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현동 공동묘지 위 '돌산마을'이 사라진다...안동네 벽화 마을 철거 후 아파트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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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현동 공동묘지 위 '돌산마을'이 사라진다...안동네 벽화 마을 철거 후 아파트 건립
  • 취재기자 강주화
  • 승인 2017.06.23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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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문현동 꼭대기 지켜온 마을, 최근 관광객들 발길도 끊어져

무덤과 함께 사는 마을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놀랍게도 부산 문현동에 그런 마을이 있다. 전포동과 문현동의 경계에 있는 ‘안동네 벽화 마을’이다. 마을 건물마다 벽화 그림이 있어서 공식적 이름은 문현동 안동네 벽화 마을이지만 통상적으로 '돌산마을'이라 불린다. 이 마을은 공동묘지 위에 이뤄진 초유의 마을이다. 50년 이상 문현동 꼭대기를 굳건하게 지킨 이 마을이 올 연말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들어가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부산 문현동 안동네 벽화 마을(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부산 남구 10번 마을버스를 탄 뒤 전포 고개에서 내리면 된다. 마을에 도착하면 당황할 수 있다. 명색이 벽화 마을이지만 관광객을 찾아 볼 수 없어 조용하다. 마을 공원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네 어르신들 말고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마을 초입에서 만난 김복만(85) 할아버지는 “초반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왔었지. 그런데 지금은 도통 안 와”라며 씁쓸히 말했다.

250채 320여 세대가 사는 안동네 마을에는 80여 기의 무덤이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면 마을 골목, 집 뜰과 현관, 장독대 등에서 무덤을 쉽게 볼 수 있다. 1988년부터 안동네 마을에 산 우억남(84) 할머니는 “무덤은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있었어. 듣기로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 공동묘지 터라고 하더라고”라고 말했다. 마을 무덤이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우 할머니는 “한 개도 안 무서워”라며 “무서우면 이때까지 어떻게 살았겠나. 밤 12시에 돌아다녀도 아무렇지 않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돌산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덤들(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묘지들의 근원은 흐릿하지만, 공동묘지는 일제강점기부터 있었고, 마을은 1960-1970년대에 이뤄졌다. 처음에 마을에 온 사람들은 무허가로 묘지 옆에 지붕만 세운 판잣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안동네 마을에 살아온 한 할머니(83)는 “내가 이 마을에 처음 온 본토박이이야. 여기 오기 전에 감만동에 살았거든. (감만동 살 때) 어느 날은 남편이 친구 집에서 술 한 잔 먹고 집에 들어오니까 12시라. 밥을 못 먹었다고 해서 밥상 차려주려고 불을 켜려고 하니까 불이 안 켜져. 알고 보니 주인집에서 불을 내린 거라. 그 이튿날 남편이 얼마나 설움이 컸는지 바로 이 동네에 왔지. 와서 판자때기로 고깔 모양 집을 지었어”라고 회상했다. 할머니는 “여기 처음에 포장도 안돼서 댕기지도 못 했어. 여기가 살살 많이 좋아졌지. 상수도도 15년 전에 들어왔어”라고 덧붙였다.

안동네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사신 할머니(취재기자: 강주화).

50년 이상 조용했던 이 마을이 널리 알려진 것은 2008년 이후다. 2008년에 공공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주민들과 학생, 시민 등 자원 봉사자들이 3개월 간 47점의 벽화를 안동네 마을에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마을은 ‘2008년 대한민국 공공 디자인 대상 주거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벽화 마을 사업 후 안동네 마을에는 대학생 관광객, 심지어 외국인 관객들까지 붐볐다. 하지만 현재에는 관광객들의 흔적조차 볼 수 없다. 우억남 할머니는 “처음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와서 사진도 찍고 집도 구경했는데 요즘에는 안 와. 학생들이 많이 와서 할머니들 일도 도와주고 그랬지”라고 말했다.

문현동 안동네마을 벽화에 있는 문구(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문현동 안동네 마을 벽화(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년 전부터 재개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재개발이 안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할머니는 “우리는 안되는 게 좋지. 그래도 한다고 밀고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쫓겨 나가는 거지. 그래도 여기를 한 평생 살았으니 여기서 죽고 싶어”라고 말했다.

안동네 마을 팔구 경로당(사진: 취재기자: 강주화).

안동네 벽화 마을은 9-10월에 마을 주민과 보상 협의 후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시작된다. 동네주민들의 이주 후에 이곳엔 아파트가 들어선다. 부산 남구청 건축과 박기오 씨는 “안동네의 개발 계획은 2003년부터 있었다. 도로, 상하수도와 같은 정비 기반 시설이 전혀 없고 최근에 주민들 중 슬레이트와 관련해서 석면 환자들도 나와서 수 년 전부터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민원 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박 씨는 “행정 관청 입장에서는 민원 때문에 (이 사업을) 하는 게 아니고 법적으로 3분의 2이상 주민들의 동의로 인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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