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방미 첫 일정 장진호 기념비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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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방미 첫 일정 장진호 기념비로 간 까닭은?
  • 취재기자 정혜리
  • 승인 2017.06.30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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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장진호 용사, 흥남 철수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 / 정혜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를 방미 첫 일정으로 잡은 배경이 화제가 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DC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첫 공식 일정으로 DC 인근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건립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호 전투는 미군 역사상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된 전투로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호에서 미 해병1사단이 북측 임시 수도인 강계 점령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중국군 12만 명에게 포위돼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16일 만에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전투다. 장진호 전투는 중공군의 함흥 지역 진입을 2주간 막아 흥남철수작전을 가능케했고, 그 결과 피란민 9만여 명이 남쪽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흥남철수작전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란민 중엔 저의 부모님도 계셨다”고 말했다. 장진호 전투 직후 연합군은 함경남도 흥남에 도착해 193척의 군함에 군인과 민간인을 태워 흥남을 탈출했다. 문 대통령의 부모와 누나 역시 빅토리 호를 타고 경남 거제로 이주했고 이후 장진호 전투 3년 뒤인 1953년 문 대통령이 태어났다.

문 대통령은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서, 저는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란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세계 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는 미 정부 인사 대표로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 등이 참석했고 장진호 전투에 이병으로 참전했던 스티븐 옴스테드 중장을 비롯해 흥남철수작전의 주역인 로버트 루니 제독(당시 빅토리아 메러디스 호 1등 항해사), 토머스 퍼거슨 대령(피란민 승선을 지시한 에드워드 알몬드 장관의 외손자), 미군 측에 피란민 승선을 설득한 고 현봉학 박사의 자녀인 헬렌 K 현 보울린 부부가 참석해 문 대통령을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장진호 기념비 헌화가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다양한 의견을 남기고 있다.

트위터 이용자 stc****는 “대통령님 장진호 연설 진짜 감동.. 그 전투를 통해 남쪽으로 온 피난민의 아들이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 정말 드라마가 따로 없어 ㅠㅠ”라고 글을 썼다. 네이버 회원 lcy4***는 “그 어떤 민주화 운동이나 독립군의 혈투보다 미군이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 9개사단 12만 대군의 포위망을 뚫고 피난민을 내려보낸 것 자체가 감동의 영화입니다. 얼마나 희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떼 쓰지 않고 알아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추모 연설 해주는 것에 눈물 흘릴 뿐입니다.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네이버 회원 aidd****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는 박근혜 정부 인사인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이 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반대 속에 설립을 추진한 사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헌화 기념사 전문]

존경하는 로버트 넬러 해병대 사령관님, 옴스테드 장군님을 비롯한 장진호 전투 참전 용사 여러분, 흥남철수작전 관계자와 유족 여러분, 특히 피난민 철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알몬드 장군님과 현봉학 박사님의 가족분들 모두 반갑습니다.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니 감회가 깊습니다. 꼭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곳에 드디어 왔습니다. 오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첫 해외 순방의 첫 일정을 이곳에서 시작하게 돼 더욱 뜻이 깊습니다.

67년 전인 1950년, 미 해병들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들이 한국전쟁에서 치렀던 가장 영웅적인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습니다. 장진호 용사들의 놀라운 투혼 덕분에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흥남철수작전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메러디스 빅토리 호에 오른 피난민 중에 저의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알몬드 장군의 명령을 받은 故 라루 선장은 단 한 명의 피난민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무기와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무려 1만 4,000명을 태우고 기뢰로 가득한 ‘죽음의 바다’를 건넌 자유와 인권의 항해는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완벽하게 성공했습니다.

1950년 12월 23일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남쪽 바다 거제도에 도착할 때까지 배 안에서 5명의 아기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이었습니다.

2년 후, 저는 빅토리 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을 세상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과 감사라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넘어서서, 저는 그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들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작전이 세계 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인 이유입니다.

제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항해 도중 12월 24일, 미군들이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한 알씩 나눠줬다고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비록 사탕 한 알이지만 그 참혹한 전쟁통에 그 많은 피난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나눠준 따뜻한 마음씨가 저는 늘 고마웠습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대한민국은 여러분과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감사와 존경의 기억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한미동맹은 그렇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습니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닙니다. 또한 한미동맹은 저의 삶이 그런 것처럼 양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미동맹은 더 위대하고 더 강한 동맹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장진호 용사와 후손 여러분! 67년 전, 자유와 인권을 향한 빅토리 호의 항해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 또한 기꺼이 그 길에 동참할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굳게 손잡고 가겠습니다. 위대한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서 북핵 폐기와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만, 메러디스 빅토리 호의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 변호사님의 인터뷰를 봤습니다. ‘죽기 전에 통일된 한반도를 꼭 보고 싶다’는 말씀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것은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한 그루 산사나무를 심습니다. 산사나무는 별칭이 윈터 킹(Winter King)입니다.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영웅적인 투혼을 발휘한 장진호 전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무처럼 한미동맹은 더욱 더 풍성한 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라는 크고 알찬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이 50여 분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다시 한 번 장진호 참전 용사와 흥남 철수 관계자, 그리고 유족 여러분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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