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강모(24) 씨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다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강 씨가 본 게시 글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과 승진을 막는 비제도적 장벽을 지칭하는 의미로 '유리'라는 낱말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게시 글의 댓글에는 원글과는 동떨어지게 "유리를 깬다, 부순다"는 맥락 없는 내용이 달려 있었던 것. 요즘 들어 강 씨는 글의 논점이 흐려지는 댓글이 많이 달리자, 더 이상 인터넷 커뮤니티를 안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이처럼 글에 대해 문맥을 파악하지 못 한 채, 한 단어에 집착해서 말꼬리를 무는 경우를 ‘실질 문맹’이라고 한다. 난독증과 실질 문맹이란 개념이 헷갈릴 수 있지만, 두 단어는 엄연히 다르다. 난독증은 글을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지 못하는 학습 장애의 한 유형으로 유전의 영향이 크다.
반면, 실질 문맹은 글 자체는 정확하게 읽는데도 글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실질 문맹은 문해력,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다. ‘실질 문맹’이라는 단어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만큼 실질 문맹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문맹률이 낮은 나라로 꼽히는 우리나라이지만, 한국교육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1994~1998년 OECD가 성인을 대상으로, 산문문해, 문서문해, 수량문해 등 영역으로 나눠 실시한 국제성인문해조사(International Adult Literacy Surveys)를 2001년 한국에서 실시한 결과 전 영역에서 꼴찌로 나타났다. 또 2014년 11월 14일 KBS의 보도에 따르면, 'OECD skills outlook 2013' 조사문항으로 우리 국민에게 시험해 본 결과 청장년층은 큰 문제가 없는 반면 노년층의 실질문맹률은 22개국 중 끝에서 3번째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12년 실시된 OECD 국가별 성인 문해력 조사에서 한국은 500점 만점에서 273점을 얻어 평균 268점을 가까스로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핀란드가 288점, 스위덴이 279점으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질 문맹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독서량이다. 경성대 국어국문학과 황병익 교수는 “독서를 하지 않으면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15세 이상 인구)에서 한국의 독서율은 74.4%로 OECD 평균인 76.5%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그나마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량은 2016년 유엔통계로 보면 세계 최하위권(192개국 중 166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량이 높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우리나라의 성과 위주의 교육 환경이다. 직장인 전민창(29, 경남 창원 소답동) 씨는 독서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게 어렵다. 전 씨는 “중, 고등학교 때는 대체로 외워서 시험을 치르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책을 읽지 않았다”며 “어렸을 때 책을 안 읽어 독서 능력도 없는 것 같고 지금은 직장을 다니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도 없어서 더 멀리하게 된다”고 말했다.
빈번한 스마트폰 사용 또한 독서량을 낮추는 원인이다. 황병익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궁금한 정보를 찍으면 바로 나오니 사람들이 책을 읽어 지식을 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책하고는 점점 멀어진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화면에 길들여지면 우리의 감각은 독서에 길들여지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김예영(부산 해운대구, 22) 씨는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본인이 실질 문맹이 돼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김 씨는 “스마트폰으로 SNS를 자주 하다 보니 뉴스의 키워드만 보게 되고 내용은 굳이 읽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분명히 봤던 내용인데 키워드만 기억나고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던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독서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독서를 이끄는 독서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황병익 교수는 “독서의 출발은 '나'여야 한다. 내가 무언가를 궁금해야 된다. 나를 발전시켜주고 내 사고를 영역 확대시켜주는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단순한 지표의 문제, 결과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는 오래 전부터 (실질 문맹의) 방향에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을 바꾸려고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인 경성대 국어국문학과 박훈하 교수도 “보다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제도권에서만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 모임 등 일상 생활에서도 폭 넓게 이뤄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