고 부산시와 상인들 마찰
  • 취재기자 정인혜
  • 승인 2017.07.04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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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통행 불편 초래한다" 특별 단속...2층 이상 점포 둔 상인들, "유일한 홍보 수단까지 없애나" 반발 / 정인혜 기자

골목마다 늘어선 입간판으로 걸어 다니기조차 힘든 부산의 한 번화가. 가게에서 저마다 홍보를 위해 내놓은 입간판은 시민들의 발길을 가로막고 있다. 술집을 나선 취객들이 입간판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다. 가게 앞 입간판은 대부분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입간판은 보행자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사유지 벽면 1m 이내에만 설치할 수 있다. 높이는 1.2m 이하여야 하며, 전기나 조명 장치는 쓸 수 없다. 

이 같은 모든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관할 자치구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은 모두 불법이다. 문제는 거리 곳곳에 있는 거의 모든 입간판이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산시는 ‘광복로 옥외 광고물 정비 계획’을 통해 불법 입간판 단속 방침을 내걸었다. 부산시는 지난달 15일부터 지난달 말까지를 특별 단속 기간으로 정하고, 불법 설치된 입간판과 현수막 등의 집중 단속에 나섰다. 부산시는 해당 기간 적발된 불법 입간판에 대해 광고주와 제작 업체를 상대로 철거 명령과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대다수 시민들은 이 같은 정책에 환호하고 있다. 주부 박주연(30, 부산시 중구) 씨는 “길거리에 깔린 광고판 때문에 늘 정신이 없었는데, 이렇게 깨끗해지니 속이 다 후련한 기분”이라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깨끗한 도시 만들기 정책은 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옥외광고물 정비 계획 시행 이후 깨끗하게 치워진 도로 모습. 이전에는 불법 입간판이 즐비해있었다(사진: 취재기자 정인혜).

하지만 이 같은 정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2~3층에 매장을 둔 상인들이다. 이들은 입간판 철거 정책이 상인들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끼친다고 호소한다. 매장 위치상 입간판이 없으면 홍보 수단이 전무하다는 이유에서다.

부산 남포동에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A 씨는 입간판 단속 이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손님들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가게까지 올라올 텐데, 그게 없으니 2층에 뭐가 있는지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며 “돈만 많으면 1층 매장을 얻고 싶지만,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하나. 시에서 작정하고 서민들 죽이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고 가슴을 쳤다. 

식당을 운영하는 B 씨도 이 같은 의견에 공감했다. 그는 “경기가 어려워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광고를 할 수밖에 없는 상인들 마음은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며 “1층 점포만 놔두고 위층이나 안쪽에 위치한 가게들은 다 망하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수거된 입간판은 관할구에서 일정 기간 보관한 뒤 폐기 절차를 밟는다. 해당 기간 업주가 직접 찾아와 과태료를 지불하는 경우에는 다시 가져갈 수 있지만, 찾아가는 상인은 거의 없다. 과태료보다 입간판 제작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 C 씨는 상인들이 단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 단속 기간이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특별’ 단속 기간 아니냐”며 “다음 달만 되면 입간판들이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공무원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입간판을 수거당한 주변 상인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수거 자체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과태료 50만 원 내느니 5만 원 주고 새로 만들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심각하냐”고 콧방귀를 뀌었다.

부산시는 불법 입간판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자치구는 액수와 상관없이 단속과 동시에 과태료를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행정자치부(행자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행자부는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생활 불편 스마트폰 신고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불법 광고물을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행자부는 간판 관련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허가받은 광고물에 대해서는 표시 기간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주내용이다. 지금까지는 허가나 신고를 받은 입간판도 3년이 지나면 표시 기간 연장 신청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 광고물로 간주돼 최소 20만 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됐다. 

행자부 관계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옥외 광고물에 대해서는 완화 정책을 펼 것이지만, 시민들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불법 입간판 단속은) 어쩔 수 없다”며 “깨끗한 도시 조성을 위해 상인들이 협조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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