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동아리 방은 ‘해방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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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동아리 방은 ‘해방구'인가
  • 취재기자 임기석
  • 승인 2013.05.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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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노는 ‘위장 동아리’가 판쳐도 대책이 없다

요즘 대학들은 학생 복지 차원에서 대부분의 동아리들에게 학생회관에 동아리 전용실을 하나씩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한번 들어간 기존 동아리들은 전용실을 내놓지 않으려 하고, 새로 생겨난 동아리는 전용실을 달라고 줄을 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위장 동아리’들이 전용실을 사유화하고 내놓지 않아서 신규 동아리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대학 동아리들은 대개 학생들 자치 조직인 ‘동아리연합회’로부터 일명 ‘동아리 방’이라는 전용공간을 배정 받는다. ‘동아리 방’은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혜택’이다.

부산에 있는 A대학교에는 70여개의 중앙 동아리가 있다. 중앙 동아리라 함은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동아리를 통칭하는 말이며, 단대 동아리나 학과 동아리와 구분된다. 이 대학에서 중앙 동아리로 등록하려면, 재학생 회원 20명 이상이 모여야 하고, 매년 3만원의 동아리 유지비를 내야 한다. 반면에 신규 동아리는 5만원의 가입비를 내고, 3학기 이상 가등록한 상태에서 활동 실적을 쌓으면서 대기하다가, 전용실 여유분이 생기면 동아리방에 입주할 수 있다.

경기도에 있는 B대학교에 중앙 동아리로 등록하려면, 동아리연합회에 동아리 가입비를 내고, 6개월간 정식 동아리로 부합한지 심사를 받아야 하며, 적격 판정이 나면 정식 동아리로 활동할 수 있고, 동아리방 입주는 또 한 학기가 지나야 가능하다. 동아리가 퇴출되는 경우는 ‘개인적인 이유로 동아리방을 사용할 경우’, ‘동아리 방 내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할 경우’, ‘동아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을 경우’로 크게 3가지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동아리방 입주를 허가 받은 동아리들이 본연의 동아리 활동보다 개인적 용도나 음주 목적으로 동아리 방을 활용하고 있으며, 그래도 퇴출도 되지 않고 별다른 제재도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A대학교의 한 동아리 장을 맡고 있는 김모(24) 씨는 기존 동아리에 대한 동아리연합회의 별다른 감사나 제재가 없으며, 동아리가 어떤 활동을 하든 아무 부담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제재가 없어서 밤새도록 술 먹고 노래하는 동아리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불편하다. 동아리 방에서 화투 등 도박을 하는 동아리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전국의 다른 지역 대학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 소재 B대학교에 다니는 정모(23) 씨는 현재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매주 노래 연습을 해야 되는데 주위 동아리에서 술을 먹고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동아리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동아리 방 감사가 너무 허술하다. 동아리 방에서 아예 먹고 자면서 상주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게 동아리 방인지 자취방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대학들에서 동아리 활동을 벗어나서 개인적인 이유로 동아리 방을 사용할 시 퇴출당하게 되어 있는 규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B대학교의 한 동아리 회원인 정모(23) 씨에 의하면, 가입절차는 잘 이뤄지고 있지만, 퇴출 조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는 동아리가 퇴출당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일명 ‘위장 동아리’ 때문에 동아리 방에 입주를 하지 못하는 동아리들의 불만이 당연히 들끓고 있다.

광주시 소재 C대학교에 다니는 이모(25) 씨는 작년 10월에 영어 동아리 설립을 신청을 해서 올해 3월에 정식 동아리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동아리 방 수가 모자라 현재 전용실 입주가 지연되고 있다. 그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아리는 퇴출시키지 않고, 좋은 뜻으로 활동하려는 동아리들의 입주가 지연되는 이 상황이 황당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시빅뉴스가 취재한 결과, 대부분의 대학교 중앙 동아리에는 동아리 방 입주를 기다리는 정식 신규 동아리가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동아리연합회 입장은 달랐다. C대학교 동아리연합회 간부인 임모(26) 씨는 중앙 동아리에 대한 규칙은 모든 동아리의 형평성에 맞게 정해져있으며, 퇴출당할 사유가 있다면 회의를 거쳐 퇴출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리 방 입주가 지연되고 있는 동아리들은 기존 동아리보다 늦게 가입 신청을 했기 때문에 입주를 못하는 것이지, 기존 동아리와 연합회간 부적절한 거래는 전혀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대기하는 신규 동아리들이 사이비 동아리들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그건 그쪽 동아리들의 사정이다”라고 일축했다.

여기서 총학생회라는 대학 전체의 자치 단체와 각 대학의 동아리 관리 주체인 동아리연합회와는 어떻게 다르냐는 의문이 생긴다. 요즘 대부분의 대학에서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는 별개의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 전체의 복지를 담당하는 총학생회와 동아리만을 관리하는 동아리연합회와는 업무 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A대학교의 한 총학생회 간부는 “유령 동아리에 대한 소문은 예전부터 많이 들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서 동아리연합회에 압박을 줄 수가 없다. 평소에도 동아리연합회와 총학생회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지 않아서, 중앙 동아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B대학교 총학생회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B대학교 총학생회 간부 최모(25) 씨는 “동아리 관리는 동아리연합회 측에서 담당을 하고 있어서 위와 같은 일이 있더라도 총학생회는 알 길이 없다. 혹여나 이런 사항을 알게 되더라도 총학생회는 동아리 연합회에 건의나 권고를 할 수는 있지만, 강제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대학이 아무리 학생 자치를 보장한다고 해도, 학교 시설물을 관리하고 학생지도에 책임 있는 학교 행정부서는 동아리 방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B대학교 학생지도 부서 담당 직원 김모(40) 씨는 “동아리 방이 본래 목적과는 다르게 운용되고 있는지, 또 별다른 재제 없이 동아리방이 운용되고 있는지 몰랐다. 부서 회의에서 동아리 방 운용 원칙을 수정하고, 동아리 가입, 퇴출 조건을 강화해서 동아리연합회와 문제를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반면에, 대학 당국이 이미 문제를 인지하고 대책에 나선 대학들도 있었다. C대학교 학생지도 부서의 담당 직원 정모(36) 씨는 “안 그래도 신규 동아리들의 민원으로 동아리 가입과 퇴출 규칙을 수정 중이다. 총학생회와 더불어 유령 동아리나, 악(惡)동아리 척결 운동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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