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얼마든 축구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상태바
“여자도 얼마든 축구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 취재기자 김지현
  • 승인 2017.06.18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최초 여자 축구 동아리 ‘PNU레이디스’ 창단 주역 이세경 씨...직장도 프로 축구 프런트 / 김지현 기자

서울에는 한 대학에 서너 개가 있을 정도로 여자 축구 동아리가 활성화돼 있다. 그러나 부산에선 각 대학에 남자 축구 동아리는 많아도 여자 축구 동아리는 1-2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2014년 부산에도 최초로 대학에 여자 축구 동아리가 생겼다. 바로 부산대학교 여자 축구 동아리인 ‘PNU레이디스’다. 그 산파 역할을 맡았던 이가 부산FC에 근무하는 이세경(24) 씨다.

부산 최초 여자 축구 동아리를 만든 이세경 씨(사진: 취재기자 김지현).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이 씨는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남자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며 놀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들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부산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여자 축구팀이 없는 도시였기 때문에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휩싸인 그는 마지못해 축구선수의 꿈을 접었다.

이 씨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축구선수의 꿈은 이룰 수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스포츠 경영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래서 그는 2012년 부산에서 유일하게 스포츠 경영을 배울 수 있는 부산대 스포츠과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축구를 향한 그의 사랑은 여전했다. 그는 부산 구서동 카이저 유소년 축구단에서 일하는 선배와의 인연으로 유소년 축구단 여자 코치를 맡게 됐다. 2년 동안 코치 일을 한 그는 ‘학교에 여자 축구 동아리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대학교 들어왔을 때부터 여자 대학 클럽 축구대회인 K리그컵에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내가 직접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서 축구를 가르치면 된다는 마음으로 동아리 부원 모집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몇 명 모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올린 동아리 모집 글을 보고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고, 그렇게 최초의 여자 축구 동아리인 PNU레이디스가 창설됐다. 이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주변에서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는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아리 모집 글을 올린 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보니 생각보다 축구를 하고 싶은 여자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PNU레이디스 이세경 씨 프로필(사진: 이세경 씨 제공).

동아리 창단 후 1년 동안은 힘든 일이 많았다. 준 동아리로 시작한 PNU레이디스는 학교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모든 비용을 동아리 부원들이 충당해야 했다. 동아리 특성상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부원들의 탈퇴도 잦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모이는 인원이 15명을 넘지 못했다. 이 씨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이다 보니까 축구에 들이는 시간을 1순위로 안 둔다. 자기가 다른 일이 있으면 동아리 일은 자연스럽게 2순위가 된다”며 “11명이 정원인 축구는 교체 인원까지 치면 최소 15명이 필요한데 재학생만으로 15명을 만드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PNU레이디스는 창단 첫 해 K리그컵에 출전하게 됐다. 동아리 부원 모두 사비를 내 참가했다. 결과는 예선 전패. 하지만 동아리 부원들은 승리 대신 값진 것을 얻었다. 이 씨는 “이틀 밤을 자니까 동아리 부원끼리 친해졌고 그 때문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가진 동료들이 많았다”고 당시를 추억했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동아리 부원들은 주눅 들지 않았다. ‘즐축의 부산대! 즐기는 축구를 하자. 못해도 웃으면서 하자‘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세 번, 아침 6시 반부터 9시까지 2시간 반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동아리 부원들의 실력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처음에는 공이 무서워서 피하던 애가 다가가서 수비를 하고 공도 빼앗는 게 보였다. 다들 열심히 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듬 해 K리그컵에 다시 출전한 PNU레이디스는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PNU레이디스의 등록인원은 재학생과 외부인을 포함해 40명 정도 된다. 그들은 K리그컵에 부산대표로 출전하고, 부산지역 여자축구동호회 및 학내 남자팀 동아리와 친선경기를 치른다. 또한, 학교행사는 물론 부산 아이파크 볼 걸 및 에스코트 걸 행사에도 참여한다.

부산 아이파크 볼 걸 및 에스코트 걸에도 참여한 PNU레이디스(사진: 이세경 씨 제공)

이 씨는 대학 졸업 올해 프로축구팀 부산FC에 취직했다. 부산FC는 창단 1년차인 K3리그 신생구단이다. 기업들이 만든 다른 축구단과는 달리 FC바르셀로나와 같은 협동조합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구단이다. 그는 구단에서 전반적인 프론트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지금의 직업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는 “사실 요즘 세상이 그렇지 못해서 그런 거지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청춘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이 씨는 PNU 레이디스, 동아대학교 여자 축구 동아리 ‘다울’, 부산 2030 여자 축구 동호회 ‘앤디’를 모아 부산 아마추어 여성 축구연맹을 만들었다. 서울에 본부가 있는 한국 대학 여자 축구연맹은 활동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부산에서는 참여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부산 아마추어 여성 축구연맹은 부산의 여자 축구 활성화에 나섰다. 1차 사업으로 6월에 친선대회를 치렀다. 다음 단계는 여중, 여고를 선정해서 회원들이 학생들에게 축구와 함께 대학 진학에 대한 정보도 줄 계획이다. 사업 계획을 짜놨고 학교와 접촉만 하면 된단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성편견이 매우 심한 종목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는 “다른 종목보다 여성이 접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여자니까 운동은 아니야, 피아노나 쳐, 발레나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운동을 좋아하면 운동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뒷받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